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로스쿨 '2% 여학생'은 어떻게 세상을 바꿨나?

조회수 2019. 6. 18.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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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세상을 바꾼 변호인> (On the Basis of Sex,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 우렁찬 트럼펫 소리와 함께 하버드 로스쿨 신입생들이 입학식에 참석한다. 마치 '남성만이 입학 가능한 사관학교'를 보는 것처럼, 신입생들의 모습은 대부분이 '슈트'를 입은 남학생들이었다.

그사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펠리시티 존스)는 입학식에 참석하던 중 자기 주위로 여학생이 2명(상징적인 장면으로,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의 여학생 비율은 전체의 약 2%였다)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심지어 '루스'는 '어윈 그리스월드'(샘 워터스톤) 학장의 초대에 온 만찬 자리에서, 당시 남학생들에겐 듣기 힘든 수준의 질문을 듣고 당황해한다.

그러나 한 학년 선배이자 남편인 '마틴 긴즈버그'(아미 해머)는 '루시'의 모습을 지지해준다. 하지만 '마틴'이 암에 걸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루스'는 딸 '제인 긴즈버그'를 돌보는 일과 자신의 공부, 그리고 남편의 공부를 모두 준비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2년 후, '마틴'은 아내의 헌신 덕분에 암에서 치료되고, 뉴욕의 변호사가 된다. 그사이 '루스'는 각종 여성 차별의 온상이었던 하버드 로스쿨에서 나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로펌 입시를 거절당한다.

시간이 흘러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루스'는 '성차별과 법' 수업을 대학에서 가르치던 중 '법이 허락하는 성차별'을 대거 발견한다.

영화는 1972년, '찰스 모리츠'(크리스 멀키)라는 부모를 돌보는 미혼 남성에게, 법원이 "보육비 공제는 '여성'만 가능하며, 남성은 아내가 중증 장애인이거나, 사별했거나, 이혼해야 보육비 공제를 받을 수 있다며" 지급을 거절한 사건을 보여준다.
이 사건을 통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성차별이 양성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으며, 성차별은 모든 국민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 했다. 이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피항소인 측의 '짐 보자스'(잭 레이너)는 펜타곤에 있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합법으로 나온 178개의 '차별적 판례'를 인용해 "성별에 따른 차별은 남녀에게 모두 이로운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영화에도 언급된 판례는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여성은 남편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어야 하고, 군용 수송기에 여성이 타는 것도 불법이며, 수당을 더 받는 초과근무는 불가능하다는 판결 등이 있었다.
하지만 "하버드 로스쿨에 다닐 때, 여자 화장실은 없었다"라고 말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남편의 지원과 미래의 여성 운동을 이끈 딸 '제인'(케일리 스패니), 시민 자유연맹 대표 '멜 울프'(저스틴 서룩스) 등과 함께 재판에 나서게 된다. 물론 '멜'은 여성 문제보다는 베트남 전쟁 종전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인물로 처음엔 묘사되지만.

아무튼 영화는 1993년, 60살의 나이로 미연방 대법관이 됐고, 이후 86세의 나이인 현재에도 여전히 대법관 자리에서 왕성한 활동 중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대학 초기 시절, 졸업 후 '성차별' 그 자체로 여러 로펌에서 퇴짜를 맞던 시절, 그리고 '와인버거 대 와이젠펠드' 사건을 중심으로만 시나리오를 만들어갔다.

이는 전기 영화의 시나리오 중 좋은 '선택과 집중' 사례로 볼 수 있다. '일대기' 구성 방식은 아무래도 이야기의 집중도가 다소 떨어지기 때문에 겉핥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선택과 집중'을 한 이번 영화는 상당히 빠른 흐름으로 전개해 관객의 집중도를 높여준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연기한 배우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년)에서 '제인 호킨스'를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펠리시티 존스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년)에 이어 다시 한번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맡았다. 실제 인물을 만나 나눈 정보들을 활용, 평소 습관이나 발음 등을 모두 완벽히 체화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다만, 이번 영화의 홍보는 다소 아쉬움이 많았다. '성별에 근거한'(On the Basis of Sex)라는 원제를 영화 대사에도 나온 "세상을 바꾼 변호인"으로 의역한 것은 나쁜 선택으로 보이지 않으나, 문제는 포스터 문구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역사를 만들었다(Her Story Made History)"가 "모두의 평등을 위한 반전의 시작"으로 바뀐 것까지도 이해가 됐으나, 문제는 배급사 'CGV 아트하우스'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콘텐츠였다.
'지도자', '변호사', '정의' 등의 문구가 있던 원판과 달리, 한국판에는 '핵인싸', '데일리룩' 등 다른 문구가 소개됐으며, 실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가치관이 담긴 문구 대신 펠리시티 존스의 외모와 패션 센스에만 치중하는 멘트가 들어있기도 했다.

결국, 인스타그램 담당자는 "해외 이미지를 활용해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의 의미를 본의 아니게 훼손했다"며 사과문을 남겼지만, 소중한 영화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핵폭망 홍보'였다. 결국, 최근 공개된 포스터엔 센 문구가 나왔는데, 바로 "빌어먹을 처벌을 무너뜨릴 결정적 한 방"이었다. '사후약방문'이라는 말이 떠올려졌다.

한편,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2개 부문인 장편다큐멘터리작품상, 주제가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관람한 관객이라면, 어쩌면 이 작품이 다소 그에 못 미친다는 아쉬움을 받을 순 있겠다. 그리고 그만큼 '극화하기 어려웠던 인물'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으며, 그만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인생이 '드라마틱'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2019/06/15 CGV 신촌아트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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