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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심술

코로나 그리고 전광훈, 우리는 이렇게 게임 오버를 맞이하는가?

자유민주주의의 끝, 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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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자행된 집회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불안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코로나로 인해 전국민이 안전에 초집중하는 현실보다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드높이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의 거친 언행과 폭력적 움직임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분노, 무기력함과 혐오감을 안겨줬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정부의 코로나 안전 지침을 거짓 선동이라고 부르짖고,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침을 뱉고 가짜 뉴스를 서로의 메신저로 전파시키는 모습, 일장기와 성조기를 태극기와 같이 흔들고, 집회를 막으려는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거칠게 저항하는 모습은 장마와 폭염과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집회 이후 들리는 코로나 환자 증가 뉴스는 다시금 국민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그 시작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우리가 지키려 한 자유민주주의를 잘못 인식하고 그릇되게 행사하는 일부 사람들이 주는 피로감은 이렇게 누적되어 과연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렇게 자유민주주의는 만신창이가 되어 끝을 맺을 수도 있는 것일까?

출처<게임오버> 저자 한스 페터 마르틴
침몰하는 세계, 민주주의의 몰락

20년 전 <세계화의 덫>을 출간한 한스 페터 마르틴은 구조화되는 불평등을 ‘20대 80사회’(전세계 인구 중 소수인 20%가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반면 대다수인 80%는 사실상 20%에 빌붙어 살아가는 현상, 즉, 빈곤층 80%와 부유층 20%로 양분되는 사회)로 정의하며 세계화의 덫과 민주주의와 복지를 향한 공격을 예고했다.


그는 신작 <게임 오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맞닥뜨릴 게임오버, 끝을 예언한다. 예언이라기 보다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진단한다.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국가와 권력, 자본력을 개입시켜 소수의 권력만이 자유민주주의의 번영을 누리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 소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금수저, 흙수저를 논하며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토로한다. 이에 따른 피로와 좌절이 분노와 저항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안정된 사회적 기반이 없는 자유민주주의는 위태로워졌고,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안은 광신적인 애국주의나 국수적인 이기주의를 이끌어냈다. 우리는 이미 세계적인 격동 속에서 이러한 상황들을 목도하고 있다. 폐쇄적 민족주의인 트럼프주의는 눈앞의 현실이 되었고, 많은 유럽연합 국가에서 우파 민족주의 정권의 선출은 현실이 되었다.  

소수의 자본가들이 준비하는 노아의 방주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사업자들은 알고 있다. 철도왕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왕 존 록펠러 이래로 지금처럼 많은 부가 소수의 주머니에 집중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경제지 <포브스>가 꼽은 전 세계 억만장자가 2천여 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있다.


인터넷 업계의 새로운 군주들 가운데 몇몇은 이미 여기에 포함됐거나, 적어도 그들과 함께 사업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헤지펀드 분야에서 일하는 금융전문가 25명의 연봉이 미국 전체 유치원 교사들 의 월급을 합한 것 만큼이나 많다는 사실도 알고있다.


페이스북 광고팀에서 일했던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는 “우리는 지금 아주 얇은 얼음 위를 걷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고는 미국 북서부 어느 섬에 숲으로 뒤덮인 땅을 사들였다. 그곳에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기와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고, 수천 발의 탄약도 구비되어 있다. 그는 머잖아 혼란과 분열이 일어나면 금괴를 비축해둔 그곳으로 대피해 사설경호를 받으며 지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르티네스는 페이스북에서 연결된 사적인 모임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데, 그 중 투자회사 사장인 한 멤버는 헬리콥터 한 대 를 항시 대기시켜 놓고 비밀벙커도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출처‘노아의 방주’ 박물관 사진

지난 몇 년간 전용기를 보유한 수많은 대부호들은 미국에서 비행기로 열세 시간 떨어진 뉴질랜드에 ‘노아의 방주’를 지었다. 그들이 뉴질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서구 국가들에서 점점 더 희귀해지는 어 떤 것이 이 나라에는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회적 안정’이다. 


외국인이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최소 100만 달러를 투자하고, 5년간 적어도 1,350일을 거주해야 한다. 그런데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이자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은 뉴질랜드에 단 12일만 머물고도 시민권을 받았다. 당시 뉴질랜드 내무장관이었던 네이선 가이는 “피터 틸은 뉴질랜드의 위대한 외교사절이자 위대한 사업가”이기 때문에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틸은 진작에 뉴질랜드의 요지에 고급주택과 부지를 사두었는데, 2017년 뉴질랜드 의 한 지역 매체가 그의 시민권 획득사실을 보도하기 전까지 대중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조언자이기도 한 틸이 그의 헤지펀드 투자자 동료들이 그런 것처럼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둔 것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사람들은 사회 전체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 가능성은 기후변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요인들이 더해지면서 더욱 커졌다. 사회적 긴장의 증가도 커다란 불안 요소인데, 끊임없이 가시화되는 인종 갈등 역시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사안이다. 한편에는 사회안전망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불균형과 이에 대한 소외계층의 반응도 우리를 긴장시킨다. 자유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부를 획득한 소수는 이 불안과 체제 붕괴 조짐을 읽고 그들만의 도피처를 마련하고 있다. 그 소수가 아닌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시당하는 인정 욕구, 커져가는 혐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인정욕구’다. 타인의 인정을 받은 사람은 전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자산을 손에 넣은 셈이다. 하지만 소수만이 자본의 혜택을 누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평등이나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적개심과 분노가 상승할 뿐이다. 무의식에 숨은 반감은 편견과 우월감이 자라도록 양분을 공급한다. 이 가정과 저 가정에, 이 정당과 저 정당에, 이 나라와 저 나라에 그러한 감정이 스며들고 있다. 탐욕스러운 혐오주의자들은 서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타인을 향한 적개심이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 엘리트층은 대중 시민을, 다수 시민들은 기득권층을 적대시한다. 혐오사회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공정함에 관한 그들의 개인적 견해는 너무 주관적 이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절하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문제는 존중받고 싶고 자긍심을 느끼기를 원하는 욕구가 인정되지 않는 현실이 만드는 분노의 감정이 어떻게 폭발하느냐에 달려있다. 이 감정의 위력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 침해의 위협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정보에 접근 가능한 자가 권력을 갖는다. 이른바 ‘빅4’라 불리는 IT기업인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은 오래 전부터 중국 통치자들과 손을 잡았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감시 행태는 이제 애들장난 수준이다. 현재의 감시는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 수많은 유권자들이 감시당한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또한 당장 어떤 고통이 뒤따라 대응을 취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정보주권과 정보보호를 둘러싼 투쟁은 단지 개인 영역의 탈환을 위한 다툼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싸움이 심각해지기도 전에 독재자들은 손에 쥔 올가미를 더욱 바투잡아 쥘 것이다. 도대체 이싸움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모종의 권력이 개인정보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제어하는 것은 정치계에서 해결해야 할 중점과제 중 하나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대로 게임 오버를 선언하는가?

자유민주주의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고 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향하지 않고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고, 국가가 개입하는 어긋난 방식으로 자본주의와 연결되는 상황에 지치고 배신감과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대안을 찾아 신민족주의와 극우주의를 지향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대로 끝을 맺을 것인가? 진정 민주주의는 게임 오버를 선언하고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한스 페터 마르틴은 <게임 오버>를 통해 그 방향과 해법을 제안한다.

<세계화의 덫>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민주주의의 덫이 되리라 경고했다.

그 후속편인 <게임 오버>는 덫에 걸린 민주주의의 현실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신민족주의, 포퓰리즘, 극우주의가 그 현상이요,

트럼프, 시진핑, 아베, 푸틴이 그 화신이다.

정말 게임은 끝난 것인가? 희망은 없는가?

어쩌면 코로나19는 자연이 인류에게 준 마지막 각성의 기회인지도 모른다.


-김누리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


*본 포스팅은 한스 페터 마르틴의 <게임 오버> 내용을 발췌, 편집하여 작성했습니다. 

<이 콘텐츠는 한빛비즈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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