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 여성에게 반한 노동자 청년이 선택한 것은?

조회수 2020. 11. 4.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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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마틴 에덴> (Martin Eden,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마틴 에덴> ⓒ 알토미디어
선박 노동자 '마틴 에덴'(루카 마리넬리)은, 같은 노동자 계급의 여성 '마르게리타'(데니스 사르디스코)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해가 뜨고, '마틴 에덴'은 부두 노동자에게 구타를 당하던 부잣집 아들을 구해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의 대저택에 방문한 '마틴 에덴'은 '엘레나'(제시카 크레시)를 만난다.

'마틴'이 비록 초등학교 중퇴의 노동자 출신이지만, '엘레나'는 '마틴'이 독서나, 글쓰기를 하도록 동기 부여를 제공했으며, 기초 단계의 작문 수준을 격려한다. 하지만, 음식 소스를 노동 계층의 교육에 비유하며, 재치 있게 말을 이어가는 '마틴'의 모습을, '엘레나'의 어머니는 썩 만족스럽지 않게 쳐다본다.

'마틴 에덴'은 "일을 해서 집세를 내라"고 매번 핀잔을 놓는 매형의 집에 얹혀살기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시골로 향한다. 훌륭한 작가가 된다면, 부자가 되면서 신분이 상승할 것이고, 이는 곧 '엘레나'와의 결혼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

'마틴 에덴'은 2년간 '엘레나'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로, 집필에 공을 들이지만, 출판사로부터 연이은 퇴짜를 맞는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데뷔작을 출판했지만, 동시에 배워간 지식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엘레나'와의 관계는 뒤틀리고 만다. 그렇게 '마틴'은 '마르게리타'와의 로맨스를 이어가려 하지만, 이 역시 방황하기는 마찬가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역작, <타이타닉>(1997년)에서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비극적인 사랑에, 당시 계급 사회의 알레고리가 진하게 녹여있는 것처럼, <마틴 에덴>도 남녀의 사랑을 건드리면서, 동시에 '인간 계급' 구조를 잘 보여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잭 런던의 동명 소설(1909년)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 잭 런던 역시, '마틴 에덴'처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신문과 얼음 배달, 통조림 공장의 직공 일을 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었다. 생활을 벗어나려면,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이 역시 집안 사정으로 포기해야 했고, 알래스카의 골드 러쉬 현장에 뛰어들게 된다.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이 이야기는 훗날 그가 <야성의 부름>(1903년)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난봄에 개봉한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콜 오브 와일드>의 원작이 바로 이 작품이다. <콜 오브 와일드>는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개, '벅'이 알래스카로 팔려나간 후, 대자연 속에서 야성의 본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을 화려한 CG와 함께 보여줬었다.
1905년, 잭 런던은 캘리포니아의 글렌 엘런 지역에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었다. 사회주의가 아닌 농촌 공동체 건설을 꿈꾸려 했지만, 좌절된다. 이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 바로 <마틴 에덴>인 셈. 잭 런던은 "개인주의의 위험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이 소설을 썼다"라고 밝혔다.

'마틴 에덴'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 앞에서 "진화의 법칙을 무시하는 사회는 그 어떤 사회도 지속할 수 없다"라고 외친다. '마틴 에덴'은 찰스 다윈이 발표한 생물의 진화론에 입각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을 따른다. 그러고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역시 "노예의 사회"라고 말하며,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거센 비난을 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후 나오는 장면이 자유주의자 그룹, '엘레나'의 가족과 함께 한 저녁 식사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마틴 에덴'은 조롱을 받는다. 자존감에 상처를 받은 '마틴 에덴'은 이 담론 과정에서 다시 한번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한때는 부르주아 계급에 대해서 선망을 품었지만, 이내 좌절했고, 결국 환멸을 하고 만 것.

이 대목부터 '마틴 에덴'의 모습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대표 캐릭터 '햄릿'처럼 보였다. 어떤 선택을 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인물이었고, 반 영웅적 인물의 원형에 가깝기 때문. 그리고 그 고뇌의 결과물은 마지막 장면의 롱테이크로 이어졌다.
잭 런던의 <마틴 에덴>은 20세기 초의 미국을 배경으로 했으나, 이 작품은 1950년대, 베수비오 화산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항구 도시 나폴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3대 미항' 답게 나폴리를 담은 화면들은 '빈티지 스타일'의 아름다운 때깔로 그려진다.

물론, 20세기 중반이라고 언급했지만, 정확한 <마틴 에덴>의 배경은 딱히 한 시점이라고 말하기엔 곤란하다. 단적인 예로, 작품에 나오는 TV가 20세기 중반의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최신식 장비였기 때문. 이렇게 모호한 배경으로 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온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은 영화 중간 '푸티지 화면'들을 삽입하면서, 작품이 20세기의 이탈리아를 관통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그래서 이 작품을 어느 정도 이해하려면, 최소한의 이탈리아 노동 역사는 인지해야 한다.

본래 이탈리아는 여러 개로 쪼개졌던 국가였다. 지방 분권을 위해서는 자급자족은 기본이었고, 이를 위해선 가내수공업과 같은 협동조합의 힘은 필수였다. 자동차나 패션 산업이 발달한 이유도 이 때문.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다소 늦은 19세기 후반에서야 통일을 이룩한 이탈리아 역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운동이 늦게나마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파시즘으로 인해 숨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 이후, 파시즘에 동조하던 자본주의 계급은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경제 부흥이라는 이유로 돌아왔다. 1957년 유럽공동체에 참가한 후, 이탈리아도 '경제 기적'을 경험한다.

경제가 좋아지니, 문화예술계에도 활기가 돌 수밖에 없었다.('마틴 에덴'의 독백 중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대사가 등장한다.) <두 여인>(1961년)을 연출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나,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비영어권 배우인 소피아 로렌도 이 시기에 활약했었다.

하지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등 정치권의 부정부패, 밀라노, 제노바, 토리노로 상징되는 북부 지역과 영화의 배경지인 나폴리로 상징되는 남부 지역의 격차 증가로 인해 현재의 이탈리아 경제는 과거의 영광을 찾기 힘들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19'의 이탈리아 지역 확산은 그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노동자와 자본가의 자산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마틴 에덴>은 이 모든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영화가 담아낸 주요 시기는 '이탈리아의 황금기'를 보여준 것이 분명했다. '부정적인 영웅'의 모습의 마지막을 통해, '에덴'은 '에덴동산'으로 향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한편,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년)과도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상류층 계급'의 상징과도 같은 수석을 들면서, '기우'(최우식)가 사랑하는 '다혜'(정지소)에게 이 집이랑 잘 어울리는지 묻는 것이, '마틴 에덴'이 그렇게 글을 배워서 소설을 쓰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으니 사랑을 챙취할 수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흥미롭게도, 봉준호 감독은 지난 3월 <사이트 앤 사운드> 잡지 인터뷰에서 '2020년대에 기대되는, 향후 20년간 주축이 될 차세대 감독 20명' 중 한 명으로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을 언급했다. 이 영화가 지난 10년간 베스트 영화 중 한 편이라고 극찬한 것은 덤.

2020/11/02 CGV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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