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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마약류 처벌에 엄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

조회수 2020. 8. 31. 17: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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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세기의 전쟁

마지노선. 최후의 보루에 놓였을 때 많이 쓰는 말이죠. 마지노선은 마치 한자로 이뤄진 사자성어 같은데요. 마지노선이 사자성어가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마지노선은 Maginot line입니다. 프랑스가 대 독일 방어선으로 국경에 구축한 요새선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지금도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마지노선을 둘러싼 프랑스와 독일의 전투를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는 1927년부터 독일과의 국경선에 마지노선을 쌓았습니다. 참호를 콘크리트로 도배하고, 여기에 기관총과 야포를 설치합니다.


마지노선은 아무리 탱크라도 못 건넙니다. 콘크리트 덩어리니까요. 이 사이에 포나 기관총을 설치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는 당시에 이미 세계 최강으로 알려진 독일의 기갑부대를 막기 위한 프랑스의 나름의 전략이었습니다.

절대 뚫지 못할 마지노선, 독일의 선택은?

출처: 영화 <덩케르크> 스틸 사진

프랑스는 마지노선을 만들어 놓고, 독일이 절대 뚫지 못할 거라고 자신만만해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노선에 100만 대군을 배치하고 철통같이 지킵니다.


독일은 이 철통 같은 마지노선을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적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독일은 당연히 마지노선을 피해 빙 돌아갑니다.


재밌는 사실은 프랑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독일이 벨기에를 통해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던 프랑스는 벨기에 국경까지 마지 노선을 구축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벨기에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합니다.

마지노선의 빈틈, 프랑스의 해결책은?

프랑스는 세계 1차대전에서 벨기에가 잘 싸운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노선 대신에 벨기에 뒤쪽에 백만 대군을 배치합니다. 

독일의 전격전과 덩케르크 대탈출

출처: 마미손 뮤직비디오 갈무리

독일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독일군이 벨기에쪽으로 움직이는 조짐이 보이자 프랑스군은 '계획 대로군 OK' 하면서 100만 대군을 그대로 보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터집니다. 그게 알고 보니 독일의 속임수였던 것입니다. 독일군은 돌아서 오지 않고 직진을 합니다.


프랑스는 독일이 직진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르덴 숲'이 있거든요. 제1차 세계대전 때도 그곳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한 독일군이 전격전으로 숲 쪽에서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군 뒤로 돌아가 포위 섬멸전을 버리고 마지노선도 파괴해버립니다.

출처: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를 기억하시나요?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이 마지노선에서 싸우는 독일과 프랑스군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아르덴 숲 작전과 전격전이 모두 성공하면서 프랑스가 한방에 무너지고 맙니다. 당시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살아남은 군대가 영국으로 무사히 탈출했다는 거죠. 덩게르크 대탈출 덕분에 군대를 재건하고, 이후 설욕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니까요.


덩케르크는 칼레 섬 바로 옆에 있는데, 지금도 영국에는 덩케르크 정신이 있습니다. 항복하지 않고 버티는 정신,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역전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덩케르크 정신이라고 표현합니다.

덩케르크 정신과 반대되는 상황도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입니다. 남베트남의 극심한 부패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남베트남에 제공한 무기들은 암시장에서 거래됐습니다. 이로 인해 미군의 무기를 들고 미군과 싸우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군인들조차 망명과 도주를 밥먹듯이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전투 전날, 붐비는 공중전화

다음날 전투가 있다고 하면 대부분의 베트남 군인들이 공중전화 앞에 서 있었습니다. 싸우기 싫으니까 가족들을 데리고 망명을 할 생각을 하는 거죠.


그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현재는 지원하지 않는 기능입니다.

무기는 베트콩에게 팔아서 돈으로 바꾸고요. 오죽했으면 미군이 철수를 결정했을까요.

이렇게 종종 어이없는 전쟁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쟁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전쟁이 바로 아편 전쟁과 청일전쟁입니다.


중국에서 마약류에 관련한 처벌이 다른 나라보다 무겁습니다. 바로 아편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적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1793년 건륭제는 청나라의 문호를 서구 유럽에 열어줍니다. 중국이 문호를 개방한 이후 영국과 교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영국은 중국의 은을 갖고 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은본위제※였기 때문에 은의 반출을 막고 있었습니다.

은본위제
일정량의 은을 화폐 단위로 하는 본위 화폐 제도

하지만 중국에는 그것 말고도 탐나는 교역품들이 많았습니다. 중국의 도자기, 비단, 차 등은 서양에서 인기 있는 것들이었죠. 영국은 이에 맞서 자신 만만하게 교역 품목으로 모직물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모직물이 전혀 팔리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선 일찍 면화산업이 발달했거든요.

영국의 검은 속내 '아편'

출처: 문화방송 <무한도전> 방송 화면 갈무리
중국의 수출품이 서양에서 대 히트를 칩니다. 도자기는 말할 것도 업속 중구의 차는 인기가 많아서 누구나 일상적으로 마시게 됩니다. 사치품에서 필수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영국의 차문화가 발달하면서 영국은 점차 중국과의 무역에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영국의 은을 내어주게 되면서 마치내 영국 내 은이 부족해집니다. 

영국은 중국과 무역 적자를 해결한 방안으로 삼각 무역을 생각해냅니다. 인도를 중국과의 무역에 끌어들이는 방법입니다.

영국은 인도의 아편을 중국으로 밀수출합니다. 아편을 밀수출함으로써 영국은 중국의 은을 챙길 수 있게 됩니다. 
출처: 영화 <아편전쟁> 스틸 사진

아편 문제는 중국 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중국 사람들이 아편에 약했을까요?


1. 당시 중국은 담배 금지

2. 중국 내 빈부격차


육체노동에 시달렸던 중국의 하층민들 사이에서 도박과 아편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결국 중국 정부는 1839년 임칙서를 내세워 강력한 아편 단속 정책을 펼칩니다. 은을 챙기던 영국이 이 사태를 보고 과연 가만히 있었을까요? 영국은 중국의 아편 단속에 반발하며 아편 전쟁을 일으킵니다.


아편 전쟁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을까요? 이후 아편은 중국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후 이야기는 <최진기의 전쟁사 2권: 근세부터 현대까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세기의 전쟁, 더 임팩트 있고 강렬한 전쟁의 역사는 <최진기의 전쟁사 2권: 근세부터 현대까지>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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