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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코리아

파수꾼, 박열부터 사냥의 시간 등 이제훈이 전하는 영화에 대한 애정

이제훈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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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은 변하지 않는다. 아직도 꿈을 이야기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붓는 연기를 말하며, 영화라는 형식에 대한 무구한 애정을 고백한다. 그리고 딸깍, 스위치를 켜면, 이제 거기 다른 사람이 있다.

이제훈이라는 경계선

들어오실 때 놀랐어요, 머리 보고.

촬영 중인 작품 때문에 한 머리예요. 지금은 그래도 좀 다듬은 거고요. 원래는 옆머리가 거의 삭발에 가깝고 뒷머리는 더 길거든요.


헤어스타일은 마음가짐을 좌우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머리를 파격적으로 바꾸면 자기도 모르게 태도도 좀 바뀐다든지.

그러니까요. 그래서 지금 수염도 길렀는데요. 사실 마음 같아선 막 지저분하게 더 기르고 싶은데, 제가 수염이 잘 안 나서요.

〈박열〉같은 작품에서 봤을 때는 그래도 수염이 꽤 있던데요.

붙인 거예요. 그래서 기자님처럼 수염 많이 나는 사람 보면 부러워하죠. 말씀하신 것처럼 행동거지나 마음가짐에서 외적인 변화로부터 도움받는 게 크거든요. 예를 들면 저는 항상 정갈하고 단정하게 옷 입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최근에 〈사냥의 시간〉 촬영하면서 스트리트 패션을 많이 했죠. 촬영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요즘에는 또 새로운 캐릭터를 따라서 컬러풀한 옷을 고르고 있어요. 막 빨간 신발 이런, 평소라면 제가 절대 안 고를 것들로요. 외적인 변화가 저한테는 캐릭터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수단인 것 같아요. 좀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작품이 끝난 후까지 캐릭터의 영향이 남기도 하겠네요.

맞아요. 그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냥의 시간〉 끝난 지 꽤 됐는데 지금도 스트리트 패션을 즐겨 입고 있거든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캐릭터를 구축하느라 선택하고 만들어간 것들이 실제의 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거죠. 신기하더라고요.


헤어스타일에 이어서 몸 보고 또 놀랐어요. 굉장히 좋아졌네요.

그런데 이게, 사실 오늘 몸이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라서요.


한창 운동하는 사람들 입버릇 아닌가요? 칭찬하거나 만지면 괜히 “아, 나 며칠 운동 못 해서 오늘 별로야” 하고 너스레 떨고.

하하하,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더 최상의 몸 상태가 있는데, 그걸 못 보여드려서 아쉬워요. 지금 하고 있는 작품에서 좀 파이터, 이런 캐릭터거든요. 그런 몸을 만들고 싶어서 보디 디자인이나 운동도 예전과는 좀 다르게 했고요.


다행히 헤어스타일이나 몸이 오늘 화보에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맞아요.


첫 컷이 빠르게 OK가 나왔는데 제훈 씨가 “한 번 더 해보면 안 될까요?” 그랬잖아요. 이유가 뭐였나요?

오늘 촬영 콘셉트나 세트가 좀 새로웠거든요. 제가 어디서 보지도 못했던 느낌인데, 들어가서 경험해보니까 재미있고 좋더라고요. 끝났다고 하니까 그 세트를 한 각도에서만 보여주는 게 아쉬웠죠. 제가 기본적으로 저를 많이 찍어주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괜찮은 컷이 나오면 그냥 OK 하는 것보다는 좀 과할 정도로 많이 찍어서 저조차도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포착하고, 그런 게 좋아요.


촬영 지켜보면서 그런 게 궁금해졌어요. 제훈 씨한테 화보는 어떤 의미일까? 연기와는 또 어떻게 다를까?

저는 매 작품 늘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걸 추구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화보라는 기회는 작품 전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 있죠. ‘나한테 이런 표정과 모습이 있구나.’ 화보에서 그런 걸 느끼거든요. 그래서 화보 찍는 걸 좋아하고, 좀 중요하게 봐요. 대신 예전에 했던 화보 콘셉트는 웬만하면 답습하지 않으려고 하고요.


블랙 롱 코트를 입은 컷에서는 또 제훈 씨가 〈사냥의 시간〉의 ‘한’ 같은 역할을 맡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너무 멋진 역할이고 욕심나죠. 그런데 사실 지금에 와서는 박해수 형이 보여준 한이 있기 때문에 제가 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형이 완벽 이상의 존재를 보여줬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하면 색다른 느낌이 나긴 하겠지만 그 에너지와 깊이와 포스는 따라갈 수가 없죠. 한 10년, 20년 뒤에 좀 더 성숙하고 영글어서 무게감이 생기면 또 몰라도요.


처음부터 그런 역할이 들어왔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박해수 배우가 너무 완벽한 뭔가를 보여준 후니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와 비슷한 경우죠. 그 역할은 하비에르 바르뎀밖에 못 하는 거잖아요. 배우로서 굉장히 매력 있고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냥 꿈이에요. 언젠가 안톤 시거나 한 같은 역할을 해보는 게.


영화도 영화지만 극장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웬만한 영화는 다 극장에서 봤다고.

거의 그렇죠. 개인적으로 그 편을 선호하고요. 뭐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중학생 때 가장 많이 영화를 접했던 매체는 브라운관이었죠. 집에 비디오테이프가 들어가는 일체형 TV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좀 크면서 극장 가는 게 쉬워졌고 그걸 좋아하게 됐어요. 요즘은 또 상황이 이러니 OTT 서비스로 보고 있고요. 그것도 장점이 있긴 한데,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면 느끼는 감정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저는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전에 있던 방식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말이죠.


영화 관련 기술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이드 바이 사이드〉에 이런 말이 나오죠. “극장에서 거대한 크기에 웅장한 사운드로 상영될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영화를 작은 스마트폰으로 볼 때, 그것은 같은 콘텐츠인가?”

맞아요. 맞는 말 같아요. 대부분의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을 생각하고 그에 맞게끔 찍은 작품이니까, 그걸 위해서라도 극장은 계속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냥의 시간〉을 보다가 그 명제가 다시 떠올랐어요. 한을 처음 맞닥뜨린 준석의 벌벌 떠는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요. 극장에서 봤다면 분명 압도될 장면이었으니까.(〈사냥의 시간〉은 극장 개봉이 예정되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넷플릭스에서 공개했다.)

아쉬운 부분이 있죠. 특히 〈사냥의 시간〉은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돈을 많이 들여서 돌비 애트모스(자연스럽고 실감 나는 서라운드 사운드 효과) 작업을 했는데, 사실 집에 그런 사운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장비까지 갖춰놓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지금이라도 〈사냥의 시간〉을 보실 분들은 혼자, 방을 좀 어둡게 해놓고 소리에 집중해서 감상하시기를 추천드리고요.


악몽을 구현한 듯한 감각의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암갈색 톤에, 텅 빈 도시를 달리는 젊은이가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좁혀 들어오고…  

아, GV 하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감독과 배우가 극장에 모여서 영화를 보고,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지나서 꼭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아쉬운 대로 제가 GV풍으로 질문을 드릴까 봐요. 영화 잘 봤고요.(웃음) 이제훈 배우는 윤성현 감독과 아이디어나 트리트먼트 수준에서도 대화를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사냥의 시간〉 작업에 관여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요?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정도만 대충 들었어요. 그리고 바로 시나리오로 확인했죠.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직선적이고 단순한데 이걸 시각,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기대되더라고요. 윤성현 감독이 이걸 시네마적 요소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요. 시나리오를 읽고 빨리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하는 생각보다 ‘관객에게 얼마나 체험적인 영화로 다가갈까’ 그런 부분이 궁금했던 거죠.


확실히 긴장의 감각을 전달하는 연출이 많았죠. 도박장을 털러 들어가기 전에 문 앞에서 계속 망설이는, 계속 문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거나.

케이퍼 무비(절도를 다루는 범죄 영화)가 보통 결과를 보여주는 부분이 많잖아요. 선택에 대한 결과. 그런데 이건 과정을 좀 더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익숙한 사람들이 능숙하게 물 흐르듯 처리하는 게 아니잖아요. 계획은 했지만 모든 게 처음이고, 인생을 걸었고, 너무 긴장되고 떨리고. 저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인생의 초년생, 대학 입시를 준비하거나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딛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생각했어요. 제 초년 시절도 떠올렸고요. 대학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 있는데 계속 배우가 되고 싶고. 그런데 이걸 하지 못하면 내가 여태 살아온 시간을 스스로 부정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부정하면 나는 낙오자가 되는 건가 싶고. 친구들은 군대도 다녀오고 취직 준비도 하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건가 싶고. 정말 매일 불안과 걱정의 연속이었죠. 세상에는 ‘이거 안 되면 다른 거 다시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매 선택에 늘 인생의 기회비용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결국 2, 3년 해본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안되면 군대 가자 생각했다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태도가 더 시간을 낭비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냥 다 내려놓고 몸을 던지는 게 맞았을 텐데, 되돌아올 곳을 생각해놓고 보험을 만들어두려고 했던 거죠. 물론 그런 게 마음의 안정을 줄 순 있을 거예요. 하지만 분명 모든 걸 다 내던지는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보거든요. 결과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고 해도, 다 내던져본 사람은 그다음 단계에서 뭔가를 이룰 확률이 더 커진다고 봐요.


하지만 만약 애초에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 진학부터 연극영화과를 선택했다면 지금과는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망설이다 늦게 시작했다는 절박함이 뭔가를 만들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것도 맞죠. 생각해보면 저는 운이 되게 좋았어요. 되게 절박하게 시작했기 때문에 결국 25살에 다시 새로운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엄청 열심히 했던 것 같고요. 만약 20살에 바로 시작했다면 그 정도로 절박하진 않았겠죠. 그 인고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그 후로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어요. 그런데 이제훈은 여전히 단식 투쟁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단식을 하거나 일본인 간수 역할 배우에게 진짜로 두들겨 패달라고 부탁하는 배우죠. 그 절박함이 어떻게 유지가 되는 걸까요?

저는 여전히 제가 궁금해요. 제가 누군지 탐구하고, 나에게 어떤 모습이 있는지 들여다보려고 하죠. 제가 배우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연기할 수밖에 없는데, 저라는 사람은 하나잖아요. 스타일은 바꿀 수 있어도 생김새를 바꿀 순 없고, 대사가 바뀌긴 해도 말투와 기본적인 습관은 제거하기 힘들어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제 자신을 실험하고, 갈고 닦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편하지가 않은 것 같아요. 계속 초조하고 불안하고.


아직도 불안해요?

저는 항상 이게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해요. 대중은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 새로운 스타를 원하잖아요. 실제로 끊임없이 나오고 있고. 저를 대체할 수 있는 배우는 굉장히 많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저는 ‘내게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계속 고민하면서 이 일을 해야 하는 거죠.


제훈 씨는 워낙 산전수전 다 겪은 배우잖아요. 신인상을 놓고 두 작품의 자기 자신이 경합을 벌인 적도 있고, 그런데 또 어느 작품에서는 연기력에 대한 혹평이 나오기도 했고. 대중적 흥행작도 해봤고, 흥행에 실패한 작품도 있고, 이례적 인기를 얻은 독립 영화도 했고.

그런 경험을 해도… 그런데 저는 이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계속 변주하려는 고민을 멈추는 순간 정체되고, 배우는 정체되면 바로 퇴보한다고 보거든요. 배우가 나태해지면 대중은 바로 알아차리는 것 같아요. ‘나는 배우니까, 내가 그냥 숨 쉬는 것만으로 나를 배우로 봐주고 내 연기를 봐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해요.


단식하고 두들겨 맞았던 작품, 〈박열〉이 제훈 씨에게 특히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감독님도 운 좋게 잘 만났고, 그런 입체적인 실존 인물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저한테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 저는 외적인 부분을 계속 체크했거든요. 그런데 그 작품을 촬영할 때는 거의 스스로를 체크하지 않았죠. 땅바닥에 구르고 먼지 뒤집어쓰고, 뭘 해도요. 오히려 거칠고 지저분하게 나오면 더 좋은 캐릭터니까. 그래서 저를 막 다뤄달라고 했던 것 같아요.


실존 인물은 연기하기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사람의 실제 삶은 한 가지 맥락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격동하는 시대를 산 인물이면 말할 것도 없고요. 결국 배우가 어떻게든 자기 방식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든 영화든 저는 작업할 때 시나리오를 쓴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요. 물론 그게 제 생각과 일치하면 너무 좋겠지만 이견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대화를 하다 보면 또 다양한 답을 얻게 되거든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분들과 작업하는 걸 선호해요. 그래야 일을 할 수 있더라고요. 아무리 촬영 조건이 잘 준비되어 있어도 소통이나 변화의 여지가 없다면 저는 그 작품을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작품도 중요하지만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중요하게 보는군요.

상충하는 부분이 있을 때 그 이유를 잘 설득할 수도 있잖아요. 제 생각이 틀린 이유를 잘 설득해줄 수도 있고, 제가 제 해석을 잘 설득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답이 나올 수도 있고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영화, 드라마 같은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굉장히 선호하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최근에 ‘촬영장에서 반사판이라도 들겠다’는 표현을 많이 썼어요, 여러 맥락에서.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하니까 ‘혹시 정말 반사판을 들고 싶은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웃음) 군대에서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배우로 일하지 못하게 되면 뭘 할 수 있을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일을 하지 못하는 환경이 되니까 돌아보게 된 거죠. 굉장히 치열하게 살아왔고 운도 좋았는데, 이후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만약 작품 활동을 못 하게 되면 뭘 해야 할까? 그럼에도 저는 극장 가서 영화 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고, 영화와 관계된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 그게 되면 너무 좋겠다. 계속 영화라는 꿈을 꿀 수 있으니까. 그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꾸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아요. 근데 진심이거든요. 어깨너머로 많이 배우고 있기도 하고요. 촬영장의 순간순간, 과정들이 너무 좋아요.


작년에 영화 제작사 하드컷을 설립했죠.

네. 20대 초반에 단편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만난 두 사람(양경모 감독, 김유경 PD)이랑 같이요.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자는 목표로 만들었죠. 지금은 여러 아이템으로 시나리오도 쓰고 공유하면서 발전시키고 있고요.


제훈 씨는 예전부터 틈틈이 시나리오의 단초가 될 만한 것을 메모장에 쓰고 있다고 했어요.

여러 소재가 있어요. 트리트먼트 단계의 이야기는 있지만 시나리오로 발전된 건 아직 없고요. 제가 글 쓰는 재주는 훌륭하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좋은 작가님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메모장에 쓰는 시나리오 아이디어는 대체로 어떤 걸까요? 재미있는 이야기? 캐릭터? 상황? 특정한 감정?

그것들 모두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일지언정 일단 기록해요. 그래서 그 순간의 감정을 그림과 영상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곱씹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혼자서 즐기다가, 함께 공유하면서 실제적으로 발전시키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한 거고요. 꿈을 실현시키는 거죠. 같이 꿈꾸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거고,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을 모아야 할 테고요.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보다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에 가까운 거네요, 설립 취지가.

맞아요. 뭔가 대단한 걸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꿈꾸고 있는, 보여주고 싶은 건 이런 거다’ 하는 거죠. 그 전까지는 배우의 위치에서 보여줬다면 이제는 아이디어, 기획이나 제작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거고요.


그 과정을 통해 배우로서도 더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을 보게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맞아요. 제가 지금껏 주연을 많이 맡아왔기 때문에 바깥에서 보면 주연작만 욕심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조연이나 짧게 나오는 단역이라도 작품만 좋다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기를 너무 원하는 배우고요. 분량을 떠나서 좋은 작품에 제가 나오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일이죠.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으로 처음 호흡을 맞춘 감독이죠. 윤성현 감독이 얼마 전에, 제훈 씨가 10년이 흐르는 동안 ‘누르면 바로 연기가 나오는’ 배우가 되었다고 극찬한 적이 있어요. 스스로 평가하기엔 어때요? 

그때에 비하면 좀 더 열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나 연기 잘해야 돼’, ‘연기 못하면 끝이야’ 이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못 살게 굴었던 때도 있거든요. 확실히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까 알게 된 거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같이 하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고, 내 상태나 반응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하고, 작품을 좀 더 어우러지게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말이죠.


〈파수꾼〉은 배우 이제훈을 주목받게 해준 작품이죠. 다시 본 적 있어요?

가끔 TV에서 방영하더라고요. 뭐 그럴 때 한 번씩 ‘어, 이거 하네’ 하고 보다가 ‘어휴, 못 보겠다’ 하고 돌려버리죠.(웃음)


어떤 부분 때문에요?

좀 생경해요. ‘내가 언제 저렇게 연기했지? 나 저렇게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저걸 알고 한 건가, 모르고 한 건가? 정말 멋모르고 연기를 했구나’ 싶어지니까요. 무식하면 용기 있다고, 나름 좋았던 부분도 있지만… 아쉬움이 큰 것 같아요. 뭐 지나온 작품 뒤돌아보면 다 아쉬운 부분이 되게 많죠.


박정민 배우가 〈파수꾼〉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어요. 대본 리딩할 때는 분명히 제훈 씨가 그렇게 연기를 잘하지 않았는데, 슈팅 들어가니까 갑자기 너무 잘하더라고. 놀라서 자기도 열심히 준비했다고.

하하하하.


그 단기간에 성장한 걸까요, 아니면 몰입의 차이일까요?

몰입이 큰 것 같아요. 제가 몰입한 모습 보면 가끔 저도 섬뜩할 때가 있거든요. 분명 제가 이 연기를 하면서 목표한 바가 있을 텐데, 어느 순간 목표가 모호해지면서 그냥 그 인물이 된다고 해야 하나. 그 상황을 제가 정말로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는 저도 저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죠. 그래서 연기할 때는 항상 집중하고, 예민해지는 것 같고. 그 예민함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 안 될 텐데 말이죠.


저는 그래서 〈트래블러〉 같은 예능 보면서 놀랐어요. 소탈하고 부드러워서. 저도 모르게 이제훈이 좀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나 보더라고요.

저는 정말 극과 극인 것 같아요. 촬영할 때는 되게 예민한데, 아닐 때는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건 별로 관심이 없어요. 온·오프 스위치가 명확한 거죠. 촬영을 하면 이 순간이 남겨지고, 제가 그 순간을 돌이킬 수가 없잖아요. 지울 수도, 덮을 수도 없고. 그 순간을 놓치면 분명 후회할 것 같은 거죠.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는 게 통용되지 않는 사람인 거예요.


그럼 제훈 씨는 배우 이제훈을 어떻게 평가해요?

음… ‘노력만큼은 참 가상하구나’.


굉장히 박한데요.(웃음)

그 노력이라도 하니까 이 정도 하는 건데요. ‘더 열심히 진심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오, 평가만 부탁드렸는데 덕담까지.

(웃음)


그럼 이제훈은 앞으로 어떤 영화인이 될까요?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의미도 있으면서 재미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이자 꿈이고요. 궁극적으로는 그걸 10년, 20년 지속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젊은 배우로서 그런 제가 자극제, 촉매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뭔가 새로운 시도가 나오면 ‘쟤는 별종이야’, ‘쟤는 늘 이상한 선택을 해’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발상이 많아야 발전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건강한 영상 예술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분명 많아질 거고요. 제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과정까지 잘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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