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에 찾아온 '바보 추기경'

조회수 2020. 5. 4. 12: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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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저 산 너머> (Beyond The Hill,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저 산 너머>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리틀빅픽처스
지난 4월 29일 개봉한 <저 산 너머>는 5월 1일부터 3일까지 집계한 주말 박스오피스 TOP10 중 유일하게 포함된 한국 영화다. 한국 최초, 세계 최연소(1969년, 47세)로 추기경에 오른 '김수환'(이경훈)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담아낸 <저 산 너머>의 개봉일은, 의미심장하게도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2009년 선종한 김 추기경은 자신을 바보라 지칭하며, 증오와 대립보다는 사랑과 화합을 중요시했던 인물이었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는 독재에 항거하는 이들의 핍박을 받아들이려 했다. 종교의 편을 가르는 것을 경계했던 그는 법정 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종교인을 넘어선 이 시대 '어른'의 모습이 그에겐 새겨져 있었다. <저 산 너머>는 1993년 <오세암>(1984년)으로 유명한 정채봉 작가가 김 추기경과의 대화로 만든 소년한국일보 동명 연재작(2009년 2월 <바보별님>으로 출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1928년 일제 강점기 시절, 독실한 가톨릭 신자 부모로부터 태어난 7살 소년 '수환'의 에피소드들을 엮어, 왜 그가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됐는지를 담아낸다. '수환'의 어머니(이항나)는 행상을 통해 어떻게든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안내상)는 평생을 옹기장수로 살아왔지만, 건강이 날로 좋아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수환'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윤신부'(강신일)는 '수환'에게 아버지가 남긴 말의 의미와 더불어, '김대건 신부'(김영재)와 김 추기경의 할아버지 '김익현'(송창의), 할머니 '강말손'(이열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잠시 강신일 배우의 내레이션과 함께 펼쳐지는 '다큐멘터리 드라마' 구성을 취한다)

그런 가운데, 처음 사제서품식을 보게 된 '수환'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자신이 깨닫지 못한 소명을 느끼며, 8남매 집안 중 출가하지 않은 두 아들 '동한'(정상현)과 '수환'이 신부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형 '동한'은 이 소망을 수락하지만, 막내 '수환'은 '인삼 장수'가 되겠다며 거절한다.

영화는 이런 주요 플롯을 바탕으로,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볼 법한 아름다운 색채의 영상미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몇몇 소소한 에피소드를 나열식으로 전개한다. 다소 딱딱한 극의 분위기를 유연하게 해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수환'의 친구들이 볏짚으로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하던 중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아이들과 싸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극 영화에서 '양념' 이상의 위치를 차지한 '갈등'을 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해당 장면은 슬로우모션을 활용한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처럼 연출된다. 이는 전체적인 영화의 톤과는 맞지 않는 그림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김 추기경의 얼굴에 왜 상처가 났는지를 보여줬다)

한편, 영화는 7세 '수환'의 모습으로만 전개된다. 곧바로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사진으로 등장할 뿐, 그가 어떤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는지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김 추기경이 어떤 삶을 살아온 관객들에게는 좋을 순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관객(천주교 신자가 아닌 경우도 포함된다)에게는 다소 아쉬운 극적 묘사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연출 지점은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이항나, 안내상, 강신일, 우현 등 베테랑 배우들의 호연과 2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이경훈의 어린 '수환' 연기는, 그래도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현재 우리에게 나름의 위안을 제공해주기에 충분했다.

2020/05/03 CGV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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