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는 뭐가 부족했나?

조회수 2021. 2. 2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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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새해전야> (New Year Blues,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새해전야>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러브 액츄얼리>(2003년)는 겨울만 되면 생각나는 대표 로맨틱 코미디가 됐다. 여러 사람의 사연이 얽히고설키면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와 대비해 짧은 상영시간을 고려해 압축적이면서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관객에게 전달됐다.

게다가 '스타 캐스팅'의 기획이 가능하고, 극장을 찾는 주요 관객층 중 하나인 커플을 불러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러브 액츄얼리>와 비슷한 멀티캐스트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다수 등장했다. 지금 소개할 <새해전야>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 역시, <결혼전야>(2013년)를 통해 다양한 커플들이 결혼을 앞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라는 속담처럼,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을 담은 작품에서 인물 군상의 서사를 매끄럽게 보여주는 일은 쉬운 도전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슈퍼 히어로가 나오는 <어벤져스> 시리즈마저 저마다의 서사를 담은 단독 영화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서사를 길게 그릴 필요가 없다.

게다가 하나의 '메인 빌런'을 상대로 해야 하는 공통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집중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슈퍼 히어로'가 아닌, '우리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옴니버스식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특징이 있겠다.
이렇게 '우리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전제를 두고 만들어진 <새해전야>는 크게 네 쌍의 이야기를 담았다. 먼저, 이혼 4년 차 형사인 '지호'(김강우)는 강력반에서 좌천되어 이혼 소송 중인 '효영'(유인나)의 신변 보호 일을 떠맡는다.

(개봉 시기상 약 1년 남은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을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장애인 선수촌의 재활 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효영'이 이혼 소송 중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채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남편의 집착 때문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던 것. 내면에 깊은 상처를 지닌 '효영'에게 '지호'는 자꾸만 '사적인 마음'이 쓰인다.

'진아'(이연희)는 남자친구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휴가라는 말과 함께 잠시 일을 그만두고 무작정 아르헨티나 '혼영'을 떠난다. 여행 첫날부터 '진아'는 예약 실수로 인해 호텔 로비에서 노숙하게 되고,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한국인 '재헌'(유연석)을 만난다.

'재헌'은 바쁜 직장생활 끝에 온 번아웃으로 인해 도망치듯 아르헨티나로 떠나, 포도 농장에서 와인 배달을 하며 살아갔다. 호텔에서부터 '진아'와 스쳐 지나간 '재헌'은 대책 없이 여행 온 '진아'가 신경 쓰여 도움을 준다. 툴툴거리면서도 어디선가 나타나는 '재헌'에게 '진아'는 자신도 모르게 빠지고 만다.
작은 여행사를 운영 중인 '용찬'(이동휘)은 중국인 '야오린'(천두링)과 함께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한국지사에 발령을 받았지만, '야오린'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한국 땅에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나 쉽지 않다. 그 무렵, 예상치 못한 직원의 횡령으로 인해 '용찬'의 결혼 자금은 사라지고 만다.

차마 이 돈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야오린'에게 전하지 못하고, '용찬'은 사랑과 일을 모두 잃을 위기에 놓이고 만다. 그사이 '야오린'은 새로운 가족이 될 예비 시누이 '용미'(염혜란)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 '용미' 역시 친구(라미란)와의 조언(?)과 'AI 통역기'의 도움을 통해 '야오린'과 소통을 시도한다.

마지막 조합은 장기간 연애 중인 '래환'(유태오)과 '오월'(최수영)이다. '오월'은 사랑 앞에는 어떤 장애도 없다고 믿으며, 작은 농장을 운영하고 새 품종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독일에서 생활하다 국가대표를 위해 한국으로 온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 '래환'은 특유의 근성과 끈기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스포츠계의 떠오르는 블루칩이 된다.

동계 패럴림픽 진출권을 따내기 위한 중요한 대회가 열리기 전, '래환'은 에이전시 계약 제의를 받는다. 모든 게 술술 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상황을 이용하려는 에이전시를 두고 '래환'과 '오월'은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영화는 새해가 시작되기 1주일 전을 앞두고, 이 네 조합을 번갈아 가며 전개한다. 자연스럽게 영화는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고, 그 사이에서 캐릭터의 성격을 '구축'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는 홍지영 감독의 전작 <결혼전야>와도 유사하다.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양한 관점과 이해관계로 풀어냈는데, <결혼전야>가 '결혼식 1주일' 전이라는 공통 '목표'가 있는 것과 달리, <새해전야>에선 이 공통의 목적이 사라지고 만다. 말 그대로 새해 1주일 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다 보니, 커플 사이 갈등의 진폭 등 그 '편차'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커플 간 편차는 '아르헨티나 커플'의 경우에서 두드러졌다. 한국의 세 커플과 달리, '아르헨티나 커플'의 모습은 <비포 선라이즈>(1995년)처럼 여행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설정됐다. 하필이면,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런지, 유달리 '밝은 색채'로 그려진 아르헨티나 로케이션 장면들은 '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담당할 뿐, 작품에 잘 녹아들지 않았다.

옴니버스식 작품에서 다른 세 커플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진아'가 일하는 곳이 '래환'이 있는 스키장이라는 설정, '재헌'이 '래환'의 경기를 화면으로 보는 장면)가 없는 것도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나머지 한국 커플에게 깊이 있는 접근을 했다면 모르겠으나, 그 역시 부족함이 많았다. 흐름이 끊기다 보니, 로맨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 간의 '케미'를 쌓아가는 것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케미'가 부족한 로맨스 영화는 '앙꼬 없는 찐빵' 만큼이나 퍽퍽하다.

또한, '갈등'의 발생이나, 이를 봉합하는 과정 역시 최근 잘나가는 로맨스 드라마의 트렌드에 못 미쳤다. 심지어 이야기가 너무나 무난하게 흘러가다 보니, 마스크까지 써가며 스크린 안의 '노 마스크 새해맞이 풍경'을 보는 관객들은 캐릭터의 서사에서 오는 '공감' 보다는 '허탈감'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좋은 배우를 두고도, 그 배우들에게 날개를 제대로 펼치지 못한 연출도 안타까웠다. 설 연휴에 나란히 개봉한 <아이>에서 염혜란은 상대 배우와 불꽃이 튈 정도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는데, <새해전야>에서 염혜란은 지루해지는 작품에 양념을 치러 온 '조연 캐릭터 1'처럼 보였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런 온>을 통해 평범한 '부자 캐릭터'의 이미지를 거부했던 최수영이나, 칸영화제 경쟁 작품 <레토>(2018년)에서 '빅토르 최'를 연기한 유태오도 그러했다. 중국어 대사가 너무나 많아 "혼자 다른 영화를 찍은 것 같다"라고 농담한 이동휘도 고군분투했으나, 캐릭터의 매력을 온전히 전달하기엔 무리였다.

2021/02/16 CGV 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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