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 서비스 미제공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알려줌 ALZi Media

'반도'가 악평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반도> (Peninsula, 2020)

5,468 읽음
댓글 서비스 미제공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눈이 번쩍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반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도>는 영화 외적, 내적 요소로 관객의 악평을 받는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외적으로는 고질적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있었고, 내적으로는 연상호 감독이 남긴 인터뷰에서 나온 '멘트' 문제가 있었다. 먼저, 외적인 문제부터 보자. '코로나19'로 인해 극장가는 '고사 직전' 상황까지 오게 됐다.

그 상황에 <반도>는 단비 같은 영화였다. 그래서였을까? 지금까지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코로나19' 상황이니까 이해해줘야 한다는 이유인지,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은 개봉 2주 전부터 <반도>의 예매 오픈을 진행했다. 사전 예매율이 높으면, 스크린을 더 많이 배정하더라도 문제 될 일이 없을 테니.

그 결과, 가장 많은 상영관이 열린 7월 18일 토요일의 경우(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반도>는 2,575개의 스크린에서, 13,769회 상영됐고, 516,545명이 관람했다. 일일 점유율 통계를 놓고 보면, 스크린 점유율은 51.2%, 상영 점유율은 78.5%, 좌석 점유율은 83.1%였다. 극장에서 예매 시간표를 볼 때, <반도>만 제일 많이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

출처영화 <반도> ⓒ (주)NEW

이 수치는 일부 좌석이 '거리 두기'를 위해 '비 예매 좌석'으로 뒀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꽤 높은 것이다. 물론,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대기업 자본 영화', '대작 블록버스터'가 개봉하면 나타나는 '분기별 행사'에 가까웠다.

'중소 배급사' 작품들이 작품성과 상관없이 적은 스크린을 받았다는 주장이 함께 등장하는 것 역시 '분기별 행사'였다. 지난 7월 초 개봉한 <소리꾼>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은 자신의 SNS를 통해 각 작품의 상영 데이터와 '순제작비'를 꺼내며, 차별 대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순제작비가 각각 42억, 36억인 <침입자>, <결백>과 달리, <소리꾼>은 순제작비가 57억이 들었음에도 절반도 안 되는 스크린을 받았다는 것. 이처럼 대기업 중심의 '스크린 독과점'은 <반도>의 결말에 회상으로 언급되면서, 전체적인 작품 키워드로 자리 잡은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의 반복을 마냥 '상식'이라고 말하기엔 이상한 감이 없지 않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스크린 싹쓸이 문제는 한국영화, 할리우드영화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충무로는 '착한 독과점'이고, 할리우드는 '나쁜 독과점'이다가 아니고, 그냥 똑같은 '독과점' 이슈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관객이 이미 독과점에 길들었을 뿐.

'그런 선택'을 제한받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영화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집에서 마스크 착용할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부가판권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는 이 시기, '극장'이 같은 행동을 반복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앞선다.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코로나19'의 발생 초기엔 '스크린 독과점'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듯 보였다는 것. 지난 3월엔 '멀티플렉스'의 본래 취지를 잘 살린, 그야말로 이상적인 상영 시간표를 볼 수 있었다. 저녁 프라임 시간대 1~2편의 영화만 선택할 수 있던 상황에서, 7~8편의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진기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사이 르네 젤위거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주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가 박스오피스 상단에 노출되는 '기이한 현상'도 목격했다. 이는 정말 영화를 위해서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적인 현상'은 6월부터 하나둘 국내 메이저 배급사 작품들이 선보여지면서 무너져갔다. '뉴노멀 시대'엔, 그저 강한 영화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좌석 점유율 83.1%'의 상영 형태는 8월 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주 격차'로 메이저 배급사들의 작품이 하나하나 선보여지기 때문.

다 같이 공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반도>가 전체 상영관의 83.1% 좌석 점유율을 가져간 날, 좌석 판매율은 '22.8%'였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의 화살이 고스란히 '극장'이 아닌, 영화의 '제작진'이 받는 것 같아 안타까움에 남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영화 내적인 이슈로 넘어가 보자. 연상호 감독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익스트림 무비'에 직접 '사과문'을 남겼다. 개봉 이후인 7월 21일에 올라온 <중앙일보> 홍보 인터뷰 기사가 화근이 됐기 때문.

"볼거리 위주라 캐릭터·드라마는 밋밋하단 평도 있다"는 질문에, 연상호 감독은 "전혀 약점이 아니라 생각한다. 약점이라 생각하신 분들은 변화를 못 받아들이시는 게 아닌가"라고 답했다. 약 16만 이상의 조회 수가 나온 해당 인터뷰 기사는 일파만파로 각종 커뮤니티에 퍼지기 시작했고, 작품에 대한 비난 여론은 관객 수 하락(7월 23일 현재, 일일 관객수 10만 명대를 지키지 못하게 됐다)으로 이어졌다.

연상호 감독은 결국, "해당 인터뷰는 개봉 전 진행되었고 아직 만나지도 못한 관객을 탓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었든 이는 저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고 저의 실언이었습니다"라며 사과를 해야 했다.

<돼지의 왕>(2011년), <사이비>(2013년), <서울역>(2016년) 등 애니메이션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준 연상호 감독. 그는 첫 상업 실사 영화 <부산행>(2016년)을 통해 '볼거리'와 '캐릭터', 그리고 '드라마'를 모두 챙겨간 연출을 통해 흥행 감독 대열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애니메이션만큼 어둡지 않지만, <부산행> 내부 KTX 속 인물 군상의 갈등, 그리고 몰려오는 좀비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 등은 당시 우리 사회 축소판처럼 보였다. 또한, 마동석으로 상징되는 원펀치 액션, 공유의 부성애에서 나오는 '신파' 등은 대중의 마음을(부정적 혹은 긍정적이든 어느 방향이든지)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다음 작품인 <염력>(2018년)은 그렇지 못했다. '볼거리'가 '캐릭터', '드라마', 작품에 깔린 '용산 참사' 관련 이슈 등을 완벽히 덮어버렸다.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에서 나오는 메인 캐릭터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공감보다는 비웃음을 사게 해줬다.

그 때문이었을까? <반도>(2019년)는 몇몇 장면에서 연상호 감독의 의지가 보였고, 몇몇 장면에서 그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작품의 의도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성이 무너진 세상, 야만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야만성이 내재되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영화는 <부산행>에 나온 좀비 사태 이후 4년을 배경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물에서나 볼법한 장면을 한국으로 고스란히 옮기는 데 나름 공을 들였다.

할리우드 작품에서나 느낄 수 있는 암울한 공기를 세밀하게 표현한 것에는 찬사를 보낼 만하다. '카체이싱' 장면도 실제 레이싱 장면을 촬영한 이후 CG 작업을 진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년)에 비하면 'CG티'가 많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제작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여름 블록버스터 볼거리'로는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세계관의 설득력이다. 이 영화의 시점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22세기를 무대로 한 것도, 시작은 창대했으나 지금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대표 체험 시설이 된 <워터월드>(1995년)처럼 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닌, '4년 후'의 이야기다.

말이 '4년 후'이지, '2016년에서 분리된 평행 세계의 2020년'과 다름이 없다. '코로나19'가 퍼진 세상이 아닌,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일 뿐, 크게 변화될 것은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의 몇몇 미장센(차량 디자인이나, '731부대'의 모습)은 서두에 언급한 두 영화에서 볼법한 이미지들이 차용되어 이질감을 준다.

'준이'(이레)가 운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애니메이션 속 '디스토피아' 세계에서는 어린 주인공들이 무기를 들거나, 운전(비행)하는 것은 낯이 익다. 어느 정도의 허용이 가능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소녀 캐릭터의 생존과 성장 서사를 보여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다.

그런데 이 영화는 '준이'가 어떻게 그런 위험한 세상에서 운전을 배웠는지에 대한 전사를 포기한다. 동생인 '유진'(이예원) 역시 "내가 나설 차례인가"를 외치며 호기롭게 등장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그저 소녀 캐릭터를 두 명이나 보여줬으니,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두 캐릭터는 기능적으로 소비되고 만다.

무려 3단계에 걸쳐 보여준 후반부를 위한 '눈물 셔틀' 기능 말이다. 어린아이의 눈물 앞에서 무너져 내려가는 '김 노인'(권해효)의 모습을 통해(그저 미래 세대를 위해 '사망 플래그'를 꽂는 존재였다) 눈물을 흘리라고 강요를 하는 이 장면.

이 장면은 서두에 언급한 '감독의 의지'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며, 차곡차곡 쌓아가던 극의 흐름을 조금씩 허물어간 대목이었다. <부산행>의 결말에 나오는 부성애 신파 장면은 관객에게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김 노인'의 죽음은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2020년)의 어이없는 주인공의 죽음만큼이나 허무했다. '슬로우모션'의 과잉 사용, '천리안'에 가까운 시력으로 아이들의 탈출 여부를 확인하는 어머니, 그걸 또 발견하는 아이들, '서브 캐릭터의 상중에는 예의를 갖추고' 덤비지 않는 좀비들의 모습은 덤.

'신파'의 사용이 꼭 나쁘다는 의미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신파'는 곳곳에 등장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만 하더라도, 10년을 이끌어간 주인공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하며 함께 우는 관객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신파'를 극의 전개에 억지스럽게 넣지 않고, 자연스럽고, 조심스럽게 넣는지"를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나아가서, '시각적인 볼거리'도 중요하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CG를 사용하는 이 시기에, 결국은 '캐릭터의 스토리텔링'이 더 중요하다는 대중의 '관람 흐름 변화'에 도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업 영화의 미덕은 아닐까? 이것은 단순히 감독만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다.

2020/07/09 CGV 용산아이파크몰
2020/07/16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