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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카약 타고 남극으로 간 여자, 그 이유는?

[알지 미디어 투고] <어디갔어, 버나뎃> (Where'd You Go, Bernadet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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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글 : 드미트리

1인용 카약을 탄 버나뎃 폭스(케이트 블란쳇)는 바다 위에 동동 떠서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남극을 둘러본다. 영화 첫 장면부터 남극에서 시작하니 버나뎃이 지리적으로 어디로 갔는지가 제목의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은 아닐 것이다. 버나뎃은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하고 건축계의 아이콘으로 칭송받는 건축가였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였던 그의 창작물이 어이없이 망가지는 경험을 한 뒤로 건축에서 손을 떼고 시애틀로 홀연 이사를 갔다. 20년간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는 애니메이터 남편 엘진(빌리 크루덥)의 아내이자 딸 비(엠마 넬슨)의 엄마로서만 존재하고 창작을 하는 건축가로서의 자아는 상실한 지 오래다.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탓에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와 수린(조이 차오) 같은 이웃들로부터 질타를 받기 일쑤지만 버나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출처영화 <어디갔어, 버나뎃> ⓒ (주)디스테이션

버나뎃은 기숙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가족끼리 남극여행을 가기로 한다. 버나뎃은 가뜩이나 남들보다 예민하고 가족과 아주 가까운 지인이 아니면 거의 만나지를 않는 사람이다.

남극까지 가는 여객선은 무려 150인용이고 거기서 꼼짝없이 147명의 타인들과 부대낄 걸 생각하면 원래도 버나뎃을 괴롭히던 불안과 신경증이 폭주한다. 그래도 사랑하는 딸 비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버나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견디기 위해 온라인 비서 '만줄라'의 도움을 받으며 부산스럽게 움직이지만, 오히려 문제를 가득 만들어 어쩔 줄 몰라한다.

SNL 작가 출신인 마리아 셈플의 동명소설 『어디갔어, 버나뎃』은 일반적인 서술이 아닌 편지, 이메일, 통지서 등의 나열로 이루어진 서간체 소설이다. 때문에 원작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소설과는 다른 길을 가는 지점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버나뎃의 부재를 이해하려는 주변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주로 드러내는 소설과 달리 영화는 버나뎃이 행동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길을 자주 택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케이트 블란쳇을 캐스팅해서 자주 등장시키지 않을 수 있냐고 장난스레 말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영화는 온통 세상과 불화하는 버나뎃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도망치기 바쁜 버나뎃을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영화의 구심력이 약해진다. 영화 주인공이 목적지가 있거나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으로부터 도망친다는 뚜렷한 이유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경우 영화의 중심을 파악하기 용이하다.

반면 버나뎃은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서 그나마 알아보고 있던 남극을 향했던 것뿐이다. 게다가 누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줄도 모른다.

긴 시간 보여지는 버나뎃의 이동에는 (개인적 동기 외에) 뚜렷한 이유나 맥락이 없다. 버나뎃이 향하는 물리적 장소보다 중요한 건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깨우치는 여정이다. 다만 인물이 내적 변화를 화면에 오랜 시간 그리는 건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곤 한다. 이것이 영화가 늘어진다거나 느슨하다고 평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으로 짐작한다.

버나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디로' 떠나는지가 아닌 '무엇으로부터' 떠나는 건지 물어야 한다. 버나뎃의 옛 동료 폴 젤리니크(로렌스 피쉬번)는 "너 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 해. 넌 그런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어. 창작하지 않으면 넌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

버나뎃은 비에게 자신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에 크게 감동하곤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나뎃은 기민함을 타고났다.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버나뎃이 흡수하는 충격이나 영향이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크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을 테니 별나게 굴면서까지 낯선 환경에 자신을 최소한으로 노출시키려 한다.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버나뎃은 자기도 모르게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버나뎃의 황급한 도피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한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버나뎃이 떠나온 것은 미칠 듯이 자신에게 밀려들어 오는 낯선 자극들과 그걸 흡수하고도 배출할 곳 없어 폭발하기 직전 상태로 버텨야 하는 일상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파악한 자기 마음의 작동 기제를 바탕으로 타인의 속내를 추측한다. 비슷한 작동 기제를 가진 사람은 금방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테다.

오해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 내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버나뎃의 일상을 둘러싼 사람들 중에는 누구도 창작의 사명을 가진 버나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한다.

이웃들은 사람이 버거울 뿐인 버나뎃을 사회성이 떨어진다며 험담하고 남편 엘진은 버나뎃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단정하고 제3의 인물들을 끌어들인다. 그나마 딸 비는 버나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비 역시 창작자로서의 버나뎃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

오직 같이 창작 활동을 했던 폴 젤리니크만이 버나뎃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준다. 그리고 그 말은 어디선가 버나뎃처럼 남들과 다를 뿐인데 이상하다고 오해받곤 했던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엔딩크레딧 말미에 "나의 버나뎃, 다이앤 링클레이터(1937-2017)를 기억하며"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어머니 다이앤은 이혼 후 세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언어병리학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했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린 봉사 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그는 종종 집을 떠났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는 줄은 알지만 종종 그의 부재를 견뎌야 하는 당황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원작소설을 읽고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영화 속 버나뎃과 비 사이의 강한 연대는 감독 자신이 가족들 사이에서 보고 들었던 모녀지간 관계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감독은 이 영화가 모녀 사이 연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간 버나뎃의 보살핌을 받았던 비는 버나뎃이 자신의 소명을 찾아나서는 길을 가장 응원하는 인물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버나뎃을 지지하는 비를 통해 어머니 다이앤을 향한 사랑을 다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 위 글은 '드미트리'님이 알지 미디어에 투고한 글입니다. 위 글의 저작권은 '드미트리'님께 있고, 무단복제 및 전재 –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알지 미디어 오피니언 섹션(https://alzi.me/contributions)에 알찬 비평·리뷰를 투고해주시면, 네이버 포스트, 카카오 1boon 등 당사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홍보해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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