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을 우려먹었는데 아직 할 말이 많은 영화

조회수 2019. 11. 1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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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Terminator: Dark Fate,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표지 및 이하 사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것을 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아무래도 '터미네이터'의 세계 정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알파고'를 만들어낸 '구글'이 '스카이넷'이 될 거라는 우스개까지 할 정도였다.

1997년 지능을 갖춘 '스카이넷'이 핵전쟁을 일으키고, 기계의 지배에 저항하는 반란군이 등장해 '전쟁'을 펼친다는 설정은 1984년 <터미네이터>, 1991년 <터미네이터 2>가 개봉할 때만 하더라도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다행히 1997년에 '그런 일'은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았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꾸준히 '스카이넷'이 가동되어, 이 세상이 망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터미네이터 3>(2003년)의 마지막 장면이 그러했고, 그 결말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009년)은 그 결말로 바뀐 세상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담아냈었다.
그무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오리지널 스토리 고갈'을 이유로, 무분별한 '리부트'를 감행했다. 좋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소재는 줄어드는 반면, CG 기술력의 혁신으로 과거 상영했던 작품들에 좀 더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계획을 주로 세웠던 것.

물론, 좋은 리부트는 관객에게 찬사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년)가 그러했다. 저예산 원작에선 담을 수 없었던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제대로 다루면서, 거친 날것의 몸짓과 CG의 절묘한 결합, 그리고 여성 서사를 가미한 줄거리 보완은, 1970~80년대 3부작을 연출했던 조지 밀러 감독에게 아카데미 6관왕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게 해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들도 수두룩했다. <판타스틱 4>(2015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너무나도 어둡고, 또한 진지하게 해석하려고 했던 '판타스틱 4' 멤버들의 모습은 조악한 CG와 함께, 이상한 연출로 뒤범벅되며 '망작의 반열'에 올라서야 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5월)와 <판타스틱 4>(8월)의 중간 시기에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년 7월)에 대한 평가는 개봉시기 만큼이나 딱 그 중간이었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면서 펼쳐지는 사건들은 철저히 1편과 2편의 이야기와 연결 짓기 위해 구성됐다.

마치 자신이 진정한 3편의 적통임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편과 2편 속 작품의 주제 의식이나, 시각적인 긴장감 자체가 떨어진다는 단점을 드러냈고, 간신히 손익을 넘기면서, 이후 새로운 3부작 계획(2017년 속편을 예정했었다)은 모두 엎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터미네이터'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향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제작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1편과 2편을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후 만들어진 모든 '터미네이터'를 속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리부트'가 아닌 '3편'의 위치에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기존 작품엔 등장하지 않은 린다 해밀턴이 그대로 '사라 코너' 역에 합류했는데, 이는 전 남편이기도 한 제임스 카메론의 설득으로 가능했다. 덕분에 이번 작품은 1편과 2편에서 만들어진 서사 구조를 '2019년 사회의 변화 흐름'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이 됐다.
가장 먼저 보이는 재해석은 세상을 지켜야 할 사람의 변화이며, 그것으로 이어지는 세 여성의 연대였으며, 이 해석은 철저히 연출자 팀 밀러 감독보다는 제작자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서 이뤄진 것들이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줄곧 '강인한 여성 주인공 서사' 작품들을 만들어 왔었다.

<에이리언 2>(1986년)에서 욕설을 걸쭉하게 뱉으며 '에이리언'과 맞선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있을 것이며, <트루 라이즈>(1994년)에서도 '헬렌'(제이미 리 커티스)은 어쩌다 평범한 일상에서 남편처럼 첩보원이 되어 활동한다.

멜로 영화일 것 같아 보이는 <타이타닉>(1997년)에서도 '로즈'(케이트 윈슬렛)는 억압된 계급 사회에서 탈피하려 하는 진취적인 여성으로 등장한다. 가장 최근의 연출 작품인 <아바타>(2009년)의 '네이티리'(조 샐다나)나, 제작자로 참여했던 <알리타: 배틀 엔젤>(2019년) 속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도 그런 면에서 본다면, 매우 충실한 '여성 전사' 캐릭터였다.

당연히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도 자신의 인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라 코너'는 1편과 2편을 통해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있던 캐릭터였었다.
1편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처음엔 겁을 먹었으나, 이내 조금씩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2편에서는 그 미래가 다가온다는 걸 깨닫고 '심신 수양'을 한 상태로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한 한계는 '존 코너'였다. 자신이 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닌, '존 코너'가 바꾸는 미래를 위해서 자신이 움직인 것이다.

오죽하면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직후, '사라'는 차 안에서 '존'에게 "엄마를 구하기 위해 함부로 목숨을 걸지 말라"며 소리까지 친다. 그런 상황에서 시간이 흐른 '사라'에게 '새로운 존 코너'와 '새로운 카일 리스(1편에서 '사라 코너'를 구해주러 미래에서 온 '존 코너'의 아버지)'가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 헀다.

괜히 '사라 코너'가 미국 국경으로 넘어가는 중 '새로운 존 코너'의 포지션인 '대니'(나탈리아 레이즈), 그리고 '대니'를 지키러 미래에서 온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에게, 더는 자신이 '구원자'가 태어나는 '자궁'이자, '구원자'를 지켜야 하는 '어머니' 역할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말까지 하겠는가.

이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편과 2편에서 나온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여성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중심으로 내세웠다. '대니'는 백인이 아니며, '사라'는 노년이며, '그레이스'는 고전적 성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터미네이터'에게는 변화가 없었을까? 이번에 새롭게 나타난 '레브-9'는 '히스패닉 출신' 배우인 가브리엘 루나를 캐스팅하며 완성했다.

'레브-9'는 자신의 몸을 변형 시켜 경찰과 군대를 모두 장악하는 위력을 보여주는데, 이미 1편 'T-800'과 2편 'T-1000'이 보여준 '불사조 정신'이 또 나오는 터라 새롭다는 인상을 주긴 어렵지만, 적어도 1편과 2편의 '터미네이터'들은 경찰을 죽이면 죽였지, 일행들을 잡으려는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한편, <로건>(2017년)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영화도 '무의식적으로'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비꼬는 듯한 장면이 삽입됐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맡은 원조 '터미네이터'에게도 변화는 존재했다. 2편에서도 '눈물의 의미'는 알아채더라도,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터미네이터는, 어느덧 '가장'으로 등장하고, 그 가장의 역할도 이내 '자신의 운명'이라는 이유로 놓게 된다.

이 '터미네이터'는 지금까지 나온 '터미네이터'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선택을 한다. 단순한 상명하복에 의해서 상대방을 지키고 죽이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크 페이트(어두운 운명)'를 바꾸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 이런 내용이 35년을 우린, '사골' 시리즈가 된 <터미네이터>의 최신작이 똑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르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였다.

2019/10/18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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