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이후 처음으로 눈물샘 붉힌 한국 법정영화

조회수 2019. 5. 25.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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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배심원들> (Juror 8,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배심원들> 표지 및 사진 ⓒ CGV 아트하우스
약 10년 전만 하더라도,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심원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보면 남의 일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배심원들의 감정을 흔들어 판단을 혼란케 하는 변호사나, 범인의 결정적 자백에 흔들리는 배심원들의 모습은 이제는 이 분야 명작으로 거듭난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년)부터 쭉 이어져 왔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궁금증이 있었다. 과연 한국에서도 '배심제'가 이뤄진다면 어떻게 될까?

2008년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배심제에 관한 영화가 등장했다. 작품은 2008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며, 유사 사건 80여 건의 판결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2008년 2월, 대구에서 처음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12명(3명 예비 배심원)이 참여했고,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인물들이 재판에 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그 재판이 영화처럼 어머니를 죽인 장애가 있는 아들에 관한 사건을 다뤘다거나, 언론이 차량 위에 카메라를 설치해 따라다니며 뉴스 속보를 보낼 정도로 열정적이진 않았으나(그 재판이 있던 날의 최고 이슈는 '숭례문 방화 피의자' 검거였다), '국민참여재판'이 사법부에 미치는 영향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배심원단의 평결 결과와 양형 의견이 권고적 효력만 있으나,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의견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기 힘들다는 주장은 영화 <배심원들>에도 잘 녹아들었다.

작품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처럼 배심원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했다. 1번 배심원 '윤그림'(백수장)은 공대를 졸업한 후 삼수 끝에 법대에 들어간 '늦깎이 08학번 법대생'으로, 덕분에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면서, 자신이 아는 법적 지식을 통해 '배심원들의 대표'로 후반부 활약을 이끈다.
2번 배심원 '양춘옥'(김미경)은 10년간 남편을 보살핀 64세의 요양변호사로, "처음이라 잘하고 싶어서 그래요"라는 명대사를 남기는 등 다른 배심원들과 다르게 따뜻한 마음으로 판단하려 한다.

3번 배심원 '조진식'(윤경호)은 무명 배우로, 일당 10만 원이 우선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보다는 "정 모르겠으면 대세에 따라요"라며 다수의 의견에 따라 적당히 재판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인물로 등장한다. 4번 배심원 '변상미'(서정연)는 중학생 딸을 둔 전업주부로, 가족을 위해서 빠른 귀가를 원하지만, 재판의 지연 때문에 답답해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5번 배심원 '최영재'(조한철)는 대기업의 비서실장으로, 당연히 엘리트인 재판부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의 판단을 돕지 않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다른 배심원들이 답답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최영재'라는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서브플롯으로 설정했다.
6번 배심원 '장기백'(김홍파)은 30여 년 동안 시체를 닦는 인물을 해서, 전문 법의학자가 판단하지 않은 다른 의견을 쏟아내는 역할을 맡아, 자신의 소리를 낼 줄 아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7번 배심원 '오수정'(조수향)은 평범한 20대 취업준비생으로, 가장 어리면서도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와 함께 이 사건을 다시 보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쭉 배심원들을 써 내려가니, 결국 이 영화는 '권남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 된다. '여성용 호신도구'를 만드는 청년 창업가로, 얼떨결에 '막차'로 참여하게 된 그는 증인이나 정황 모두가 유죄라고 외치는 재판에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파산을 제안하는 '회생위원'(이규형) 앞에서도, 배심원 제도를 재판일이 되어서야 처음 알게 된 그에게 면접 질문을 던지는 판사 앞에서도, 심지어 빠르게 배심원 일을 끝내자는 다른 배심원들에게서도, 그는 기죽지 않는다.

결국, 유죄와 무죄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그는 우연히 만난 '피고인'(서현우) 덕분에 차분이 이 사건을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영화는 이처럼 사실상 불가능한 배심원과 피고인의 만남 등 우연에 기대는 요소나, 사건 검증 과정에서 나오는 무리한 요소(재판 중 망치가 날아가는 장면) 등이 종종 등장한다. 조금은 탄탄한 것 같지만, 관객의 마음을 울리려는 데에 집중하기 위해 판사의 능력치가 낮게 설정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소리가 연기한 '18년간 형사부를 전담한' 판사, '김준겸'은 두 가지 면에 충실한 캐릭터로 설정됐다. 하나는 원칙과 법에 충실하면서 강단 있는 모습으로 재판을 진행하지만, 권위적인 모습과 함께 첫 국민참여재판이라는 부담감 속에서 배심원들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존중해주는 인간적인 면을 담아냈다. 대표적인 장면이 '권남우'가 말한 내용을 재검토하는 대목에서 나온 그의 모습들이다.

물론, 좀 더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듯한 분위기와 더불어서, 법정의 딱딱한 분위기를 제거하기 위해 나오는 슬로우모션 장면이나, 우스꽝스러운 음악의 사용은 톤앤 매너에서 관객의 호불호를 만들어낼 순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법이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울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김준겸'의 대사 한 마디라도 마음에 담아간다면, 그래도 <변호인>(2013년) 이후 그나마 만족스러운 법정 장면이 등장하는 한국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2019/05/16 CGV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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