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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4시간 일하는 택배 기사에게 벌어진 일

조회수 2019. 12. 30. 18: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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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미안해요, 리키> 표지 및 이하 사진 ⓒ 영화사 진진
'리키 터너'(크리스 히친)와 '애비 터너'(데비 허니우드)는 두 자녀 '셉'(리스 스톤)과 '라이자 제인'(케이티 프록터)을 비롯한 가정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맞벌이 부부'다. '터너' 가족은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온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를 제대로 맞아야 했다.

'리키'는 반숙련공으로 건설 현장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노던록 은행'이 파산하면서 '리키'는 실업자가 되고, 그러다 보니 주택 융자를 받지 못하는 등 삶이 흔들리고 말았다. 그렇게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리키'는 택배 기사로 새 삶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리키'는 무언가 이상한 계약서에 사인한다. 택배 회사의 매니저 '멀로니'는 "당신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채용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형태의 자영업이라는 뜻.

'리키'는 하루 14시간, 6일을 근무하면, 빚도 갚고, 집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택배 회사는 '리키'에게 최소한의 노동권이나, 생명권도 책임지지 않는다. 옆에 동료는 패트병을 건네주면서, 화장실에 갈 일이 없으니 소변을 여기에 보라는 농담 아닌 조언을 남길 정도.
정말로 택배 기사 일을 시작하면서, '리키'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조금만 고생하면 엄청난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던 '리키'에게는 '수입으로 얻는 수익'이 많지 않았다.

차량 할부금, 기름값, 보험료는 기본이며, 택배 차량을 불법 주차했다는 이유로 내야 할 과태료, 자신이 일하지 못하면 대체해야 할 '대체 기사' 고용금(하청의 하청의 하청이다), 물건 파손 및 도난의 경우엔 그 비용까지 택배 회사에 보상해야 한다. 당연히 바코드를 찍는 기계 역시 박살 난다면, 그것이 자의건 타의건 간에 '리키'의 부담이 된다.

이런 비참한 상황은 아내 '애비'도 마찬가지였다. 노인들을 간병하는 복지사 '애비'는 제로아워 계약으로 근무 중이다. 정해진 노동시간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으로, '애비'는 돌보는 건당으로 급여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12~14시간을 일해야 그나마 먹고살 돈을 버는 셈.

문제는 이러한 노동으로 지쳐가는 부모로 인해, 자식들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다는 것. 알아서 시리얼을 먹고, 인스턴트 식품을 데워 먹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과의 소통 자체가 차단되고 마는데, 특히 우등생이었던 아들 '셉'은 "미래에 희망 따위는 없다"며 학교 무단결석을 일삼는 불량아가 되어 간다.
칸영화제 황금 종려상만 두 번 받은 노장 감독 켄 로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 이후 자신의 은퇴를 번복하면서 <미안해요, 리키>를 연출하게 됐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평생 일을 했지만, 지병인 심장병으로 더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목수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과정을 담았었다.

당시 '푸드 뱅크' 취재에 나서던 켄 로치 감독은 많은 이들이 '파트 타임 계약', 혹은 '제로아워 계약'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치 한국이 IMF 시기 이후,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이 증가했던 것처럼, 영국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이런 비정규직 노동 비율이 증가했던 것.

일자리에 정규직보다 계약직, 프리랜서 등을 주로 채용하는 '긱 이코노미'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하층계급의 일상을 담아온 다양한 영화를 연출해 온 켄 로치 감독은 다시 메가폰을 잡아야 했다. '긱 이코노미' 노동자 중 택배 기사를 소재로 한 이유는 택배 기사의 노동 착취가 현대 기술을 이용하면서 대두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배송 위치 추적 기술'이나, 개인 사업자라는 계약 방식 때문에 모든 문제는 택배 기사가 책임져야 하는 구조로 인해, 택배 기사들은 과도한 노동으로 고생해야 했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가족의 삶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전체 사회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독은 보여줬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성실하게 일하는 이 가족이 행복할 시간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노동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리얼리즘을 담아내는데, 이는 실제 배관공 출신의 노동자이자 '개인 사업자'로 20년을 일했던 배우 크리스 히친과 '노던록 은행'이 무너지면서 정리 해고 대상자였던 보조 교사 출신의 배우 데비 허니우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기'가 있기에 가능했다.

한편, 이 영화의 원제는 <쏘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다. 택배 수신자가 부재중일 때 택배 기사가 남기는 쪽지 속 표현이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놓쳤네요"라는 의미를 담은 이 메시지는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데, 덕분에 우리가 진정으로 놓친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해준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한국 개봉 명은 <미안해요, 리키>였다.

2019/12/27 CGV 신촌아트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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