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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논란만 문제가 아닌 영화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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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룩
글 : 양미르 에디터

이순신과 더불어 광화문에 동상으로 함께 존재하며, 한국 역사에서 잘못 건드리면 화를 면하기 힘든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왔다. 세종대왕은 영화, 드라마 등 대중매체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는 소재이며, 그중 으뜸 소재라 할 수 있는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은 지상파 3사가 한 번씩 돌아가며 사용했을 정도로, 사실상 '레드오션'이 됐다.

가장 먼저 태어난 드라마는 1983년 방영된 MBC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뿌리깊은 나무>였고, 2008년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도 꽤 오랜 회차를 할애해가며 한글 창제 과정과 이에 대한 대립 등을 방영했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드라마는 한석규가 열연한 SBS의 <뿌리깊은 나무>(2011년)였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나랏말싸미>는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당연히 드라마에서도 '극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실제 역사와 다른 구성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최소한의 '정설'은 유지한 채 극을 이어갔다.

출처영화 <나랏말싸미> 표지 및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지금처럼 단순히 '실록' 뿐 아니라, 잡다한 글까지 모든 내용이 '인터넷 기록'으로 남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한글을 '제작'한 인물이 누구인가에 관한 질문은 학계에서도 하나의 결론으로 내려지지 않은 상황인 것.

당연히 '세종'의 이름으로 <훈민정음>이 반포됐지만, 그 방대한 제작 작업을 과연 혼자서 했을까? 대학교 강의의 주교재 서문 안에 단골로 등장하는 문구를 떠올려보자. "나와 사랑하는 제자들이 함께 만들어간 이 책을 많은 학생이 읽고, 학습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란다"가 대부분으로 들어갈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는 표현도 어디선가 볼 수 있다)

하물며 회사에서 프로젝트 작업을 할 때 자신의 이름도 들어가겠지만, 상사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인 게 요즘 시대인데, 조선시대 가장 강력한 왕권을 지닌 세종의 시기라면 어땠을까?

그렇기 때문에 한글 창제는 세종이 단독으로 진행을 했다는 학설과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했다는 학설이 현재까지 주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1940년, '실록'에서만 언급됐던 <훈민정음> 해례본이 안동에서 발견되면서, 다양한 창제 원리(심지어 어용학자들이 만들어낸 억측까지 등장했다)는 사실상 사라졌고, '조음기관'의 모방과 '천지인'을 본따 만들어졌다는 창제 원리가 주류의 의견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들은 모두 이 창제 원리를 재구성해 만들었다.

하지만 <나랏말싸미>는 불교 승려인 '신미'(박해일)가 마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원처럼 한글을 만들면, '세종'(송강호)이 신하들의 오해를 받는 상황에서 수정 사항을 요청하고 '컨펌'을 내리는 역할로 묘사했다. 창제 원리 역시 '조음기관'과 함께 '신미'가 배워 온 '산스크리트어'(범어), '파스파 문자', '티베트 문자'를 응용해 만들었다고 보여준다.

물론, '파스파 문자' 기원 창제설은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수인 개리 레드야드를 비롯한 외국 교수들이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 논문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신미 대사'가 '한글 창제'에 도움을 줬다는 '현재 내려오는 기록' 자체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 '문종실록'에서는 '세종'의 아들인 '문종'이 즉위년(1450년)에 신하들과 '신미'의 관직 제수를 의논하면서, "대행왕(세종)께서 병인년(1446년, 세종 28년이자 <훈민정음> 반포년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는데, 금년(1450년)에는 '효령 대군'의 사제로 옮겨 거처하여 정근(정성을 다해 부지런히 빔)하실 때에 불러 보시고 우대하신 것은 경들이 아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한글'이 창제된 것이 세종 25년 12월(1443년)이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상으로는 '신미'의 창제 협력은 없는 일이 된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극적인 재미'를 위해 실제 역사에서 '팩션'을 집어넣은 사례는 종종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같은 경우는 광해군 8년,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서 숨겨진 15일간의 기록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리고 당시 대선을 앞두고 진정한 리더란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면서, 영화는 당당하게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됐다. 물론, "<광해>의 성공을 잇겠다"라고 외치며 현재의 정치적 현상을 조선 시대로 넣은 영화 중 몇몇 작품이 흥행 실패를 겪어야만 했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나온 <물괴>와 <창궐>이 있다.

<나랏말싸미> 역시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라는 글귀로 시작이 되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한 순수 창작물'로 볼 수 있었다. 조선 초기에 충분히 등장할 법한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한 갈등, 그리고 앞서 언급한 소재의 '레드오션'을 헤쳐나갈 만큼 '호기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철현 감독이 시사회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나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도 있으나, '그 누구도 역사에 대한 평가나 판단 앞에서는 겸허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관점에서 그런 자막을 넣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자로부터 받는 상업 영화라 하더라도, 한 영화가 만들어질 때, '열연'을 펼친 배우나, 음악과 미술, 촬영과 의상 등 스태프의 예술로 기억하기 보다는 '감독의 예술'로 기억한다는 격언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

감독의 의중이 확고하게 들어간 그 말은 매우 안타까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당연히 '자막'이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서, 관객이 작품을 관람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관객은 비뚤어진 생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왜 이 캐릭터가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창제' 관련 기록에 언급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는 억지로 '집현전' 학자들과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으로 포장했다는 '음모론 서사'를 풀어간다. <퍼스트맨>(2018년)을 '달착륙 음모론'으로 구성해 만들어졌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유'가 단순히 유교를 숭상하는 지배층 세력 '사대부'를 맞서기 위해서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 백성을 어여삐 여겨 만드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백성을 쉽게 통치하기 위해서인지도 불분명해진다.

그리고 '신미'의 캐릭터 성격도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한다. 예를 들어, '세종'이 "점으로 표시된 소리를 빼자"라고 할 때, '신미'는 "'표준'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들의 일상을 억누른다면 그것은 선의를 빙자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결국, '세종'은 '신미'의 주장을 들어주고 만다.

하지만 이후 '신미'는 집현전 학자들에게 공을 돌리려 하는 '세종'에게 "하루라도 빨리 완성해서 백성들의 마음속에 심어 놓으면, 그 누구도 뽑을 수 없는 '쇠말뚝'이 된다"라고 외친다. 앞서 언급한 '표준을 빙자한 폭력'과 '쇠말뚝'은 분명 '강제성'을 띈 키워드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신미'와 다른 스님 캐릭터들은 <달마야 놀자>(2001년)의 순화된 버전처럼 묘사됐는데, 이 역시 전체적인 영화의 톤을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퓨전 사극을 표방한 것인지, 정통 사극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시각 장애와 당뇨가 있다는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칭찬할 만하나, 덕분에 '세종'을 너무나 힘이 없어진 왕처럼 묘사한 것 역시 안타까웠다. 예를 들어, 퓨전 사극도 왕 앞에서는 함부로 '막말'을 잘 하지 않는데, 여기선 '신미'의 호탕한 발언이나, 동자승이 '해요체'를 '세종'에게 사용하는, 지금으로 따지면 '무례 그 이상'의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보이콧'이라며 국회를 빠져나가는 국회의원들처럼, 신하들이 어좌에 앉아 있는 왕을 놔두고 빠져가는 모습이나, "탄핵"이라는 말로 위협을 주는(물론 <조선왕조실록>에도 '탄핵'이라는 단어는 수천 번이 넘게 사용됐다) 모습은 현실 정치를 연상케 하는 무리수 설정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퓨전 사극에서나 볼법한 유머들도 들어갔는데, 대표적으로 '초성'으로 궁녀에게 연모의 정을 품은 동자승이 있다. '아재 개그'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이 장면이 대거 들어가면서, 얼마 전에 개봉해 조용히 사라진 <기방도령>의 '태을미'('원더걸스'의 '텔미'를 그대로 불렀다) 장면만큼이나 영화는 톤을 잃고 가벼워졌다.

2019/07/25 CGV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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