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자기 무덤에서 춤을 춰달라고 부탁한 연인

조회수 2020. 12. 27. 11: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썸머 85> (Summer Of 85,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썸머 85> ⓒ 찬란
해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면 빼먹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야외상영'이다. 수많은 관객과 같은 화면에서 무언가를 공유하는 그 자체는 영화제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그런 매력의 여지를 제거했다.

지난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야외상영장은 그야말로 싸늘한 분위기였다. 체온 측정 후, 마스크를 쓰고 한둘 씩 관객들이 입장을 했으나, 이들은 띄엄띄엄 앉아야 했다. 현재 극장에 한 자리씩 떨어져 앉는 것보다 더 넓은 간격으로.(다행스럽게 부산국제영화제로 인한 '코로나19' 확진 보고는 나오지 않았다)

싸늘한 바람과 가끔 들리는 차량 경적만이 들리는 야외극장에서 관객이 함께한 영화는 <썸머 85>였다. 지난여름 칸영화제에서도 '공식 초청작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영화로, 프랑스 '시네아스트' 감독인 프랑수아 오종의 신작으로 주목받았다.

작품마다 기존의 형식과 내용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스타일과 장르를 보여준 그는 지난 1월 국내에서 개봉한 <신의 은총으로>를 통해 제69회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신작 <썸머 85>는 그의 대부분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정도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한 에이단 체임버스의 소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1966년 작가가 가디언지에 나온 짧은 기사를 통해 시작됐다. 16살 소년이 무덤을 훼손한 죄로 기소되어 지방 법원에 두 번째 출석했다는 내용이었다. 에이단 체임버스는 "첫 번째 출석했을 때는 자신의 행동과 그 동기에 관해 진술하기를 거부했다"라면서, "소년이 어려서 이름도 공개되지 않았고, 그 밖의 자세한 내용도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두 번째 출석했을 때 사회복지사가 말하길, 소년이 친구와 맹세를 했다고 한다.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나머지 한 명이 죽은 친구의 무덤에서 춤을 추기로. 많은 의문점이 남았다. 소년은 왜 진술을 거부했을까?"라고 전했다.

1982년 소설이 출간된 가운데, 에이단 체임버스 작가는 "이 책을 쓸 때부터 영화로 각색되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진척되기도 전에 다들 포기했다"라면서, "38년을 기다린 끝에, 그토록 바라던 일을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이뤄줬다. 85세가 될 때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라고 기뻐했다.

영화는 무대를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으로 옮겼고, 취업을 할지, 글쓰기 공부를 더 해야 할지 고민하던 17살 소년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그는 사고로 바다에 빠지고, 18살 소년 '다비드'(벤자민 부아쟁)는 '알렉스'를 구해준다.
'알렉스'는 자신을 구해준 '다비드'에 조금씩 빠지게 되고, 그것이 사랑이란 감정임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할 1985년의 여름을 보내지만,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오는 것처럼 영원할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영국 출신으로 프랑스 가정에서 '오페어'(쉽게 말하자면, '홈스테이하는 베이비시터'라 보면 되겠다)로 일하는 '케이트'(필리핀 벨쥬)를 만난다. 밝고 당당한 성격에 처음 만난 '알렉스'와 단숨에 친해진 '케이트'는 의도치 않게 '알렉스'와 '다비드' 사이의 관계를 분열하고 만다. 결국, '다비드'의 죽음으로 두 사람은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만다.

<썸머 85>를 본 관객이라면, 단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년)을 떠올릴 것이다. 사랑과 이별을 통해 성장해가는 한 소년의 서사를 감각적인 색감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과 훌륭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것은 기본이다.

절묘한 1970~80년대 음악의 사용(<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F. R. 데이비드의 'Words'가, <썸머 85>에선 로드 스튜어트의 'Sailing'이 대표적이다), 주인공의 또래 소녀가 등장하는 것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한 프랑소와 오종 감독만의 시선을 더욱더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사용한다. '알렉스'의 문학 선생님인 '르페브르'(멜빌 푸포)가 '알렉스'가 '다비드'의 무덤을 훼손한 죄목으로 재판을 받자, '알렉스'에게 사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전말을 글로 정리해보라고 권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알렉스'는 생애 처음으로 죽음과 이별을 동시에 경험하고, '다비드'가 남기고 떠난 수수께끼와 같은 "죽으면 내 무덤 위에서 춤을 춰달라"는 약속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다비드'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글로 정리하고, 비로소 이별을 받아들이면서, 한층 성숙해지는 인간이 된다.

당연하게도 <썸머 85>는 1980년대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장면들이 대거 등장한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원작을 처음 읽고 영화화를 꿈꾼 시절이 바로 1985년, 그가 17살 시절이었기 때문.

영화의 메인 테마 음악은 더 큐어의 1985년 히트곡 'In Between Days'이며, <라붐>(1980년)에서 소피 마르소와 알렉산드르 스털링의 헤드폰 장면으로 유명한 그 장면이 오마주됐다. 심지어 무덤에서 '알렉스'가 춤을 출 때 나오는 'Sailing'은, '알렉스'를 연기한 펠릭스 르페브르 배우의 추천으로 사용하게 된 곡이었는데, 매우 잘 맞아떨어졌으며, 영화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20/10/24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Copyright © 알려줌 알지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2024 ALLYEOZUM INC. All Rights Reserved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콘텐츠의 타임톡 서비스는
제공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