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군사전략] 'LOL'과 공세종말점

조회수 2018. 11. 5. 18: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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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릅니다. 지난달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 일명 ‘롤드컵’ 이 올해는 한국에서 열리면서 더더욱 인기는 고조되고 있습니다. 한국 출전팀들이 예전만큼의 강력함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세계 평준화가 이뤄져 경기의 박진감은 더해진다는 측면은 즐거운 요소일 수도 있겠습니다.

LOL은 다섯 명의 플레이어가 한팀이 돼 총 열 명이 세 개의 라인을 두고 적의 포탑을 밀어내며 전진해 상대 본진의 중심부를 파괴하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큰 규칙은 단순하지만, 제한된 시야의 확보나 적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습적 ‘갱킹’, 전략 요소인 ‘드래곤’ 과 ‘바론’의 선점을 위한 전략적 판단들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며 상당히 두터운 전략적 고민을 요구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출처: 라이엇게임즈
우리나라에서 열린 일명 '롤드컵' 모습.

그중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는 군사적 개념 하나를 명백하게 떠올리게 하는 지점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공세종말점’ 입니다. 전투에서 공격자의 공격력이 다해 더는 공격을 지속할 수 없는 시공간적 지점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비단 실제 군사작전, 혹은 현실의 군사작전을 모사한 밀리터리 게임뿐 아니라 LOL과 같은 판타지 세계관 기반의 대전 게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힘의 세력 갈등이 일어나는 현장 전반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개념일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경우를 살펴봅시다. 아군 블루 팀이 정글러의 개입에 힘입어 봇 레인 전투에서 적 원거리딜러 한 명을 잡아냈습니다. 인원수 균형이 순간적으로 5:4가 됐고, 마침 미드 레인의 아군 미니언들이 적 포탑 방어선으로 다수 진군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미드 적 포탑의 체력은 반 정도가 남았습니다. 한 명쯤은 ‘자, 미드 밀자!’ 라는 오더가 나올 법한 시점입니다. 

출처: 필자제공
'LOL’은 적진 한복판의 중심부를 파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이를 위해 1차 포탑, 2차 포탑, 3차 포탑과 억제기라는 전략목표를 순서대로 파괴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공격자의 공격력은 점차 감소하며 공세종말점에 다다르는 전형적인 전략전 형태를 띤다.

적도 이러한 전략적 의도를 알아채고 미드 포탑 방어를 위해 모이지만 일단 인원수에서 한 명이 모자라는 상황입니다. 아군이 몰아치는 파상공세를 방어해내기 쉽지 않습니다. 아군은 신이 나서 밀어붙이며 적 포탑을 파괴합니다. 1차 포탑을 부수고 기세가 살아난 아군은 이 여세를 몰아 2차 포탑으로 진군을 시작합니다. 좀 더 깊숙이 위치한 적 2차 포탑을 밀자는 핑(미니맵 상의 위치를 지정해 아군과 소통하는 행위)이 계속 찍히며 아군이 적 포탑으로 공격을 시작합니다.


어?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1차 포탑을 밀 때의 기세만큼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알게 모르게 적보다 체력이 더 빠지는 듯 싶고, 한참 따라 올라와 주던 아군 미니언들도 어느새 사라집니다. 계속 들어갔다가는 포탑 공격에 아군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주저주저하며 다섯 명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찰나, 아까 죽었던 적의 원거리 딜러가 금세 전장에 합류합니다. 


다시 5대 5, 깊숙이 들어갔던 아군이 갑작스런 상황 반전을 견디지 못하고 최전선부터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채팅창이 복잡해집니다. "아 그걸 왜 들어감?" "망했네". 이 한 번의 반전이 가져온 피해로 결국 아군은 패배하고, 씁쓸한 입맛만 다시며 플레이어는 다시 큐를 돌립니다. 

출처: OGN
LOL에서 미드 1차 포탑은 전략적으로 무척 중요한 위치다. 그러나 무모한 포탑 공략은 빠른 공세종말점을 불러와 자칫 경기를 기울게 만드는 무리수를 이끌기도 한다.

이 상황을 다시 복기해 봅시다. 아군의 우세점은 봇 레인에서의 갱킹으로 얻어낸 이득이 마침 미드 레인의 전선 상황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시작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군의 자원은 인적으로도 넉넉하며, 각종 궁극기와 쿨타임 긴 스킬도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1차 포탑을 성공적으로 밀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포탑의 공격을 대신 맞아줄 아군 미니언이 다수 줄어들었고, 여러 가지 스킬도 적당히 소모된 상태였습니다.


2차 포탑 공격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아군의 공격력은 다소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찰나 우세의 시작이었던 적 사망자가 부활해 들어옴으로써 상황은 오히려 적에게 유리해집니다. 포탑이라는 방어진지를 끼고 사리던 적이 수적 우세를 복원한 뒤 몰아쳐 오는 반격 앞에 아군은 힘없이 무너집니다. 이는 공세종말점에 대한 아군의 판단이 미비했거나 서로 뒤엉켰기 때문입니다.


복기는 물론 실제 게임보다 쉬운 일이지만, 이 상황에서 아군의 공세종말점은 적 1차 포탑을 밀어낸 지점까지였습니다. 적 플레이어의 부활시간 등을 체크하면서 더 이상의 공세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면 다시 다른 레인으로 돌아가 소소한 이득을 취하거나 재정비해 다음 회전에서의 우세를 기대하는 쪽이 합리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의 기세는 간혹 공세종말점에 대한 오판을 낳습니다. 더 밀 수 있다는 판단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했고, 이 한 번의 판단은 꽤나 큰 영향력을 이후 플레이에 남기게 됩니다. 

공세종말점이라는 말의 무게는 ‘공세’에 있습니다. 이 개념에는 기본적으로 공격자에게 주어지는 디스어드밴티지가 포함돼 있습니다. 공격자는 내 영토가 아닌 적의 영토에 들어가야 하고, 보급이나 통신 같은 면에서 적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군 영토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심각해지는 이러한 문제들은 실제 전장에서 공세종말점의 판단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적이 전술적 측면에서 약체라 하더라도 자신의 공격력은 제한적이며, 공격이 성공할수록 점점 더 약해진다는 사실은 쉽게 놓치기 쉬운 요소입니다.

출처: thefifthfield.com
식사 중인 독소전쟁 참전 독일군. 아군 영토와 멀어지면서 독일군은 보급, 통신 등에서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제2차세계대전기 독일 동부전선에서 펼쳐진 독소전쟁은 초반 압도적인 독일의 파상공세로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가 위협받을 정도의 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전략적 측면에서 이 전쟁의 장기화는 독일의 필패를 예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공세종말점이 어딘지 모르지 않았던 독일군은 최대한 빠른 모스크바 진공을 통해 소련의 전투 의지를 꺾고자 하는 기동을 보였지만, 소련 또한 독일의 공세종말점이 길게 유지되지 못한다는 점을 토대로 작전을 입안했습니다. 

출처: www.pinterest.com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의 모습. 소련은 독일의 공세종말점이 길게 유지되지 못한다는 점을 토대로 작전을 입안했다.

불가침조약 등을 통한 소련의 방심을 노린 기습은 초반 성공만으로는 끝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공세종말점을 넘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소련의 대규모 반격은 결국 2차대전의 최종 장을 장식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2014년부터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던 한국 팀들이 모두 8강에서 탈락했습니다. 4강 대진표를 보면서 한국 팬으로서 여러모로 미묘한 감정들이 일어섭니다. 


많은 분석가들이 한국식의 이른바 운영형 전략들이 퇴조를 이루는 빈자리를 유럽-중국식의 한 방에 들이치는 전략이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한국식의 전략도 어느새 공세종말점에 다다른 것일까요. 하나의 흐름이 영원히 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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