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불친절한 영화, 그래도 매혹적이다

조회수 2018. 5. 19. 12: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버닝 (Burning,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버닝>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닝>은 정리를 하기가 버거워지는 영화다. 단순하게 말하면 미스터리 스릴러이지만, 그 안을 파고들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메시지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분노'로 연결된다. 차갑지만, 뜨거운 무언가가 타오르는 영화다.

여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글귀가 떠오를 정도로, 귀와 눈으로 듣고 보는 이미지는 파격적이다.

먼저, 이 작품에는 크게 '2018년 청춘'을 대표하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종수'(유아인)는 흔히 말하는 '취업'과는 거리가 먼,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군대를 나온 후, 택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인물이다.
그가 사는 곳은 '대남방송'이 흘러나오는 파주 만우리 시골집이다. 편의점에서 산 음식들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세상에,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많지만, 그의 입에서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키우는 '암소'에게는 노래를 부르면서 흥얼거릴 수는 있지만.

이와 대비되는 지점의 인물이 '금수저 계급'의 '벤'(스티븐 연)이다. 포르쉐를 몰고, '종수' 눈에는 돈을 버는 일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반포 서래마을의 큼지막한 빌라에서 사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편의점'이 아닌 집에서 직접 파스타를 해먹을 수 있는 여유까지 있다. '종수'와 '벤'의 큰 벽을 상징하는 장면은 '벤'이 높은 건물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땅에 있는 '종수'가 '벤'을 바라보는 대목이었다. '용산참사 벽화' 근처 식탁에서 한가롭게 밥을 먹는 가족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종수'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종수'의 모습은 이창동 감독의 첫 작품인 <초록물고기>(1997년) 주인공 '막동'(한석규)을 닮았다. 막 제대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던 20대 청춘의 비극을 '리얼리즘'으로 보여줬다. '막동'의 가족이 그러하듯, '종수'의 가족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화목한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 '용석'(최승호)은 1970년대 중동을 다녀온 '산업 역군'이지만, 센 고집으로 인해 사고를 자주 저지른 인물이다. 혹여나 중동에서 받은 돈으로 강남에 땅이라도 샀다면, '종수'의 인생은 '벤'처럼 팔자 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그의 어머니(반혜라)는 갑자기 나타나 '종수'에게 은연중 급전을 부탁하기까지 한다.

'벤'과 '종수' 사이엔 '해미'(전종서)가 있다. 서울의 랜드마크를 상징하는 '서울타워'가 보이는 용산 후암동 단칸방에서 살며, '보일러실'에서 주웠다는 고양이 '보일이'를 키우며, 역시 정규직과는 거리가 먼 내레이터 모델을 하며, 빚이 있더라도, 어렵게 모은 돈으로 아프리카로 일탈을 하고 싶은 인물이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에서 '벤'을 만난다.
'죽는 것이 너무나 무서워, 노을처럼,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던 '해미'는 자연스럽게 '벤'에게 빠지게 되며, 자신도 '벤'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어 상의를 벗고 노을 사이에서 춤을 추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고 만다.

여담으로, 이 영화에서 '해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히 성녀 혹은 창녀로 구분되는 '남성적 시선의 여성 바라보기'와는 사뭇 달랐다. '해미'는 "이제 진실을 말해 보라"며, '종수'에게, 세상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을 구분 짓기 거부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콘돔이 없으면 섹스도 없다'라는 초반 장면(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마저도 없는 영화들이 너무나 많다)도 있겠지만, 그 흐름은 '종수'가 실종된 '해미'를 찾을 때 나오는 '이벤트 실장'(서인정)의 대사에서 나온다.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로 끝나는 이 대사에서, '종수'는 '해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인 "남자 앞에서 아무렇게나 벗는 것은 창녀들이나 하는 짓"이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 작품은 '해미'가 실종되는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이때부터, '벤'이 취미라고 언급한 "비닐하우스를 두 달에 한 번 태운다"는 말은 단순히 불장난이 아니라, '여성을 살해한다'는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비닐하우스'을 마지막으로 태웠다는 순간이 '해미'의 마지막 전화가 온 순간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이후, '종수'는 그동안 내부에서 열등감과 좌절감, '실체를 알 수 없는' 이유로 '버닝'했던 분노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수'는 '벤'을 불러, 그를 살해한 후, 모든 분노를 알몸과 함께 '버닝'한다. 이 사이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의 서스펜스는 스릴러 장르적인 면에서도 놀랍다.
물론,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것은 '종수'가 그저 써 올린 소설일 수도 있다. 이창동 감독 역시 "'종수'는 '해미'가 없는 방에서 한 편의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대사로 인한 설명이 많지 않기 때문에, '버닝'은 불친절한 영화다. 그런데도 이 불친절한 영화는 영화(映畫)의 한자 뜻풀이인 '비치는 그림'으로만 보더라도, 매혹적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적'이라는 요소는 음악과 영상이 '대사' 대신 소개해준다. K팝으로 상징되는 '씨스타'의 '터치 마이 바디'로 출발하던 영화는 마치 국악기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귀를 찢는 사운드도 들려주더니, 노을이 질 때는 감미로운 재즈 풍 음악도 소개된다.
모그 음악감독이 <도가니>(2011년)나, <밀정>(2016년)처럼 차가움과 동시에 뜨거움을 보여준 영화에 잘 맞았던 것을 떠올린다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또한, <마더>와 <곡성>의 홍경표 촬영감독이 보여주는 화면 구도, 쇼트는 이 작품을 매혹적으로 만들어주는 큰 역할을 해줬다. <마더>에서 김혜자 배우의 춤사위가 오래도록 기억남듯이, 이 작품 속 전종서의 실루엣만 나오는 안무는 한국영화 촬영사를 적는다면 꼭 기재해야 할 기록이 될 것이다.

이처럼 <버닝>의 핵심은 노을, 새벽 안개, 불타는 밤 등 빛의 활용이었는데, 그 빛에 맞게 작품은 자연광 위주로 구성됐다. 그래서 '마스킹'이 되지 않는 극장에서 본다면 자연스럽게 아쉬움이 클지 모른다.

Copyright © 알려줌 알지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2024 ALLYEOZUM INC. All Rights Reserved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