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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F-35추락사고로 본 첨단군사기술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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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영화같은 강대국들의

첨단군사기술 쟁탈전

고대로부터 적국의 군사력, 그 중에서도 새로운 무기나 비밀병기의 존재 유무 및 성능은 가장 중요한 정보수집 대상이 되어 왔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강대국들은 새로운 신무기 개발에 노력을 집중하는 한편 적국의 첨단군사기술을 염탐하거나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첨단군사기술을 바탕으로 완성된 신무기에 의해 전투의 승패는 물론 전쟁의 승패까지 결정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한편의 영화 같은 강대국들의 첨단군사기술 쟁탈전에 대해 소개한다.

출처미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Photos/)

영화 파이어폭스(1982년, 미국), 붉은10월(1990년, 미국), U-571(2000년, 미국/프랑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화 파이어폭스는 구소련이 개발한 최신형전투기를, 영화 붉은 10월은 구소련의 최신형 핵잠수함을, 영화 U-571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니그마(Enigma)로 불린 독일군의 암호장치를 각각 강탈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거나 실제 사건을 각색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미국이나 구소련과 같은 강대국들이 적국의 첨단군사기술을 염탐하거나 확보하기 위해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밀작전을 펼쳤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첨단군사기술 쟁탈과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U-571(2000년, 미국/프랑스)

첨단군사기술 쟁탈과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붉은10월(1990년, 미국)

첨단군사기술 쟁탈과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파이어폭스(1982년, 미국)

때로는 뜻하지 않은 행운에 당황하기도 하고, 때로는 물리적,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도 하면서 적국의 첨단군사기술을 확보한 여러 사례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적국의 첨단군사기술을 확보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밀이기 때문에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몇 몇 사건은 너무나 유명해서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정도다.

■ 벨렌코 MiG-25 망명사건


1976년 9월 6일, 일본 훗카이도 하코다테 공항에 국적과 기종이 확인되지 않은 전투기 한 대가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비상착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기체는 활주로를 185m나 벗어나 겨우 멈추었고 현장에 출동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조종사는 미국으로의 망명을 요구했다. 조사결과 미국으로의 망명을 요구한 조종사는 소련 극동방공군 소속 빅토르 이바노비치 벨렌코 중위(당시 29세)였고 그가 몰고 온 전투기는 구소련의 최신형 전투기 MiG-25였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는 구소련의 MiG-25 전투기에 대한 공포와 환상이 퍼져 있었다.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처음 등장하고 1971년부터 실전배치가 시작되었지만 1976년이 될 때까지 MiG-25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소련의 선전과 1973년 제4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 공군에 의해 확인된 놀라운 성능으로 인해 MiG-25의 성능은 과대평가되었다. 평균 마하 2.5, 최대 마하 3.25의 속도로 약 2만 1천 미터 상공을 가로지르는 시리아 공군의 MiG-25를 이스라엘 공군의 F-4E 전투기가 눈앞에서 놓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1976년 9월 6일, 일본 훗카이도 하코다테 공항에 비상착륙한 MiG-25의 모습. 당시 미국은 일본과 함께 MiG-25를 철저히 조사해 구소련의 최신군사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출처위키미디어(https://en.wikipedia.org/)

망명사건이 터지자 구소련은 즉시 MiG-25 기체와 조종사의 조속한 반환을 일본에 요구했고 이에 불응하면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미국 역시 천우신조의 기회를 허비하지 않기 위해 조사단을 일본에 급파하는 한편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일본 정부의 협조를 구했다. 일본 내각은 격론 끝에 일단 미국의 공동조사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미국은 MiG-25를 완전 분해하는 수준의 조사를 진행했다. 눈앞에서 첨단군사기술이 강탈당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구소련은 최후통첩을 일본에 전달했고 결국 MiG-25는 분해된 상태로 11월 12일 해상으로 반환되었다.


이 사건은 적국의 첨단무기를 온전한 상태로 확보해 아무 제약 없이 완벽하게 조사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성공적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망명사건 후 미국과 서방세계는 MiG-25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방공요격체계에 빈틈이 확인된 일본은 서둘러 조기경보기 및 제공전투기를 도입하는 등 취약점 보완에 나섰다. 반대로 최첨단군사기술이 서방세계에 그대로 노출된 구소련은 망명사건의 후폭풍에서 벗어나는데 상당한 시간과 예산을 소모해야 했다. 단적인 예로 망명사건으로 노출된 암호체계를 바꾸는데 만 최소 20억 루블(한화 약 357억 6천만원) 이상을 지출했으며 장교 선발 및 양성과정에서 실력보다는 당에 대한 충성심을 더 우선해 장교단의 자질이 저하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편 정치적 결단 하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며 적국의 첨단군사기술을 확보한 사례도 있다.

최대 수심 5.2㎞에서 2천 톤의 심해 인양능력을 갖춘 특수 제작된 휴즈 글로마 익스플로러.

출처미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Photos/)

■ 구소련 K-129 핵잠수함 침몰사고


1974년 8월, 미국 CIA의 주도 하에 기상천외한 심해 인양작전이 진행되었다. 1968년 3월, 원인 불명의 사고로 하와이 북서쪽 약 2511㎞ 지점 수심 4.8㎞ 해저에 가라앉은 구소련의 골프II급 핵잠수함 K-129를 인양하는 것. 사실 당대 최고의 군사기밀이 집약된 K-129였기 때문에 구소련 역시 태평양함대를 동원해 수색 및 인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당시 구소련의 기술로는 정확한 침몰 위치를 확인하고 인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그렇게 K-129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물론 미국은 해저에 구축한 잠수함 탐지시스템을 통해 폭발 소리를 탐지해 구소련 태평양함대사령부보다도 먼저 사고 발생과 K-129의 대략적인 침몰 위치까지 알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구소련의 감시를 피해 해저에 침몰한 K-129에서 어떻게 첨단군사기술을 확보하느냐는 기술적인 문제와 비밀작전의 규모로 인한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었다. 침몰한 K-129에는 구소련 해군의 각종 군사기밀은 물론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도 3기나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은 일단 구소련 태평양함대가 철수하고 대중의 관심이 사라진 1968년 7월부터 비밀리에 수색작전을 시작했고 미 해군 핵잠수함 SSN-587 할리벗이 K-129의 정확한 침몰 위치를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구성한 수심 4.8㎞ 해저에 가라앉은 구소련의 골프II급 핵잠수함 K-129의 모습

출처미 국방성 홈페이지(https://www.defense.gov/Photos/)

본격적인 인양준비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퇴임하고 리처드 닉스 대통령 새로 취임한 1969년 1월 이후 시작되었으며 ‘프로젝트 아조리안(Project Azorian)’으로 명명 됐다.


K-129 인양작전의 핵심은 최대 수심 5.2㎞에서 2천 톤의 심해 인양능력을 갖춘, 특수 제작된 ‘휴즈 글로마 익스플로러(Hughes Glomar Explorer)’였다. 인양작전에 대한 기술적 타당성 검토 후 1972년 11월부터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1973년 9월 진수됐다. 크레인 등의 인양 장비 설치에 다시 6개 월 여의 시간이 소요돼 최종적으로 배가 완성된 것은 1974년 5월이었다. 완성된 휴즈 글로마 익스플로러는 배수량 6만 3000톤에 건조비용은 약 8억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1974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승인 후 동년 7월 4일 본격적인 인양작전이 시작됐다.


8월 1일, 마침내 케이블과 강철 지지대를 잠수함의 선체에 연결해 인양 준비를 완료했다. 이후 천천히 선체를 수면으로 끌어 올려 8월 8일, K-129의 선체가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적으로 CIA는 구소련 해군의 K-129 인양작전을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하다 2010년 기밀 해제된 관련 자료의 일부만 공개했을 뿐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미 해군은 인양된 잠수함 내부를 조사하면서 핵미사일 외에도 어뢰 3발과 암호장치 등을 확보하고 구소련 해군의 함대운용전술과 관련된 정보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두건의 사례가 적국의 첨단군사기술을 확보한 경우라면 반대로 자국의 첨단군사기술을 적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4월 9일 발생한 일본 항공자위대 F-35A 추락 사고다.

일본이 F-35A 수색작전에 투입한 심해수색선의 모습. 해상자위대 소속 ARC-482 '무로토’(Muroto),

출처해상자위대 홈페이지(https://www.mod.go.jp/msdf/)

일본이 F-35A 수색작전에 투입한 심해수색선의 모습. 일본해양연구개발기구의 해저광역연구선 ‘가이메이’(KAIMEI),

출처일본해양연구개발기구 홈페이지(www.jamstec.go.jp),

미국이 F-35A 수색작전에 투입한 심해수색선의 모습. 싱가포르 민간업체 ‘울트라 딥 솔루션 소속 특수심해활동지원선 ‘반 고흐’(Van Gogh).

출처울트라 딥 솔루션 홈페이지(http://www.ultradeepsolutions.com/)

■ 항공자위대 F-35 추락사고


지난 4월 9일 저녁, 훈련 중이던 항공자위대 소속 F-35A 스텔스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비상이 걸렸다. 최첨단 항공우주군사기술의 결정체로 불리는 F-35A가 사라진 사고 지점이 일본 아오모리현 미사와시 동쪽 약 135㎞ 해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U-125A 구난수색기, UH-60 블랙호크 헬기, P-3C 오라이언 해상초계기 등 자위대 군용기와 해상보안청 순시선 3척을 사고현장에 급파해 추락 기체와 조종사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미국 역시 최신예 P-8A 포세이돈 해상초계기는 물론 요코스카에 정박해 있던 이지스구축함 USS 스태덤(DDG-63)을 사고현장으로 급파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미국령 괌의 앤더슨 공군 기지에서 B-52 전략 폭격기를, 한국의 오산 기지에서는 U-2 고공정찰기를 사고 현장에 급파했다. 특히 B-52는 사고가 발생한 9일부터 3일간 사고 인근 상공에서 초계비행을 하며 수색 및 중국과 러시아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일련의 군사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사고 발생 후 20여 일 간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고 해저정밀수색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일본과 미국은 새로운 심해수색선박을 사고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먼저 일본은 해상자위대 소속 ARC-482 '무로토’(Muroto)와 일본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의 해저광역연구선 ‘가이메이’(KAIMEI)를 사고현장에 투입해 심해수색을 시작했다.


미국은 싱가포르 민간업체 ‘울트라 딥 솔루션’(Ultra Deep Solutions) 소속 특수심해활동지원선 ‘반 고흐’(Van Gogh)를 임대해 수색작전에 합류시켰다. 최초 언론은 미국이 세계 최고수준의 심해 수색능력을 갖춘 미 해군 구난함 USNS T-ARS-52 살바(Salvor)를 수색작전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미국은 이외에도 3D 수중음파탐지기와 최첨단 수중드론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해저에 가라앉은 머리카락 수준의 F-35 파편까지도 찾아낸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이 해상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F-35A의 수색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첨단 군사기술의 집합체로 불리는 F-35A의 파편 하나라도 중국이나 러시아에 넘어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이번 추락사고 지점은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해당하지만 평균 수심이 1500m에 불과해 중국과 러시아가 마음만 먹는 다면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 최첨단 군사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는 F-35A와 관련된 기밀을 확보할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만약 바다 속에 가라앉은 F-35A의 파편이나 기체를 중국이나 러시아가 먼저 찾을 경우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의 기밀이 노출되는 것은 시간문제는 분석도 있다.

핵잠수함 K-141 쿠르스크의 사고 전의 모습

출처위키미디어(https://en.wikipedia.org/)

■ 첨단군사기술 쟁탈전은 계속 된다


대다수 군사전문가들은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가 추락한 F-35A 기체의 잔해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번에 F-35A가 추락한 해역은 수심 1500m로 45년 전 미국이 구소련 핵잠수함을 인양했을 때보다 깊지 않고 해저 탐사 및 인양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사고기 수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한편 눈에 불을 키고 중국과 러시아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미국이 단순한 구조전력 이상의 이지스구축함이나 폭격기, 고고도정찰기 등을 출동시킨 배경에 중국과 러시아의 정보수집활동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핵잠수함 K-141 쿠르스크의 사고 후의 모습. 사고 전까지만 해도 쿠르스크는 러시아 해군 북해함대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첨단군사기술을 보호를 위해 장병들의 생명을 희생시킨 안타까운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출처위키미디어(https://en.wikipedia.org/)

실제로 자국의 첨단군사기술을 지키기 위해 사고를 당한 장병들을 희생시킨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지난 2000년 8월 러시아 해군이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에서 핵잠수함 K-141 쿠르스크(Kursk)가 훈련 중 침몰했을 당시 서방세계의 구조협력 및 지원을 거부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 러시아 해군의 거듭된 구조실패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NATO)는 다양한 경로로 인도적 구조협력 및 장비지원을 러시아 해군에 제안 했다. 하지만 러시아 해군은 NATO의 구조협력 및 지원을 단호히 거부했다.


당시 북해함대 소속 핵잠수함 쿠르스크는 그 자체로도 이미 러시아 해군의 최고 군사기밀이었고 여기에 18기의 SS-N-16 스탈리온 대함 미사일과 22기의 SS-N-19/P-700 그라닛 순항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승무원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군인가족들의 항의에 결국 러시아 해군은 사고발생 7일 만에 노르웨이 심해 잠수팀의 구조작전 참가를 승인하게 된다. 하지만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러시아 해군의 결정은 “사람의 생명보다 군사기밀을 더 중시한 결과 구조 가능한 생존자들조차 모두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비난 받았다.


실제로 10월 26일 수습된 시신에서 최초 폭발 직후 9번 격실에 23명의 승조원이 생존해 있었다는 메모가 발견돼 구조작전이 늦어진 책임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자국의 첨단군사기술을 보호하려다 구조 가능한 승조원들의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쿠르스크 침몰사건은 냉엄한 국제정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기사 : 계동혁 전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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