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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정답이 없다'고 인정한 영화

조회수 2020. 6. 2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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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사라진 시간> (Me and Me,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사라진 시간>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영화 <사라진 시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우가 아닌, 처음 메가폰을 쥐었던 정진영 감독은 이 영화에 정답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스스로 이 영화가 '사유의 도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진웅의 흑백 표정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같은 장면의 컬러 버전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종이에 물감을 칠하고, 반으로 접은 이후 떼면 나오는 '데칼코마니'와 같은 느낌으로.

이처럼 이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 문법인 기승전결과 장르 공식을 탈출한다. '미스터리'라고 포스터에 있지만, 이것은 감독의 말마따나 홍보사에서 정한 것일 뿐. 멜로, 스릴러, 코미디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운 영화겠지만, 이 역시 영화가 가진 힘임에는 분명하다.

흑백 화면 이후, 영화는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수혁'(배수빈)과 '이영'(차수연)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감나무에서 감을 따며, 자연산 송이버섯을 구워 먹는 등 시골 마을에 점차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내에게는 밤만 되면 다른 이로 빙의되는 병이 있던 상황.
이를 숨기고, 편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 부부는 시골로 내려온 것이었다. 시골로 내려온 '수혁' 친구들의 서울 집세 문제, 아이들 대학 입학 문제 등은 이 부부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던 셈. '이영'은 자신의 삶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자, 마을 문화센터에서 강사 '초희'(이선빈)에게 뜨개질을 배우고, 토끼 인형을 만든다.

한편, 마을 주민 '정해균'(정해균)은 '초희'의 비밀을 알게 되고, 절친한 이장 '두희'(장원영)에게 이 비밀을 전한다. '두희'는 자연스럽게 마을 전체에 '외지인 부부'의 비밀을 퍼뜨린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회의 끝에, '초희'를 밤마다 옥탑방에 올려보낸 후 가두기로 한다.

'수혁'은 비인간적인 생활에 반대하며, 같이 옥탑방에 올라가고, 누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다. 부부는 연기로 인해 질식사하고, '형구'(조진웅)는 화재 사건의 수사를 위해 시골 마을을 찾는다. 수상한 마을 주민을 계속해서 조사하던 그때, 마을의 '수돌노인'(신강균)이 준 술을 마시고, 부부네 집에서 잠든 '형구'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자고 일어나니, 자신을 형사라고 기억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으며, 마을 사람들은 '형구'를 학교 선생님이라 생각한다. 당황한 '형구'는 집에 가지만, "보이는 것만 따라가"라고 말하던 아내 '지현'(신동미)는 온데간데없고, 처음 보는 남자만이 집에 있었던 것. 심지어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엔 '형구'의 아이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심지어 우연히 만난 '지현'은 '해균'의 동창이자, 내연 관계 중인 경찰청장의 아내로 '형구'를 처음 만나게 된다. 문화센터 뜨개질 강사 '초희'는 '형구'를 만나, 반갑게 '형구'에게 인사를 건넨다. '형구'는 '초희'를 처음 보는 상황이었던 것.

<사라진 시간>은 '삶의 정체성'이라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데칼코마니' 같은 '형구'의 상황에 이입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게 말이 되나?"라며, 배우들도 자신이 한 연기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던 때가 한순간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인데, 그 정도로 이 작품은 '형구'가 처한 두 상황 중 어느 상황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를 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는 정의할 수 없지만, '수안보 온천' 장면에서 등장하는 동그란 노천탕의 분위기나, '형구'의 집에 있었던 부적 등을 놓고 봤을 때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연상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석탑 수리 공사를 두고 "옛날 맛은 안 난다"라고 표현하는 '초희'나, 기왓장에 자신의 이름과 옛 전화번호를 적는 '형구'의 모습, 그리고 그 대화가 나오는 주요 배경지인 '충주호'의 과거 수몰 지역이 지금은 잊힌 과거가 됐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삶, 그리고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형구'의 심리 상태를 따라가면 기존 상업 영화의 공식에선 볼 수 없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사 과정에서 등장하는 뜬금없이 자백하는 모텔 이름인 '킬리만자로'나, '수돌노인'의 잔치 건배사는 진지한 상황에서 일종의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위트 있는 정진영 감독의 연출이 한몫을 한 것. 여기의 스태프들의 노고도 인정해야 한다.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에서 음악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 달파란 음악감독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스코어나, <시>(2010년)를 작업했던 김현석 촬영감독이 찍은 몇몇 롱테이크 쇼트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또 한몫을 한다.

인상적인 대목은 <끝까지 간다>(2014년) 이후, 최고의 연기를 펼친 조진웅의 모습이 담긴 음주 롱테이크 장면. 자신의 기억 속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술을 흠뻑 마시며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모습은 감히 2020-21 한국의 영화 시상식 시즌에서 지켜봐야 할 연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2020/06/09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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