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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는 왜 뼛가루가 든 우유를 마셨을까?

조회수 2019. 4. 2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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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미성년 (Another Child,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미성년>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쇼박스
* 영화 <미성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리'(김혜준)는 아빠 '대원'(김윤석)과 '덕향오리' 가게 주인 '미희'(김소진)가 바람피우는 것을 목격하게 되던 중 핸드폰을 떨어뜨린 후 현장을 떠난다. 이 핸드폰을 주운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는 학교 옥상으로 '주리'를 불러, 불륜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엄마 '영주'(염정아)가 알기 전에 이 사태를 해결해보고 싶어 했던 '주리'와 다르게, '윤아'는 "쉬쉬한다고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라면서, '주리'의 엄마에게 불륜 사실과 더불어, 자신의 엄마가 '임신' 상태임을 폭로한다. 남편의 상황을 알게 된 '영주'는 자신도 충격이 큰 상황에, 그 사실을 먼저 안 '주리'를 내색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참아낸다.

한편, '미희'는 낙태를 하라는 '윤아'의 말에, '모든 사람이 자신한테 손가락질하더라도 딸 만큼은 자신을 이해해주겠지'라는 생각이 어긋남을 느끼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사이 '대원'은 '윤아'가 보낸 한 통의 문자를 보면서 자신의 불륜이 밝혀졌다는 것에 당황하고, 무책임하게 모든 이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미희'가 운영하는 '덕향오리' 가게에 찾아간 '영주'는 '미희'의 냉정함에 당황해한다.

'영주'는 '미희'와 '대원'의 통화를 엿듣고 가게를 나가게 되는데, 실랑이 과정 중 '미희'가 넘어지면서 양수가 터지고 만다. '주리'와 '윤아'는 교실 문을 박살 낼 정도로 싸우게 되고, '김선생'(김희원)으로부터 꾸중을 듣던 중 이 상황을 듣고 병원으로 향한다.

조산으로 인해 인큐베이터에 들어 있는 아이를 본 '주리'와 '윤아'는 무책임한 어른들로부터 벗어나, 둘이라도 이 아이를 책임져보자는 결의를 다지지만, 고등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미성년>은 배우 김윤석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연출 작품이다. 그동안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떠올려 봤을 때 가장 큰 이미지는 단연 '경찰', 특히 '형사' 역할들이었다.

그의 초기 필모그래피였던 <범죄의 재구성>(2004년)의 '이 형사' 역할부터, <추격자>(2008년) 속 전직 형사, <거북이 달린다>(2009년)의 시골마을 형사, <극비수사>(2015년)와 <암수살인>(2018년)에서 자신의 직업 윤리를 한껏 살리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형사를 맡았었고, 심지어 <1987>(2017년)에서는 공권력의 상징인 대공수사처장을 연기하며 깊은 인상을 줬다.

물론 '불륜'과 관련된 출연작도 있었는데, 바로 현재까지로는 마지막 드라마 출연작인 <있을 때 잘해!!>(2006~2007년)다. 그는 불륜을 저지른 '하동규'를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의 엄청난 원성을 받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성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초적인 이미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 담긴, 나름대로 의미 있는 김윤석 감독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불륜'을 소재로 한 만큼 '한 중년 남성의 전락' 정도로 끝날 것 같았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영화는 이로 인해 연결된 네 여성의 서사를 중심으로 잡아간 것이 새삼 놀라웠다. '불륜 소재'는 '막장 내용'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한국 대중문화에서, 크게 자극적인 장면이 포함되지 않은 편안한 연출 역시 흥미로웠다.
묘하게 <미성년>은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포함해서 3개 부문에서 상을 받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를 연상케 했다.

<로마>의 두 여성 주인공이 결국은 불륜과 임신 등 두 남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면서 연대하는 과정을 담아낸 것처럼, '영주'는 '미희'에 대해 증오심과 분노로 가득 찬 상황에 병원을 찾아와서 '죽'을 전달한다. '영주'가 회피하거나 숨어서 공격하지 않고, 직접 만나서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이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이는 인큐베이터에 담긴 아이에 관한 장면과도 이어진다. '미희'가 낳은 아이는 비록 뇌출혈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대원'이 도망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지막 사랑'이라고 핸드폰 번호 저장까지 해 놓은 '미희'는 그 결과물로 태어난 아이를 단념하려 한다.

어른들이 모두 쉬쉬하는 사이, '주리'와 '윤아'는 이 아이만큼은 우리가 기억해주자는 의식을 치러준다. 바로, '대원'과 '미희'가 만났던 유원지에 가서, 아이의 유골함에서 꺼낸 뼛가루를 초코 우유와 딸기 우유에 타 나눠 마시는 것이었다.
다소 엽기적이면서, 호불호가 갈릴만한 이 상황은 영화 본편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취재 당시 받은 보도자료의 '프롤로그'를 보면 이해가 됐다. '영주'는 6살 유치원생인 '주리'의 가방에 딸기 우유와 초코 우유를 넣어준다. '대원'이 둘 중 무엇을 마실 지 묻자, '주리'는 모른다고 답한다.

"친구가 뭘 먹을지 모르니까"라면서, 친구가 고른 후에 자신이 남은 우유를 마신다는 것을 안 '대원'은 '엄마 손을 잡고 등에 자기 반 만한 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다. 아이 마음이 가방보다 더 크다. 나보다 더 크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때부터 '주리'는 타인에 대한 인간적 배려를 고심했다. 하기사 어른들이 다 쉬쉬했는데, 인큐베이터를 유일하게 응시했던 아이들이, 죽은 아이와 그렇게라도 마지막 교감을 하겠다는데 "감놔라, 배놔라" 할 자격이나 있겠는가. 이처럼 <미성년>은 사전적 의미로 '미성년'인 인물들, 사전적인 의미는 '성년'일지언정 정신적으로는 '미성년'인 인물 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보도자료'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탈무드>의 격언이 들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로서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 것뿐이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진짜 의도였다.

2019/04/01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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