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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버티는 게 힘들었다

조회수 2019. 10. 1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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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버티고> (Vertigo,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버티고>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트리플픽쳐스
"이 영화를 '버티고' 보는 것이 힘들었다"라는 후기 평을 봤다. 팍팍하게 직장 일을 간신히 마친 저녁 시간, 하루를 정리하는 이 시간에 영화 <버티고>를 보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다수의 인물이, 관객의 우울감을 유발하는 사연을 시연하거나,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30세 '계약직' 디자이너인 '서영'(천우희)의 일상을 보면, 이 작품이 왜 '현기증'이라는 의미가 담긴 '버티고(Vertigo)'라는 중의적 제목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될 법도 했다.

작품 속 '서영'은 사내 비밀 연애 중인 '진수'(유태오)와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하고, 회사 내부에서는 재계약 시즌이기 때문에 긴장을 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새벽에는 히스테리를 부리는 엄마(전국향)의 전화가 잠을 방해한다.

결국, 고층 건물이 있는 사무실에서 '이명'과 '현기증' 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기에 이르지만, 병원이 준 '보청기'를 꼈다간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착용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게다가 '진수'까지 뜬금없는 이유로 사직하고, 남성 상사로부터 폭행까지 당하는 통에, '서영'은 그 힘겨웠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편, 외벽청소업체의 젊은 로프공 '관우'(정재광)는 건물 밖에서 청소하던 중 '서영'의 고달픈 모습을 바라본다. 조금씩 '서영'의 일상을 지켜보던 '관우'는, '서영'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을 하려 한다.

물론, 아무리 좋은 말을 써서 '접근'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서영'이 회사 내부에 몰래 출입해서 선물과 메시지 카드를 놓거나, '서영'이 서점을 방문하는 것을 계속 보거나, 술을 마시고 귀가하려는 '서영' 곁을 걷는 모습은 '스토킹' 같다. 어쨌든 '관우'는 '서영'이 폭행당하는 것을 건물 밖에서 보고는, 창문을 두들기며 위기에서 구해낸다.

<버티고>는 <러브픽션>(2011년)을 통해 특별한 연애담을 선사했던 전계수 감독의 복귀작이다. 그가 대학 때 쓴 '널빤지 위의 사랑'을 모티브로, 일본에서 직장 생활(42층 사무실)을 하면서 경험한 일을 합쳐 만들어냈다. 그때 느꼈던 고독한 삶을 그대로 '서영'에 투영했던 것인데, 덕분에 고층 빌딩이라는 장소를 통해 도시의 고독한 삶을 담아내고자 했다.
100년 전 영화인 <메트로폴리스>(1927년)만 보더라도, 고층 빌딩은 인간의 '야욕'을 상징했다. 지금은 그런 고층 빌딩이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이고, 현대 산업사회의 대표적 이미지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버티고>에서는 고층 빌딩이 외부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외부와 연결되지 않는 수직의 고립적 프레임은 마치 현대인이 느끼는 단절과 소외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 안에서 '서영'이 받는 이명과 현기증은 영화적으로도 표현되는데,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소음과 비틀거리고 초점이 흐려지는 화면이 이를 대신한다.

천우희는 그런 '서영'의 심리 상태를 출중하게 소화했다. 이미 <한공주>(2013년)를 통해 천우희는 '자신의 탓'도 아닌 상황에서,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끝없는 도망을 간 '한공주'를 맡은 바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한공주'가 만약 성인으로 자란 상태라면 딱 이 상황이 아니었겠느냐는 생각을 들게 했다.

딱 그 생각을 하게 해주는 대목이, 초반부 독백인 "오늘 하루도 몹시 흔들렸지만 잘 견뎌냈다. 거리는 튼튼하니 이제 안심이다" 장면이었다. 롱테이크를 통해서, 아니면 흔들거리는 화면을 통해서 간에, 천우희는 화면 속에서 '서영'의 무기력한 외로움을 마음껏 표출해냈다.
여기에 다른 배우들인 유태오와 정재광과의 호흡도 훌륭했다. 특히 <러브픽션>(2011년) 때만 하더라도 단역이었던 유태오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 작품이었던 <레토>(2018년)의 주연 '빅토르 최'를 맡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문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애초에 이 영화는 어두운 심리로만 쭉 이어가기 때문에, 관객이 버티기 힘든 상황까지 몰고 가는데,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인지 결말 장면은 '서영'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를 통해 판타지와 같이 묘사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한 가닥 줄이 있었다"라는 감독의 변을 이해는 하겠지만, 그 아찔했던 장면은 개연성이 떨어져 보였다.

차곡차곡 쌓아가던 어두운 심리에서 나오는 햇살은 너무나 작위적이었다. 특히 그 시점에 나오는 키스 장면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그 키스로, 그 키스 이후의 상황을 통해, 과연 '서영'은 무기력했던 감정을 이겨내고 다시 이 사회를 '버텨낼' 수 있었을까?

2019/10/11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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