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노부부의 본격 정원 생활기!

조회수 2018. 12. 19.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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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인생 후르츠> (Life Is Fruity, 2017)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인생 후르츠> 이하 사진 ⓒ (주)엣나인필름
지난 2014년,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48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눈물샘을 자극했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감동을 이을 작품이 도착했다.

<인생 후르츠>는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 할머니 '츠바타 히데코'의 마지막 함께 했던 순간을 담아내며, 앞서 언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전달했던 '인류의 보편적 사랑'과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간다.

먼저, 츠바타 슈이치의 삶은 현대 일본의 역사와도 긴밀한 연관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일본군의 비행기를 만들러 그는 대만으로 향했고, 당연히 해군 숙소에서 대접받을 수 있었으나, 강제징용된 10대 대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닌 그는 열악한 시설의 기숙사로 들어가 함께 생활했다. 죽기 직전 다시 방문한 대만에서 그는 '함께 지냈던 친구'가 건넨 도장을 친구의 묘비에 묻어주고는 눈물을 흘렸다.
대만에서 '집의 의미'를 깨달은 그는 건축가가 되어 1960년대 나고야 교외에 '고조지 뉴타운'의 마스터 플랜을 만들었다. 태풍, 해일 등 자연재해로 인해 나고야 근처 해안가 마을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좀 더 안전한 산지를 다듬어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일본 정부의 지시였다.

츠바타 슈이치는 자연과 공존할 수 있도록, 숲이 조금이나마 있어야 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내 '경제적 논리'에 무산되며 '교조지 뉴타운'은 게임 <심시티>에서 초보자들이 흔히 할 수 있는 계획인 '성냥갑 도시'로 바뀌고 말았다.

하지만 츠바타 슈이치는 뉴타운에 약 300평의 땅을 사들여 밭이 있는 정원을 갖춘 집을 지었다. 적어도 자신이 그러한 시도를 한다면, 마을 전체 사람들도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그렇다면 녹색 도시가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그는 집을 만들었다. 결국, 50여 년이 흘렀고, 부부는 그곳에서 약 50종의 과일과 70종의 채소를 키우며 '자급자족'의 인생 후반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슈이치에게 다시 한번 자연 친화적인 병원을 지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게 된다. 기꺼이 대가 없이 계획에 참여하지만,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결과물을 볼 수 없게 됐다.

결말 부분에는 세계 유명 건축가들의 인생과 건축 철학이 자막으로 등장하는데, 르 크로뷔지에의 "집은 삶의 보석 상자여야 한다"부터, 안토니오 가우디의 "모든 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오래 살수록 인생은 더욱 아름다워진다"라는 명언들은 노부부의 삶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츠바타 슈이치의 성품은 놀라웠다. 과일 푯말에도 "너는 마멀레이드가 될 거야" 같은 애정 어린 문구를 하나씩 집어넣었고, 새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물단지를 놓기도 하는 등 단순한 '텃밭' 이상의 개념으로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또한, 슈이치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게 정성스러운 그림 손편지를 보내며,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다못해 생선 가게 사장에게도 "좋은 생선을 먹게 해줘서 감사하다"라는 인사 편지까지 보낼 정도였다.
한편, 츠바타 히데코는 200년 전통의 양조장 막내딸로 자랐으나, 결혼 전만 해도 적극적으로 본인이 의견을 내고 살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 후 "당신이 말하는 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라는 츠바타 슈이치 덕분에, 좀 더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찾게 됐다.

할머니는 매년 수확한 과일이나 채소를 이용해 떡과 같은 음식을 만들어 가족은 물론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손수 포장을 해주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요즘 보기 힘든 '이웃 간의 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인생 후르츠>는 국내 개봉 전인 지난 9월, 세상을 떠난 명배우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이 함께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년), <태풍이 지나가고>(2016년), <어느 가족>(2018년)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 작품에 계속 함께 해오며, 국내에서도 사랑을 받은 배우인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은 노부부의 삶을 더 몰입하게 해줬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와 같은 시구를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한 키키 키린도 어디선가 이 작품을 보며 흐믓한 미소를 지었기를 바라며.

2018/12/13 CGV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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