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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키드니 그릴의 시작과 의미

조회수 2020. 7. 20. 0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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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가듯 보기만 해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상징의 중요성

얼마 전 서울 망원시장 공영주차장 입구에서 BMW X7을 만났다. 2019년에 전시장에서 이 차를 보고 전작보다 40% 정도 커진 그릴의 거대함에 당황하던 사람들이 기억났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X7의 인상은 ‘크다’라는 표현보다는 ‘신전의 기둥’처럼 웅장한 느낌이었다.

출처: BMW
BMW X7

기존의 수평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BMW의 키드니 그릴이 수직적이며 혁신적인 라인 디자인으로 강렬한 어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때 조우하며 느꼈던 놀라움을 가슴에 안고 BMW 그릴 디자인 역사의 시작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은 항공기 및 무기 관련 사업이 3년간 금지되었다. 이런 제약 때문에 BMW는 기존의 소형 항공기 엔진 사업을 포기하고 모터사이클 제작 사업에 집중했다. 그 당시 일반 시민이 쉽게 살 수 없었던 고가의 자동차에 비해 값싼 모터사이클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출처: Wikimedia commons
1923 BMW R32 PS

미국에서 포드 모델 T가 높은 경제성과 우수한 품질로 서민의 발이 돼가고 있을 무렵 영국에는 오스틴 세븐이 세상에 나왔다. 이 모델은 훌륭한 운용성과 정비성 그리고 싼값 덕분에 ‘백만 인의 차’라 불렸다. 이렇게 자동차 시장의 관심이 이륜차보다 사륜차로 이동하면서 BMW도 오스틴 세븐을 라이선스 제작하기 시작했다.  

출처: flickr
1923년형 오스틴 세븐 AB 투어러

다른 메이커의 자동차 생산보다 고유한 모델을 만들기를 원했던 BMW는 1928년에 독일 3대 자동차 메이커 중 하나였던 아우토모빌베르크 아이제나흐(Automobilwerk Eisenach)를 인수했다. 이후 1929년 BMW는 자사 이름을 단 첫 번째 자동차로 딕시 3/15를 세상에 내놓으며 사륜차 메이커로서 찬란한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다. 

출처: flickr
1929년형 딕시 3/15

1933년 BMW는 딕시 3/15를 기반으로 첫 번째 자체 개발한 3/20 PS를 제작고, 같은 해 베를린 모터쇼에서는 순수 독자 모델 303을 데뷔시켰다. 이 차는 BMW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키드니 그릴과 BMW 엠블럼을 처음으로 달고 세상에 나왔다. 당시 세계 경제 공황의 여파로 다임러벤츠와 합병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부닥쳤던 BMW는 303의 높은 판매량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출처: wikipedia
BMW 303

덧붙여 말하자면 다임러의 빌헬름 마이바흐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디자이너 막스 프리츠가 공기 역학적 이유로 사용한 키드니 그릴은 303 전에도 존재했다. 오스틴 모터 컴퍼니가 디자인한 모델에 키드니 그릴만 단 딕시 DA 3가 있었지만, BMW 기술로만 만들어진 고유한 모델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출처: Vadim Zadorozhny 박물관
BMW 딕시 DA3 바르트부르크(Wartburg)

지금처럼 SNS나 유튜브 등 전파력이 빠른 매체가 없었던 1930년대에는 모터쇼와 신문 등으로 판매할 차를 알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자동차 메이커는 높은 기술을 뽐내기 위해 자동차 경주에 참여했지만 광고를 목적으로 레이스에 뛰어든 자동차 브랜드도 있었다. BMW도 신생 브랜드로서 자사의 우수한 설계와 독창적인 디자인의 자동차를 시장에 알리고 인정받는 것이 절실했다. 


그래서 BMW는 브랜드가 가진 제반 기술과 그 시대의 첨단 기술을 쏟아부어 자동차 경주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1936년에 공기역학까지 고려한 유선형 라인의 328을 만들어 냈다. 이 모델은 80마력의 M328엔진을 얹어 강력한 퍼포먼스의 경주용 자동차로 우승을 위해 만든 것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BMW 328 밀레 밀리아

328은 1936년부터 1940년까지 172번의 레이스에 참가하여 141번 우승이란 놀라운 성적을 얻었다. 특히 1,000마일(약 1.609km)을 쉴 새 없이 달려야 하는 이탈리아의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경주에서 평균 시속 166km로 우승을 거머쥐면서 대중들의 뇌리에 BMW의 우수한 기술을 각인시켰다. 

출처: Wikimedia Commons
BMW 328 밀레 밀리아

여러 레이스의 우승으로 열렬한 팬이 생기기 시작했고 '키드니 그릴은 BMW다'라는 수식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도 501과 502 그리고 503의 출시와 더불어 유지되었다. 그리고 수직으로 긴 모양의 그릴을 단 503은 또 다른 변화를 예고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BMW 503

1956년 전후 등장한 507의 키드니 그릴은 완전히 혁명 그 자체였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자유를 갈망하고 시대의 요구처럼 기존의 형태를 완벽하게 벗어난 새로움과 해방감이 느껴지는 넓고 세련된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엘비스 프레슬리 박물관에 전시된 BMW 507

이 멋진 디자인은 대중뿐만 아니라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과 최초의 본드걸 우르즐라 안드레스 등 여러 스타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애마로 미국 전역에 BMW를 알리는 메신저가 되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BMW의 키드니 그릴은 지구상의 어떤 브랜드라도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bimmerfest
프랑스 파리 BMW 매장의 키드니 그릴 장식

시간이 흘러 키드니 그릴은 높이, 너비, 모양 및 위치가 바뀌었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 그릴을 단 차가 BMW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쳐 가듯 보기만 해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상징이 있는 자동차 브랜드가 탄생하길 기대한다.   

글 윤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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