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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지 않아>에서 나무늘보 역을 맡은 배우 전여빈의 길

조회수 2020. 2. 24.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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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빈은 자기만의 바른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전여빈의 길
출처: 그레이 울 재킷, 울 팬츠 모두 르메르. 블랙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
출처: 블랙 드레이프 숄더 디테일 니트 요지 야마모토. 뷔스티에 스커트 렉토.

〈해치지 않아〉에서 나무늘보 역할을 맡았어요. 나무늘보 탈을 쓰고 연기한 소감은 어땠나요?  

동물 역할 중에서 나무늘보 역할이 탈을 쓰기가 제일 수월했어요. 털 사이사이에 그물망을 만들어놔서 생각보다 훤히 보이기도 했고요. 그 안에 딱 숨겨진 것 같아 포근할 때가 있었어요. 겨울에 오픈 세트에서 촬영해서 되게 추웠는데도 북극곰이나 고릴라 탈을 쓰신 분은 액션이 많아서 머리카락이 흥건해질 만큼 땀이 났어요. 하지만 저는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패딩 입은 것처럼 따뜻하고 좋았어요. 장난으로 “내 전용 퍼야. 에코 퍼야” 같은 말도 하고.


탈이 무겁지는 않았나요?

무게는 10~15kg 정도라고 하던데 제가 맡은 나무늘보는 액션이 많이 없잖아요. 한군데 매달려 있기만 하니까. 그래서 많이 무겁거나 힘들다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컷’ 할 때까지 매달려 있으면 되니까요.


전용 에코 퍼와 함께한 〈해치지 않아〉는 어떤 영화인가요?

‘동산 파크’라는 동물원이 손님이 없어서 망하고, 동물도 다 팔려가게 돼요. 그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이 동물로 위장하고 고군분투합니다. 휴먼 코미디인데 남녀노소 누구나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속도감이 넘치는, 계속 잽을 날리는 코믹 영화 스타일은 아니에요. 코믹보다 드라마 요소가 더 많은 것 같고요. 설정이 기발할 뿐 드라마가 더 큰 이야기이고, 감독님도 MSG를 많이 뺐어요. 더 자극적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안 그러려고 한 것 같아요. 그게 손재곤 감독님 스타일 같기도 하고요.


요즘은 다들 자기 자신을 알리려 하잖아요. 유명인이나 할 법한 고민을 보통 사람도 하고요. 다들 브랜딩을 하자고 하고. 한편으로는 나도 그래야 하나 싶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나’ 싶고요.

맞아요. 제 친구들만 봐도.


친구들은 거의 연예인 쪽 아닌가요?

(그런 친구는) 거의 없어요. 오히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배우 친구들을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대학 동기 중에는 배우가 거의 없는데 운동을 하든 선생님을 하든 꽃을 하든 다 자기를 PR해야 하더라고요. 다들 거기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요. 나를 알리지 않으면 도태되니까요.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세상이 온 것 같기도 해요. 어차피 다 자기를 알려야 한다면 자기를 알리는 일 역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럼 여빈씨는요? 자신을 알리는 게 신경 쓰이나요?

배우 전여빈과 사람 전여빈을 나눠 생각할 순 없어요. 내가 어떤 이미지로 나를 만들고 싶어도 그게 오래갈까요? 설정한다 해도 내가 지칠 것 같아요. 내가 만든 모습이 어느 순간 진짜가 아닌 것 같으면요? 또 사람들이 제가 만든 모습을 진짜 전여빈이라고 믿고 나를 사랑해준다면 내가 그걸 못 버틸 것도 같고요.


스스로에 대한 방향이 확실하네요.

아직 제 자신을 제대로 모른다 싶기도 해요.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저도 모르는 제 자신을 확인할 때가 있어요. 촬영 모니터링을 하면서 새롭게 보이는 것도 많아요. ‘나한테 이런 표정이 있어?’ ‘저런 연기를 할 때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톤이 나오네?’ 내가 자각한 모습을 잘 끌고 가다가 언젠가는 내가 보기 싫던 모습을 봐야 할 때도 오겠죠. 일단은 열어놓고 있어요. 어떤 모습의 나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기꺼이 열어놓고 달려가 보자고. 이제 시작이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도 많으니까 계속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거예요. 두렵더라도 한번 가봐야죠.


뭐가 제일 두려워요?

미지가 두려운 것 아닐까요? 설레기도 하지만 기약이 없으니까…. ’두려움’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해 보이나요? 용기라고 해야 할까요?


배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스무 살 때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저에 대해 궁금해져서 내 취미와 특기를 생각해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난 도대체 뭘 좋아할까’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저와 가장 가까이 있던 게 성경, 시, 영화였어요. 영화를 많이 본 것도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어요. 논술 시험 잘 치려고. 좋은 논술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고전 영화 리스트가 있었거든요.


모범생이었네요.

입시를 잘 치르려는 열망이 있던 사람이죠.(웃음) 입시 제도에서 살아남고 싶은데 가진 게 없으니 살아남으려면 제도를 따라야 하니까요. 그때 제 마음을 두드린 영화가 굉장히 많았어요. 특히 〈죽은 시인의 사회〉는 책도 봤는데 영화로 봤을 때가 훨씬 좋더라고요. 입시를 준비하니 감정이입이 돼서 “오 캡틴! 마이 캡틴!”에 더 전율이 왔나 봐요. 그래서 친오빠에게 용기를 내서 배우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오빠가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어머니도 설득해줬어요. 학교 시험을 본다고는 했지만 아무 대책도 없었죠.


그럼 어떤 마음으로 준비를 했죠?

운이 도왔고 절실하게 꼭 해내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도 사회에서 이루고 싶은 게 생겼고요. ‘안 되도 할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던져보기 전까진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학원에 제일 먼저 나가서 늦게까지 하고,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도 많이 보고, “여빈아, 넌 뭘 그렇게 계속 써?”라고 물어볼 정도로 기록도 많이 하고, 그 끝에 09학번으로 대학에 갔어요. 너무 기뻤어요. 뭔가 명분이 생겼으니까요.


대학에서는 어땠어요?

진짜 시작이고 더 많이 노력해야 했어요. ‘내가 정말 열심히 하고 20대를 아주 건실하게 보내면 27, 28살 때쯤엔 데뷔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러면 너무 늦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제게는 그게 맞는 속도였어요. 더 빨리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게 제 속도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견뎠어요?

버티는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허튼짓하지 않으면서 나만의 바른 방식으로 배우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이 믿음이 틀린 게 아닐 거야’라는 무한 믿음으로.


버티면 되던가요?

버티다가 운도 도와줬어요. 관계자분들에게 주목받은 영화 〈죄 많은 소녀〉의 주연이 됐어요. 사실 그걸 찍을 때만 해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노선이라고.


그때를 마지막이라고 여겼을 줄 몰랐어요.

그 작품이 제게 큰 행운이었어요. 러브콜도 많이 받고 본격적으로 배우 일을 할 수 있게 기회를 터줬어요. 그게 제 능력으로 거머쥔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어요. 김의석 감독님과 그분이 이끄는 스태프 팀이 모두 ‘이다음 작품은 없다’는 생각으로 정말 다들 열심히 하셨어요. 제가 그 영화로 주목받고 혜택을 입지만 그분들이 만들어준 영광이에요. 저는 행운을 너무 많이 얻었어요.


모두에게 좋은 기억일 거예요. 이젠 어떤 마음이 드나요?

이제 시작이란 느낌?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데 이제 총성이 울렸고, 막 뛰기 시작한 느낌?

출처: 화이트 터틀넥 니트 톱, 하이웨이스트 팬츠 모두 이로. 화이트 앵클부츠 레이첼 콕스. 실버 이어링 헤이.
출처: 포플린 미디 드레스 지방시.

배우로서 매일 하는 훈련도 있나요?

학생 때는 있었어요. 학교에서 배운 걸 적용해보고 싶어서 트레이닝 개념으로요. 몸을 이완시킨다든지 발음 발성 훈련을 한다든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한편 대견하기도 해요. 그때 나름 각오를 갖고 매일매일 스스로 단련한 게. 요즘은 그런 훈련은 안 해도 촬영 중에는 항상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요. 그걸 아침저녁으로 꼭 하려고 해요.


그럼 연기가 더 잘돼요?

그런 건 아니에요. 운동선수나 무용수는 표현을 극대화하고 부상을 줄이기 위해 몸을 몇 시간씩 풀잖아요. 배우도 신체를 활용해 뭔가 표현하는 직업이니 그 정도의 이완 작업은 기본이라 생각해요. 어느 순간 그런 게 없이도 촬영장이 편해질 때가 올지 모르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인간 전여빈으로는 마음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마음이 창이라면 그 안에 언제든 때가 끼고 녹이 슬 수 있으니까 그때그때 잘 닦아놓으려고 한달까요. 내 마음을 틈틈이 들여다보고, 어느 순간 내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을 다시 짚어보고.


틈틈이 들여다보려면 혼자 있는 시간도 있어야겠네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나요?

작업할 때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만 배우는 프리랜서니까 촬영이 없는 동안은 혼자 있을 때가 많죠. 최근 1년 동안은 거의 쉬지 않고 일한 것 같아요. 〈죄 많은 소녀〉 개봉하고 〈해치지 않아〉 〈천문〉을 함께 했고, 이후 〈멜로의 체질〉과 〈낙원의 밤〉을 차례로 촬영했으니까요.

얼마 전에 켈로그 광고를 우연히 봤어요. “시험 볼 때 먹으면 안 돼?”

와… 신난다…. 왜 갑자기 부끄러워질까요.(웃음) 그때 너무 좋아하는 지은 언니, 우희 언니랑 함께 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들 너무 보고 싶어요.


〈멜로가 체질〉 촬영장이 진짜 분위기 좋았다고 들었어요. 마니아 시청자도 많았죠. 〈멜로가 체질〉이 인간 전여빈에게 끼친 영향은 무얼까요?

제게 주어진 일과 제 선택과 결정이 계속 저를 변화시킨다고 믿어요. 정체기나 슬럼프일 때도 계속 변하는 중이겠죠. 그런 면에서는 〈멜로가 체질〉도 저를 변화시켰죠.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은정’이라는 배역도 만나서 그 시간을 채워나갔으니까요.


좋은 변화였나요?

네. 아주 행복한 기억이라서 되게 그리워요. 그 촬영장도, 제가 연기한 은정이도요. 〈멜로가 체질〉 끝나고 몇 주 후 〈낙원의 밤〉 촬영 들어갔는데 좀 힘들더라고요.


〈낙원의 밤〉 촬영은 끝났나요?

네, 끝났어요. 하지만 아직 비밀입니다! 기대해주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예요. ‘어느 순간, 단순히 영감이 떠올라 내가 소설가가 될 거란 확신은 안 했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글이 나오고, 그 자체로 충분히 즐겁기를 바란다’ 같은 내용이 있어요. 메리 올리버의 〈휘파람 부는 사람〉도 굉장히 좋았어요.

출처: 셔츠 드레스 르메르. 블랙 롱부츠 렉스 핑거 마르쉐. 로즈 골드 이어링 알라인.
출처: 실버 이어링 헤이.

긴 목표 말고, 당장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해치지 않아〉 홍보를 정말 잘 마무리하고 싶고, 〈낙원의 밤〉 다음 작품을 아직 정하지 않아서 잘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한 걸음 한 걸음이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집 청소를 좀 해야 해요. 집 청소를 미루고 있거든요. 제가 출장으로 지방에 살다가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래서 이불도 너무 얇아요. 두꺼운 이불로 바꿔야 해요. 그러다 보면 겨울이 다 지날 것 같긴 한데….


겨울 이불이 다 세일 중이에요. 거위 털 이불도 시즌 오프입니다.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좋대요. 저도 혼자 사는데 들여놓을까 싶어요. 청소 다 됐다고 말도 해주고. 그럼 누구와 같이 있는 기분이에요.

하하하하. 너무 웃기다. 집안일 중요해요. 나의 터전이니까.


일하면서 종종 정서적으로 힘들 때가 있는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시름을 잊기도 하더라고요

저 완전 공감해요! 보송보송한 빨래! 햇빛에 착착 말린 빨래를 접을 때 섬유 유연제 냄새 확 나잖아요.


제 유일한 사치도 섬유 유연제입니다. 섬유 유연제를 6~7가지 정도 써요.

저 뭔지 완전 알아요. 저도 향 완전 중요하거든요. 저는 보디 제품이 향별로 있어요. 대개 우디하거나 아로마 향인데 그게 굉장히 큰 행복감을 주더라고요. 또 하나 저의 큰 사치는 입욕제! 반신욕하는 걸 좋아하는데 입욕제 하나 풀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아요. ‘오늘 한번 호사를 부려보자’ 하는 날엔 입욕제를 씁니다.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

빨래 접을 때 또 얼마나 행복해요. 집안일이 행복해요. 오늘 집에 가면 집안일해야지.


훌륭한 어른이 된 느낌인데요.

그럴까요? 선배님들 이야기 들어보면 계속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잘 해보고 싶어요. 내 모습, 내 인내심이 한 이 정도만 됐으면 좋겠는데 그 밑에 있는 걸 알면 속상하거든요.


자기가 잘 살 때 내가 제일 기분이 좋잖아요. 아까 빨래 너는 이야기처럼.

맞아요. 그러네요! 이게 결국엔 빨래네. 집안일을 누굴 위해 하겠어요, 나잖아요. 맞네요.


우리 모두 집안일하는 2020년을 보냅시다.

좋습니다. 일단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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