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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극장가'에 한 줄기 희망 준 영화

조회수 2020. 4. 2.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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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찬실이는 복도 많지> (Lucky Chan-Sil,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표지 및 이하 사진 ⓒ 찬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한국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하거나, 고스란히 그 피해를 받아들여야 했다. 지난해 3월과 대비해 87.4%나 줄어든 관객 수 만큼이나 극장가는 한산함 그 자체였다. 오히려 극장에서 지금 영화를 보면, '나만의 전용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한 줄기 희망처럼 다가왔다. 사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이미 독립영화계에서는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 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받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선 관객상을 받았다.

작품을 연출한 김초희 감독은 <우리순이>(2013년), <산나물 처녀>(2016년)와 같은 개성 있는 단편을 만들어왔고, 첫 장편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경영이 어려운 작은 독립영화관은 운영 횟수를 줄이거나, 휴관하는 곳도 있는 와중에,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약 한 달 사이에 2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하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이 영화를 그렇게 많은 이들이 관람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은 예술영화 프로듀서를 하던 '이찬실'(강말금)이 따르던 '지감독'(서상원)이 갑작스럽게 술자리 회식 중 세상을 떠나, 일자리 복이 사라진 '찬실'이 산 중턱에 있는 집에 세 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40대 여성으로, 연애나 결혼을 모두 포기하고, '지감독'과 오랜 기간 프로듀서와 감독의 관계로 작업만 하던 '찬실'은 위기에 빠진다. '찬실'에게 "한국영화의 보배"를 줄여 "한보"라며 비행기까지 태워주던 '박대표'(최화정)는 '지감독' 영화는 네가 없어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이전 경력이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물론, 영화가 아무리 '감독 예술'이라고 하지만, 스태프들의 노고가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작품상은 '프로듀서'가 받는다) 사례만 언급해도 알 수 있을 터. 그나마 배우 '소피'(윤승아)가 딱한 '찬실'의 상황을 알게 되어, 가사도우미 일자리를 준 것이 '찬실'에겐 위안이 된다.

작품의 전체적인 아이디어는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온 것. 김 감독도 전직 프로듀서 출신으로, 오랜 기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실업자가 되고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중 배우 윤여정이 <그것만이 내 세상>(2018년)을 통해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해야 하는 캐릭터를 맡았고, 부산 출신인 김 감독은 윤여정의 사투리 지도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인다.(<산나물 처녀>를 통해 두 사람은 인연을 맺었다)

주인공 '찬실'은 '빛날 찬, 열매 실'(燦實)에서 따온 것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살아온 주인공이 나이 마흔이 되도록 결실을 보진 못했지만, 꼭 뭔가를 맺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졌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투입한다. '소피'의 프랑스어 과외를 해주던 단편영화 감독 '김영'(배유람)은 자연스럽게 '찬실'과 영화 이야기를 한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영화가 차이 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김영'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좋아한다면, '찬실'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좋아한다는 것.

그러나 서로는 어떤 감독을 좋아하던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논쟁을 심하게 벌이지 않는다. "어떤 감독이 더 낫냐?", "이 영화도 몰라보는 네가 진정한 '시네필'이냐?"라는 그렇게 영양가 있어 보이지 않는 논쟁보다는 "좋은 걸 보고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더 좋다"는 게 두 사람의 마음.

이런 마음이 관객에게 조금씩 통하는 와중, '찬실'의 주위엔 <아비정전>(1990년)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속옷 차림으로 맘보 춤을 추던 '아비'(장국영)를 따라 하는 남자(김영민)가 나타난다. 그는 '찬실'이 힘들 때마다 갑자기 나타나 무언가의 조언을 하고 사라진다.
김 감독은 "홍콩영화를 보고 열광하던 세대" 중 하나가 자신이라며, 소위 말하는 '시네필'이 되면서 홍콩영화를 한동안 잊고 지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논쟁과 유사한 것으로, 홍콩영화가 어떠한 사유의 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초심으로 들어가 글을 쓰던 김 감독에게 시작점은 장국영이었다.

장국영이 김 감독에게 줬던 위로와 격려는 자연스럽게 '찬실'에게도 적용됐던 것. 여기에 김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자신의 영화 예찬을 마무리한다. 김 감독은 역사상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1895년), 그리고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자주 등장시켰던 '우리의 삶'을 나타낸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으로 탄생한 것이 영화"라는 의미를 살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마지막 장면에 연출하고 싶었던 것.

한편, 작품은 단순히 사건을 중심으로 한 서사 구조가 아닌, '찬실'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자신이 느꼈던 정서를 영화에 투영시키면서 보게 되고, 주인공의 여정에 공감하게 된다.
"나는 어떤 영화를 사랑해 왔고, 나만의 '장국영'은 누구였을까?"부터, "앞만 보고 달려온 나는 위기의 순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다양할 터. 봄은 왔지만, 온 세상이 꽁꽁 언 겨울처럼 느껴지는 이 위기의 상황에서, 김초희 감독이 쓴 글을 그대로 인용해보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보다 더 정확한 영화의 기획 의도는 없을 테니.

"순식간에 세상 만물을 깨우는 봄이라는 계절은 분명 우리에게는 희망이다. 나는 우리네 행복이라는 것도 이러한 계절의 이치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내 겨울일 것만 같던 혹독한 계절을 지나 비로소 봄을 맞이했을 때의 느껴지는 가슴 벅참! 그것이 바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관객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다."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했던 주인공 '찬실이'는 실직에 이르러서야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이 고민한다. 그녀는 미뤄온 삶의 중요한 물음들을 던져야 하고, 아프게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딱 마흔 살이 된 '찬실'의 여정에 같이 웃고, 울기를 소망해본다."

2020/03/07 CGV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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