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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넘게 복수의 순간만을 기다린 여자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굿 라이어> (The Good Lia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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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굿 라이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복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요즘, 갑자기 '복수'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원수'를 갚음"이라는 짤막한 뜻을 지닌 '복수'(復讐)를 이해하려면, 당연히 '원수'(怨讐)를 알아야 한다.

"'원한'(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해 응어리진 마음)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 이렇게 어원을 찾아보니, <굿 라이어>에 등장하는 '베티'(헬렌 미렌)가 왜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복수'를 하고 싶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굿 라이어>는 2015년 발표한 영국 작가 니컬라스 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두 노인이 서로의 목적을 위해 만나 펼쳐지는 거짓말의 향연을 다룬 이 작품은 놀랍게도 그의 첫 번째 장편이었다. 영국 정보부 등 부서에서 25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으며, 은퇴 이후 취미로 쓴 글쓰기가 확장된 것이 여기까지 온 것.

출처영화 <굿 라이어> 표지 및 이하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국과 독일을 오가면서 펼쳐지는 현재와 과거의 교차가 흥미롭다는 평과 함께 영국추리작가협회가 데뷔작에만 주는 뉴 블러드 대거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이 작품을 놓칠 영화사는 없었다. 출간 직후, 워너 브러더스의 자회사인 뉴 라인 시네마가 영화화 판권을 사들이면서 캐스팅 작업이 진행됐다.

2018년 3월, <드림걸즈>(2006년), <미녀와 야수>(2017년)를 연출한 빌 콘돈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것이 확정됐고, 배우들의 캐스팅도 함께 발표됐다.

금융 사기를 일삼는 '로이' 역에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간달프'와 <엑스맨> 시리즈의 '매그니토'로 알려졌으며, 빌 콘돈 감독과는 노년의 '셜록'을 다룬 <미스터 홈즈>(2015년)로 인연을 맺은 이안 맥켈런이 맡았다. 차곡차곡 복수를 준비하는 '베티' 역에는 <더 퀸>(2006년)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헬렌 미렌이 분했다.

후술할 스포일러 속 영화의 의미를 빼고 이야기한다면,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거짓말'처럼 속임수나, 인간관계를 맺는 기술을 탐구하고, 연마하기 위해서는 그 속임수를 써야 하는 상대와 같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라는 우리 사회의 냉소적이면서, 암묵적인 사실을 일깨워준다.

영화 제목처럼 '좋은 거짓말쟁이(Good Liar)'라는 말이 '도덕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는 것.

예를 들어, '로이'와 '베티'는 서로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이용한다. 영화의 인트로는 데이트 상대를 찾기 위한 두 캐릭터의 양식 작성 모습을 교차 편집하면서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 사람이 음주를 안 한다고 하면서 술을 한잔한다거나, 흡연을 안 한다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바로 그것.

이다음부터의 전개는 원작 소설과 영화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중요한 설정을 초반에 공개한 후, 독자들이 등장인물들이 언제 그 설정을 인지하게 되는지가 '서스펜스'를 작동시키는 원리로 구성됐다면, 영화는 '로이'라는 인물의 관점으로 접근하다가 어느 순간 '베티'의 관점으로 상황을 옮긴다.

물론, 관객에 따라 '베티'가 '로이'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반전 장면이 클라이맥스에서야 등장하며, 하나하나 어떤 내용이 반전인지 설명하는 '플래시백' 장면이 고역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반전에 나오는 뚜렷한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어쩌면 이 반전의 메시지가 이 작품을 책에서 영화로 옮기게 한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플래시백'은 자연스럽게 '2009년 현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독일의 베를린으로 관객을 인도해준다. 15살 소년 '한스'는 사업가 집안의 막내딸인 '릴리'의 영어 선생님이었으나, '릴리'는 '한스'에게 강간을 당한다.

'한스'는 '릴리'의 언니들에게 키스를 시도한 것이 발각되어 쫓겨나지만, '복수'를 위해 '한스'는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반역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밀고한다. 이 '밀고'로 인해 '릴리'는 가족까지 잃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하지만 꿋꿋이 '생존'해 나간다.

언젠가는 '한스'라는 인물을 복수할 기회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편, '한스' 역시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전쟁 후 독일에서 영국으로 날아가, 자신이 지녔던 과오를 벗어던지고 '로이'라는 인물로 살아간다. 물론, 그의 '생존' 방법은 여전히 정당하지 않은 '사기'였다.

덕분에 영화는 '한스'를 통해 두 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아직도 '나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전범 재판'이 이뤄지고 있으며(93세의 나치 친위대대원이 2020년 재판을 받을 예정), 그만큼 '홀로코스트'라는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성폭행은 어떠한 이유로도, 가해자가 '정당성'을 부여받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한스'는 반성을 하는 척하면서, 끝끝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어 자연스럽게 영화는 '베티'가 자신의 복수를 완수한 이후, 자신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극복하며, 후세에게는 이러한 아픔이 없었으면 하는 걱정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한편, 워낙 많은 작품이 동시에 개봉한 덕에 흥행에서는 밀려난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국내에서 리메이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도 '나치'가 저지른 만행처럼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상처가 있으며, 온갖 변명과 모욕으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행위 등을 여럿 목격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이안 맥켈런과 헬렌 미렌처럼 뛰어난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한국의 배우들이 많이 있으니.

2019/12/07 CGV 영등포
- 키노라이츠 지수 84.62% (12월 11일 현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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