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죽인 범인이 중요하지 않은 영화

조회수 2019. 12. 18.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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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아내를 죽였다> (Killed My Wife,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아내를 죽였다> 표지 및 이하 사진 ⓒ kth
* 영화 <아내를 죽였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공한 웹툰 원작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어떤 배우의 싱크로율이 정확하다가 아닌, 실사화 과정에서 관객에게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주인공의 서사가 잘 각색되어 전달됐는가.

그 부분에서 희나리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아내를 죽였다>는 그런 공감 능력이 결여된 것처럼 보였다. 일반 상영 관람 중 몇몇 관객이 자리를 이탈한 것을 목격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였을 터.

영화는 흥미로운 상황으로 시작된다. '정호'(이시언)는 아내 '미영'(왕지혜)과는 별거 중으로, 친구 '박진수'(이주진)와 전날 밤 술을 거하게 마셔 필름이 끊기고 만다. 경찰 '대연'(안내상)이 문을 두드린 덕분에 깨어난 '정호'는 '미영'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젯밤 알리바이를 묻게 된다.
'대연'은 횡설수설하던 '정호'의 옷에 혈흔과 더불어 피가 묻은 칼까지 목격하며 '정호'를 용의자로 인식한다. 하지만 '정호'는 '대연'을 기절시킨 후 도망치고, 조금씩 끊어진 기억의 조각을 찾기 위해 나선다.

그러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정호'가 왜 별거를 하게 됐는지, 그리고 왜 이런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정호'의 과거를 파악하면서, '정호'에 대한 연민의 정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점. 원작의 관람 여부와 관련 없이, 관객은 '정호'가 아내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하지만 점점 상황은 '정호'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죽인 거나 다름이 없다는 확신을 하게 만든다. 영화에선 행복한 신혼부부 시절의 '정호'와 '미영'이 언급된다. 하지만 '정호'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면서, 그 무렵부터 영화는 현대판 '운수 좋은 날'을 강조한다.
교과서에도 실렸기 때문에 누구나 다 알 법한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은 가난한 '김첨지'가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인력거꾼 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특히 그날따라 일이 너무나 잘 되어서, 병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설렁탕을 사고 들어왔으나, 이미 아내는 죽어 있었다는 결말은 여러 패러디를 통해 회자하고 있다.

이 영화도 '정호'는 "운수 좋은 날"이라는 대사를 뱉어내며, 유사성을 강조하려 한다. 하지만, 적어도 '김첨지'는 정당한 일을 한 후, 그런 비운의 주인공이 됐으나, '정호'에게는 그런 상황이 통하지 않는다.

'정호' 역시 '막노동'을 나가고, 돌아오는 길에 '불법 도박'이 가능한 오락실에 호기심으로 들어간다. 당연히 '호구'를 잡은 것으로 인식한 업주들이 '정호'를 가만둘 리 없었다. 결국, 도박 빚 때문에 사채까지 쓴 '정호'의 '빚 이자'라도 갚기 위해, '미영'이 유흥업소를 돌아다니며 '미성년자'들에게 술까지 따르는, 참으로 눈 뜨고 보기 힘든 '암흑의 구렁텅이'까지 빠지고 만다.

<아내를 죽였다> 제작진은 "일상이 무너진 상황에서 개인이 쉽게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와 그것이 만든 결과를 통해 '평범하게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진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라며 기획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회적 현실'을 탓하기엔, 이 영화엔 개인의 그릇된 선택이 이뤄낸 결과가 너무나 참혹하다. 누가 아내를 죽였는지를 찾던 이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아내를 죽인 거나 다름이 없다는 결론으로 향한다. 결정적인 문제는 계속된 회상 장면과 현재 시점의 반복으로 인해, 주인공이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방법이 너무나 쉽게 드러나고, 그러다 보니 모든 캐릭터들에게 등장하는 날 선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

1주일에 1~2회 정도 연재하는 웹툰에서는 당연히 독자가 다음 이야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그런 반복된 시점 전환과 상황 설정은 충분히 긴장감을 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완성된 한 편의 웹툰을 놓고 각색을 할 때는, 원작의 틀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촘촘한 전개를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성공한 웹툰 영화'의 요소들을 지니지 못했다.
예를 들어, <신과함께> 시리즈에선,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 중 한 명인 '진기한' 변호사가 나오지 않았었다. 처음 '진기한'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큰 비난이 있었으나, 김용화 감독은 뚝심 있게 각색 과정에서 중첩되는 내용이 많다며 캐릭터를 넣지 않았었다. 그런 뚝심들이 결국은 첫 쌍 천만 판타지 영화의 결과물로 이뤄졌다.

개봉 2주 차가 된 현재, <아내를 죽였다>는 "대규모 사이즈의 상업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라며, 공감의 시선으로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예산이 100만 원이던 100억 원이던 간에, 좋은 스토리를 지닌다면 가치를 뽐낼 수 있다. 이 영화는 한정된 상영 시간이 있는 영화라는 예술의 틀에서, '웹툰의 힘'만 믿고, 큰 각색 없이 그대로 만든다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가 됐다.

2019/12/13 CGV 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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