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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의 '조제'는 당신이 알던 그 '조제'가 아니다

조회수 2020. 12. 2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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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조제> (Josée,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조제>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년)은 여러 의미를 동시에 함유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수작이다. 표면적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과 이별을 담았지만, 그 안엔 미완의 존재에 대한 고찰이 품격 있게 그려져 있었다. 물 밖에선 이내 세상을 다해버리는 '물고기' 같던 존재였던 '조제'(아라이 히로후미)는 어느덧 '호랑이'를 만나면서 자신이 마주하는 다른 세상을 향했다.

물론, 17년이 지난 일본 영화인만큼 "현재의 시대 감수성에는 동떨어지는 장면도 있다"고 생각할 관객도 있겠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장애인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선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런 영화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소식에 '나름의 안도'를 했다. <최악의 하루>(2016년), <더 테이블>(2017년), <페르소나('밤을 걷다' 단편)>(2019년) 등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의 작품들엔 공통점이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치킨' 같은 영화가 아닌,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백숙' 같은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것. 결말이 분명치 않다는 것. 카메라의 촬영 구성을 통해, 현장성이 강한 연극처럼 느껴지는 대본을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힘이 있다는 것. 결정적으로, 감독은 사람에 대한 시선을 세심히 그려냈다.
<조제>는 그런 김종관 감독이 사실상 처음 연출한 대형 배급사의 '상업영화'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와의 구분을 짓는다는 게 딱히 좋은 건 아니지만, 걱정이 들었던 것도 있었다. 빠른 호흡보다는 정중동에 가까운 호흡을 그려내는 영상을 보여준 그의 최근 작품들이, 일반 관객들에게 잘 녹아 들어갈 수 있을까?

그리고 엄청난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해서 얻는 부담감도 심각하지 않을까? 김종관 감독은 "너무나도 좋은 원작이 가진 무게감이 있고 시대의 변화 안에서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들, 대중 영화로서의 방향성 등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부담 많은 작업"이라고 변을 남겼다.

그는 "원작 소설과 영화가 가지고 있던 매력은 내가 수많은 창작을 하며 항상 담고 싶었던 것들"이라면서, "사람에 대한 깊은 시선과 인간애라는, 원작이 지닌 본연의 감정을 지킨 채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원작은 매우 좋은 지점이 많지만, 그 영화가 만들어 놓은 길을 똑같이 따라가는 것은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에 도전하게 될 나와 배우들에게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확신을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조커'도 여러 얼굴을 지니듯, 배우들이 지닌 질감이 캐릭터를 만나면 그마다 개성과 생명력이 생긴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조제>는 기본 틀만 유사할 뿐, 원작의 내용을 답습하지 않으려 했다. 감독이 언급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올리비아 핫세 출연작(1968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출연작(1996년) 모두 자신만의 색채를 지닌 것처럼.

김종관 감독은 "창작을 하는 이들이 그 이야기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창작자의 개성이 드러날 때, 좋은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는 좋은 창작이 나올 수 있고 믿는다"라면서,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솔직한 사랑을 하고, 그것이 영원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순간들을 통해 그들의 삶이 성숙해지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대략적인 리메이크 작품의 초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제'(한지민)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짓고 살아간다. 혼자 집을 나섰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조제'는 대학생 '영석'(남주혁)의 도움을 받는다.

얼떨결에 '영석'은 '조제'의 집에 들러 함께 밥을 먹게 되고,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취향을 지닌 '조제'가 남들과 다르게 느껴진다. 그날 이후, 때때로 집을 찾아오던 '영석'을 보며, 굳게 닫힌 '조제'의 세계엔 변화가 일어난다. '조제'는 '영석'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이 변화가 낯설고 불안하다.

리메이크된 <조제>에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따로 분리되지 않았다. 영화의 후반부, 스코틀랜드 여행 장면과 아쿠아리움 장면이 몇 분 차이를 두고 등장하고, 이내 '영석'이 차를 모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처럼. 이는 김종관 감독의 작품세계와도 유사하다.

앞서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김종관 감독은 최근 작품에선 대본(도 좋지만)보다는 '이미지'로 자신만의 서사를 풀어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조제'의 변화였다. 거짓말을 하던 '조제'의 설정은 같을지언정, 리메이크에서 '조제'는 원작과 달리 자신의 독백으로 영화를 연다. '츠네오'의 과거 추억이 아닌, '조제'의 상상으로.
원작에는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 '거품'이 된 이야기가 등장하고, '츠네오'에게 '인어공주'처럼 다가왔던 '조제'는 헤어진 이후 '다이빙'을 한다. '영석'도 비슷했다. 지방대 출신 학생의 고충을 보여주면서, 취업 청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영석'은 우리네 '현실'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영석'에게 '조제'는 일종의 동화 속 환상 같은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리메이크는 '조제'를 '인어공주'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서두에 적은 "현재의 시대 감수성에는 동떨어지는 장면도 있다"고 생각할 관객은 이 지점을 지적한 바 있었다.

김종관 감독은 '조제' 역시 우리네 '현실'을 사는 인물로, '동화 속 인물'에서 그 위치를 조정한다. 그러니 그 뒤에 붙어 있는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그대로 쓸 필요가 없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먼 나라에서 첫 촬영을 하고, 그 어느 순간에 한지민 배우를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프레임에 담긴 한지민을 보고 우리가 만나게 될 '조제'를 처음으로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쓸쓸하지만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 연약함과 단단함이 양면처럼 있고 가만히 앉아서도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왜 '조제'인가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2020/12/02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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