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매력이 파묻혀버린 영화

조회수 2020. 11. 8.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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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도굴> (Collectors,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도굴> ⓒ CJ 엔터테인먼트
출근길, 에디터가 매일 지나치는 선릉은 영화 <도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적지다. 선릉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는 '강동구'를 연기한 이제훈의 모습과 함께, "이곳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내용의 문구가 담긴 광고도 볼 수 있다.

미국 건국 초기의 대통령이 숨겼을 것으로 생각하는 보물을 찾기 위해 도시를 누비는 여정을 담은 영화, <내셔널 트레져>(2004년)에서나 볼 법한 어드벤처물이 드디어 한국에도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심지어 미국의 역사보다 우리의 역사가 훨씬 길 테니, 사연도 얼마나 많겠는가) 뚜껑을 열어보니, 그 기대는 잠시 묻어둬야 했다.

전반적인 <도굴>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나,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이 등장하는 영화들처럼 주인공의 '원맨쇼'(조력자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밋밋하다)로 이뤄지는 모험 영화와 <도둑들>(2012년), <기술자들>(2014년)처럼, 팀을 이뤄서 도둑질을 실행하는 장르인 '케이퍼 무비'를 섞은 모양새로 전개된다.

어떤 범죄에 한둘씩 참여를 하게 되고, 그 일을 수행하면서 '다른 큰 범죄'를 처단한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은 익숙하지만, 오히려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위험한 도전을 펼치기보다는 안전한 연출을 통한 '팝콘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안전한 연출이 아닌, '안이한 연출'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관객의 호평과 평론가의 호평, 둘 중 아무것도 취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도둑들>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유는 많은 캐릭터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에게 세부적인 특기를 보여준 후, 탄탄한 서사를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액션에서 나오는 쾌감은 덤. 반대로, 겨울 대목 시즌에 개봉했던 <기술자들>은 흥행했지만, 평론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원맨쇼 캐릭터가 멋을 부리는 장면은 기능적이었고, 많은 등장인물의 움직임은 능동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그저 진행을 시키면, 선수가 입장해야 할 분위기 말이다.

<도굴>은 <기술자들>에 가깝다. <도굴>은 주인공 '강동구'의 성격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원맨쇼로 출발한다. 황영사 금동불상 도굴에 성공하는 '강동구'의 모습은 잔망스럽다. '강동구'는 스님의 복장을 한 후, '초코파이' 껍데기를 두고 가는 여유까지 부리는가 하면, 한껏 멋을 부렸으며, 특유의 깡다구까지 겸비한 인물이다.

그사이 영화는 빌런 '상길'(송영창)의 야욕을 드러내면서, '강동구'가 발굴한 불상을 탐낸다. '상길' 밑에서 일하는 큐레이터 '윤 실장'(신혜선)은 '강동구'의 능력을 발견하고, 다른 거래를 제안한다.
그 거래를 수락하면서, 영화는 고분 벽화 도굴 전문인 '존스 박사'(조우진)를 소개한다. '존스 박사'의 역할이 끝나니, 작품은 새로운 인물인 왕년의 삽질 달인 '삽다리'(임원희)를 추가하며, 본격적인 '선릉 공략'에 나선다.

하지만 손을 털고 인사동에서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팔던 '존스 박사'와 갓 출소한 '삽다리'의 역할은 딱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기능적인 역할로 추가됐을 뿐, '강동구'와 '윤실장'과 비교하면 깊이가 덜하다.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했지만, "자, 그럼 내 차례인가?" 같은 오글거리는 대사와 부족한 캐릭터 자체의 케미나 팀플레이는 호연을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도굴>은 충분히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장면이 있음에도, 웃음을 주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구려 벽화를 뜯어가는 와중에 나오는 '박가'(윤병희)의 변심은 긴장감의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당탕탕에 가까운 흐름으로 그 긴장감을 스스로 죽여버린다.

'케이퍼 무비'의 기본이 관객에게 주인공의 고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도굴>은 그 갈등을 너무 쉽게 해소한다. '강동구'가 만능에 가까운 캐릭터라는 것도 있겠지만, 동시에 빌런의 어리석은 행동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도굴>의 제작자이자 각색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도가니>(2011년), <수상한 그녀>(2014년), <남한산성>(2017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이슈를 영민하게 상업 영화로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서울 강남 한복판 선릉에 얽힌 도굴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느낌의 범죄 오락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라고 밝혔다.

말마따나 '선릉'에 얽힌 도굴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웠으며, '선릉'과 비슷한 크기로 만든 세트나, 땅굴 세트 등 미술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미술에만 치중해,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는 방법에는 소홀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물론, 이 영화를 사회 이슈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도 잘 보였다. 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가 될 수 있는 문화재 불법 거래,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등 문화재보호법과 관련한 이슈들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대표 요소.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 당시, 최근 10년간 도난된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총 12,749건에 달하지만, 회수된 문화재는 1,972건에 불과하다는 문화재청의 자료가 공개됐다.

2020/10/28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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