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20분 넘게 잘라서 상영해도 되나요?

조회수 2019. 3. 26.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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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에브리타임 룩 앳 유> (303,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 표지 및 이하 사진 ⓒ BoXoo 엔터테인먼트
* 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물학 시험에서 잔인하게 "(검색해서 볼 거면) 구글이나 입사하라"라는 말을 들으며 시험에 떨어진 '율'(말라 엠드)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먹는 낙태약' 복용을 두고 '율'은 남자친구가 있는 포르투갈로 벤을 몰고 향한다.

한편, '얀'(안톤 스파이커)은 쾰른으로 이동한 후 비행기를 타고 아버지를 만나고자 스페인으로 떠날 계획으로 카풀을 신청했으나 바람을 맞게 된다. 그렇게 '얀'은 '율'의 캠핑카에 우연히 탑승하게 되고, 두 사람이 여행과는 무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유럽 일주에 나선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게 되어 대화를 통해 사랑에도 빠지는 이야기의 대표 작품은 누가 뭐라 해도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열연, 그리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일 것이다.

9년마다 한 편씩, 총 3편의 작품을 통해 사랑과 인생을 반추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에 비하면 이 영화는 당연히 무언가 부족하다. 게다가 고달픈 청춘이라기 보다는 그래도 캠핑카 정도 끌고 유럽을 돌아다닐 수 있는 여유 있는 청춘의 이야기이다 보니 와닿기엔 힘들 수 있다.

실제로 <에쥬케이터>(2004년)을 통해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단편영화를 연출하던 1995년, <비포 선라이즈>의 '카페 손님' 단역과 더불어 제작 과정에도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장편 영화를 연출하게 됐다.
<에브리타임 룩 앳 유>는 2011년 <헛 인 더 우즈> 이후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그의 최신작으로, 2018년 베를린 영화제에 공식 초청 상영됐다. 독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쾰른,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곳곳의 풍경을 보면, 잠시나마 대신 여행을 떠난 느낌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캠핑카 유럽 일주를 꿈꾸게 된다.

영화로 돌아가서, 두 사람의 대화 중 나오는 차이로 인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레전드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년)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자살 문제부터 시작해 "기업이나 정부가 더욱더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오히려 혼자 사는 삶을 추천하고 있다"라는 음모론 논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문제, 네안데르탈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바라본 개인과 단체의 조화, 이성주의를 믿는 '얀'과 낭만주의를 믿는 '율' 등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대화 주제는 '사랑'일 것이다. '율'은 마음의 느낌과 끌림의 시작만이 본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얀'은 본능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사랑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얀'은 '율'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에 따르게 된다.

한편, 영화는 "사랑할 시간을 갖는 것은 영원에 대한 첫 번째 예감이다"라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이 도입 자막으로 등장한다. 국내에선 이 자막이 번역되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독일어에 능통한 관객이 아닌 이상 이 말을 알아듣고 작품에 몰입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영화의 원제인 <303>은 그들이 타고 다니는 캠핑카의 이름이지만, 무언가 와닿지 않는 제목 때문인지 아우구스틴의 주제가 'Magnet Balls'의 가사인 "Everytime I look at you(내가 너를 볼 때마다)"를 제목으로 바꿔 개봉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짜 안타까운 문제는 이 영화의 배급사가 145분(베를린 영화제, IMDB, 독일 영화 포털 등 홈페이지 기준 자료)의 상영 시간 중 약 25분을 제거한 120분으로 상영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대화가 가끔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연결이 안 되는 대목이 존재한다.

안 그래도 대화의 맛을 자연의 풍광과 함께 음미해야 하는 <알쓸신잡>과 <트레블러>의 신선한 조합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킨 것이다. 덕분에 이 영화는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처럼 편집됐다.

영화는 상영 시간이나 재미 등 '어른의 사정'과 무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의 의도를 관객이 사유할 수 있어야 하는 영상 예술이다. 다소 유감스러운 상영이었다.

2019/03/23 CGV 신촌아트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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