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의 '첫사랑 못 잊어' 팔이 영화라고?

조회수 2020. 5. 3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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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카페 벨에포크> (La belle epoque,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카페 벨에포크> ⓒ (주)이수C&E
<카페 벨에포크>는 분명 사람들을 과거의 추억으로 떠나게 하는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이지만, SF 영화에서 볼 법한 상대성 이론 같은 과학적 이론들이 소개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판타지 영화처럼 시간 영화를 다루진 않는다. 이 작품에서 시간 여행을 사용하는 방법은 '나름' 현실적이다.

마치 연애를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연애 에이전시'가 나오는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년)과 같다. '앙투안'(기욤 까네)은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핸드메이드 시간 여행'이라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이 시간 여행을 이용하면 18세기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교 모임으로 떠날 수 있고, 20세기 초중반을 대표하는 미국 문학의 거장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술을 진하게 마실 수 있었다. 아니면 나치의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도화선이 되었던 히틀러의 1938년 뮌헨 협정 현장으로 떠날 수 있다.

그 와중에 욕을 얻어먹으면서 뺨을 맞는 '히틀러'는 덤. 이렇게 고객이 원하면 뭐든 (의뢰인 없을 때는 투정을 부리지만) 다하는 '앙투안'에게도 고민이 있다. 이렇게 일만 하니, 실제 생활에선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
한편, '빅토르'(다니엘 오떼유)는 '지나간 시대'가 된 아날로그 스타일을 사랑한다. 옛날 옛적엔 신문에 만화도 기고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에겐 아내 '마리안'(화니 아르당)이 있다.

남편과 달리 디지털로 상징되는 무인 운전 자동차를 몰고, 자기 전엔 'VR'을 이용해 꿈을 꾸려 한다. 덕분에 과거의 향수에 빠진 '빅토르'와 달리,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잘 흡수하는 인물이었고, 남편과의 대화는 저절로 줄어들게 된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남편과 다른 곳을 향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자극을 향해 쫓아간다.

어느 날, '앙투안'은 그런 과거를 못 잊는 '빅토르'의 시간 여행을 연출하게 되고, '빅토르'는 첫사랑을 처음 만났던 1974년의 '카페 벨에포크'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현실에선 말다툼에 집도 쫓겨날 정도로 권태로움에 빠졌지만, 여전히 순수한 사랑을 내면에서 열망하던 '빅토르'.

그런 '빅토르'의 첫사랑을 '연기'한 배우 '마르고'(도리아 틸리에)는, 늘 자신을 찾아와주는 관객과 현재의 애인보다는 자신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주고 관심을 쏟아줄 사람과의 사랑을 꿈꾸는 상처받은 인물이었다. 그런 '마르고'는 '빅토르'의 첫사랑 배역에 빠져들면서,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가 아물어진다.
어쩌면 '마르고'는 '빅토르'의 한결같은 마음에 감명받고, 자신에게도 그런 사랑이 찾아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마리안' 역시 '시간 여행'에 빠져 있는 남편이 점점 활력을 되찾는 것을 보며, 과거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앙투안'에게도 영향력을 미치는데, '빅토르'의 순수한 사랑을 보며, 자기 삶에서 일보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중년 남성의 '첫사랑 못 잊어 팔이'로 끝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왜 '빅토르'의 불평을 조금이나마 들어줘야 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첫 장면에서, 이 영화는 '극중극'으로 시작된다. 갑자기 로맨스 장르와는 상관없는 총격전이 나오니,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냐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온라인 스트리밍 콘텐츠'였던 것. '빅토르'는 도대체 왜 이런 것을 만드는 지라고 불평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그때가 더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의미를 묻는 것에는 '거리 두기'를 시행한다. 이 영화는 '빅토르'의 태도 변화를 주요 포인트로 삼는다. '빅토르'는 자신이 젊은 날에 했던 일을 되찾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만화가의 삶이었을 터. 현실 세계도 만화보다는 웹툰 쪽으로 시대의 흐름이 옮겨가지 않았는가?

그저 '빅토르'는 자기 자신이 좀 더 만족스러웠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며, 인생에 소명도 있었고, 즐길 줄 알았던 그 때를 되찾길 원했다. 사랑도 그 중 하나였던 것. 결국,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존중과 욕구도 되찾아가면서, '현실 참여'에 대한 힘을 얻고자 한다.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던 콘텐츠를 수용하는 모습이 대표적인 장면.

한편, '빅토르'를 연기한 다니엘 오떼유는 현재까지도 전해지는 프랑스 명작 영화인 <마농의 샘>(1986년)으로 영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제8요일>(1996년)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국민 배우다.
섬세하고, 묵직하며, 농도 짙은 연기를 선사한 다니엘 오떼유는 '빅토르' 캐릭터를 해석하면서, '회환'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순간 다시 불붙은 '희망'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런 불꽃이 하나만 튀어도 큰불을 지필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마리안'의 캐릭터 설정은 왜 그렇게 이뤄졌을까? 작품을 연출한 니콜라스 베도스 감독은 '마리안'을 맡은 화니 아르당에게, '마리안'이 내보낸 냉혹한 면이 '쇠락'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늘 상기시켰다. 미래를 거부하는 남편을 그렇게 못마땅했던 이유는 결국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현재에 적응하려는 '마리안'의 태도였던 것.

이런 연기를 펼친 화니 아르당은 이 작품으로 세자르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세밀한 스크립트를 선보였던 니콜라스 베도스 감독도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년)을 제치고 세자르 시상식 각본상을 받았다.

2020/05/20 CGV 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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