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개"머리판일까?
개머리판 이야기
모든 물건이 그렇듯, 총은 각 부위의 명칭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가늠쇠, 가늠자, 방아쇠 등등 들으면 ‘아 총의 부품을 말 하는구나’ 하는 명칭이 많이 존재한다. 그런데 유독 매우 독특한 네이밍 센스를 가진 명칭이 있다. 바로 뺨과 어깨를 총에 밀착 하는 ‘개머리판’이다. 다른 명칭들은 수긍이 가는데 유독 이 부분에는 ‘개’자가 들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개’자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아무리 평범한 말이라도 ‘개’자가 들어가면 일순간 욕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면 개머리판은 어떻게 시작된 말일까? 그리고 그 개머리판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오늘 그것을 알아보자.
개머리판의 어원
먼저 개머리판의 어원을 좀 알아봐야겠다. 사전적 의미로서 개머리판은 다음과 같다.
“개머리판(Buttstock)은 소총을 비롯한 소화기류에서 총신을 비롯한 여타 격발 구조물들이 부착되는 몸통이다. 사격 시 개머리판은 사수의 어깨에 위치하여 약실 폭발의 반동을 받아내는 역할을 한다.”
한 마디로 손잡이 뒤에 어깨와 뺨이 닿는 부분을 일컫는다. 개머리판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예전 화승총 시절부터 총기의 견착 부위를 아마도 생긴 모양대로 총개머리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실을 만드는 도구인 물레 가운데 받침나무 부분을 '괴머리'라 하며, 여기서 '괴'자는 턱을 괴다'의 '괴'로 '받치다, 지지하다'라는 뜻이므로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이것은 한국군 편제가 처음 생기던 시절인 창군초기, 장창국 장군이 한글학회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는 설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것은 ‘플린트 락 머스켓’이라 불리는 부싯돌 식 화승총의 격발기구 부분을 ‘Dog Head’로 불렀다는 점이다. 마치 개가 부싯돌을 물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붙인 이름인데, 그 개머리를 받치는 부분이라 개머리판으로 명명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개머리판이 정식 명칭인 것은 확실하다.
개머리판의 역사
화총은 13세기 말부터 쓰였는데, 극 초기의 화승총인 원나라의 동화창은 청동파이프 끝에 대나무를 꽂은 형태였다. 개머리판이라 할 수 없고 그저 손잡이였다. 100년 전쟁 끝 무렵에 등장한 유럽의 화승총은 개머리판 비슷한 것이 달려 있었으나 겨드랑이에 끼워서 사용하거나 어깨위에 올려놓는 방식이었다. 본격적으로 개머리판이 있는 화승총은 15세기부터 나왔다. 유럽에서 쓰인 ‘깔리버’나 ‘아퀘부스’에는 정확한 형태의 개머리판이 있어서 어깨에 견착하고 쓰기에 적합했다. 독특하게도 ‘빠뜨로넬’은 가슴 중앙에 고정시키고 쏘는 형태의 개머리판을 가지고 있다. 같은 화승총이지만 일본의 조총 등은 어깨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닌 뺨에 고정시키는 형태였기 때문에, 개머리판이라기보다는 손잡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16세기부터 ‘플린트 락 머스켓’이 나오자 개머리판의 형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형태로 변모하게 된다. 이 형태는 18세기의 ‘뇌관식 소총’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개머리판은 공격무기로도 쓰인다. 16세기부터 18세기의 총은 1분에 약 2~3발의 장전이 가능했다. 따라서 일제 사격 이후엔 총을 창이나 몽둥이처럼 냉병기로 사용해야했다. 총구 앞에는 소켓식 총검을 꽂아 썼고, 개머리판은 육중하게 만들어 둔기로 쓸 수 있게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총검술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개머리판을 이용한 총검술은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소총은 더욱 발전을 하여 탄피식 소총이 19세기에 등장했고, 이른바 볼트액션식의 연발총이 나왔지만, 소총의 전체적인 형태는 변함이 없었다. 총신과 몸체, 그리고 손잡이에 연결된 개머리판의 형태는 20세기 최대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지게 된다.
개머리판의 진화
그런데 이때까지의 개머리판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손잡이에서 개머리판에 이르는 전형적인 소총의 형태가 반동제어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즉, 총 몸 에서부터 이어지는 꺽 인 손잡이 부분에서 반동의 영향으로 강한 토크가 일어나며 총신이 위로 심하게 들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자동사격의 빈도가 높아질수록 이러한 형태는 분명 약점으로 다가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결론은 총신과 개머리판을 일직선으로 배치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의 실용화는 독일에서 먼저 있었다. 2차 대전에서 독일군은 공수부대 대원들을 위한 FG-42소총을 개발하면서, 총신과 개머리판이 일직선이 되고 따로 권총손잡이를 부착한 설계를 적용했다. 반자동의 FG-42는 반동 컨트롤 면에서 혁신적이었고, 독일은 뒤이어 STG-44 자동소총에서도 이 컨셉을 적용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자동사격 시 매우 탁월했다. 전쟁이 끝나고 어느 정도 전쟁의 상흔을 치유한 참전국들은 앞 다투어 신형소총을 개발하면서 개머리판과 총신의 일직선 개념을 적용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소총들, 예를 들어 AK-47과 M-16, FN FAL과 G3등의 소총 등은 모두 이런 소총들이다.
다양한 개머리판
제2차 대전 때부터 개머리판은 여러 형태로 변화한다. 특히 총의 부피를 크게 차지하는 개머리판을 어떻게 해서든 줄여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나치 독일군의 상징과도 같은 MP-38/40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언더/어바브 폴딩식 개머리판이었다. 필요할 때 아래쪽, 또는 위쪽으로 펴서 쓰는 방식이었는데 총의 전체적 크기를 줄이는데 매우 유리했다. 소련군은 PPsh-41을 PPs-43으로 개량하면서 철저히 MP-38/40의 방식을 카피했다. 심지어 AK-47의 단축형 이었던 AK-47S에도 이 방식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자칫 탄창 삽입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다.
사이드 폴딩식 개머리판의 사용 역시 시작은 2차 대전이었다. 미군의 공수부대용 M1 카빈에는 사이드 폴딩식 개머리판이 장착되어 있었다. 낙하 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지면에 구르는 공수부대원의 환경을 고려해보면 총의 부피를 줄이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평가가 좋아서 그 후에 여러 소총의 개머리판에 적극 반영되었다. 언더 폴딩식을 쓰던 AK시리즈도 점차 사이드 폴딩식으로 바뀌었고, 스웨덴제 칼 구스타브SMG, 미국의 AR-18, 벨기에의 FN Fnc, 스위스의 SSG 시리즈, 독일의 G36 시리즈, 우리나라의 K-2, 최근의 벨기에제 SCAR 시리즈까지 사이드 폴딩 방식의 개머리판이 쓰이고 있다.
신축식 개머리판은 가장 간단하게 총의 부피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SMG에 많이 적용되었다. 독일의 MP-38/40에 자극받았던 미국은 M3 SMG를 개발하면서 신축식 개머리판을 사용했고, 이스라엘의 UZI, 독일의 MP5와 HK 시리즈, 우리나라의 K-1소총 등이 이 방식을 쓰고 있다. 심지어 분대지원화기인 M249에도 신축식 개머리판이 쓰인다. 특히 미군은 M-16의 단축형에 신축식 개머리판을 적용했다. 월남전에서 대 활약한 M-16은 비교적 크기가 크지 않은 총이었지만, 아무래도 특수부대가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크기였다. 따라서 미군은 M-16에 신축식 개머리판이 있는 모델을 원했고, 제작사는 특수부대용 M-16인 CAR-15, XM177, M723, M733등을 내놓는다. 이 단축형 시리즈들은 후에 사실상 미군의 제식총기인 M4로 거의 통일된다. 현재 우리군의 K-2 개량형인 K-2C에도 M4와 비슷한 방식의 신축식 개머리판이 적용되고 있다.
이상으로 개머리판에 대해 알아보았다. 비록 어감이 좀 좋지는 않지만, 개머리판은 정확하고 안정된 사격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품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개머리판은 앞으로도 총이란 물건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떠한 형태로든 총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깨 받침대’로 바꿔 불러도 괜찮을 듯하다. 개머리판이 입에 짝짝 붙기는 하지만....
글, 사진 : 이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