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에게 보내는 경고로 활용한 상징물의 크기

조회수 2017. 8. 23. 10: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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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호신을 섬기는 상징


고대도시 가장 높은 지역은

국방의 핵심이자 신성한 장소로 여겨

그리스 크로톤·축구단 크로토네 FC 등

 ‘세 발 달린 제단’ 상징 사용

거대한 건축물, 집권자 우월성 과시 동시에

이민족 침략 예방 의미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복원도. 외곽을 둘러싼 성곽은 이곳이 곧 군사요새였음을 방증한다.

고대 상징에서 메두사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문양이 있다. 오늘날 유럽 국가 대부분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있지만 고대에는 나라마다 각자의 수호신을 섬겼다. 그러니 이와 관련된 문양이 하나쯤 있을 법하다. 당시엔 유행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사정이 다르다.

고대에 가장 높은 지역은 정치·종교·경제 등 여러 활동의 중심지이자 국방의 핵심으로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이곳에서 수호신을 섬기는 행위만큼 고귀하고 신성한 것은 없었다. 그 때문에 나라의 대소사도 여기서 결정됐다. 그렇다면 분명 이와 관련된 상징이 존재해야 했다. 이를테면, 신에게 봉헌된 신전이나 신을 섬기는 제기(祭器) 같은 것 말이다.

고대 크로톤의 상징

성스러운 제단

크로토네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방의 카탄차로 주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지만 그 역사가 유구하다. 크로토네는 기원전 710년경 그리스의 아카이아 군대에 점령당한 뒤 그리스식으로 건설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부유한 도시가 됐다. 특히 레슬링 종목에서 밀로(Milo)와 같은 유명한 올림픽 우승자를 배출하며 스포츠 강국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기원전 3~4세기에는 시라쿠사나 에피루스 등의 침략을 받았고 기원전 277년에는 로마의 공격을 받았다. 중세에는 나폴리 왕국에 속했다가 1860년 이탈리아에 병합됐다. 이때 도시의 이름도 크로톤(Kroton)에서 크로토네(Crotone)로 변경됐다. 지금도 인구 6만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남부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도시 중 하나다.

크로토네에는 그리스의 흔적이 있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끼고 자리 잡은 높은 언덕에 요새 겸 아크로폴리스가 세워졌고 그곳에 수호신 헤라에게 봉헌하는 신전이 건설됐다. 크로토네 시민들은 이곳을 지키기 위해 무려 19㎞에 달하는 성벽을 건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의 ‘신탁의 도시’ 델피에 버금가는 신성한 곳이었기 때문에 독특하게도 당시 신에게 올리는 제사에 사용했던 ‘세 발 달린 제단’을 상징으로 사용했다.

이 문양은 현대 도시의 문장과 2017년 현재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 A 크로토네 FC의 엠블럼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스 크로톤과 이탈리아 크로토네, 축구단 크로토네 FC의 상징은 디테일에선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고대부터 신성시했던 제단(Tripod)을 사용하고 있다.

현대 크로토네의 문장.
현대 크로토네 FC 엠블럼

군사 요새 아크로폴리스

신전은 어떨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 설계에도 각별한 공을 들였다. 대부분의 도시국가에는 중앙에 우뚝 솟은 언덕 폴리스(Polis)가 있고, 폴리스에서 가장 높은(Akro) 곳을 아크로폴리스(Akropolis)라 불렀다. 이곳은 도시 전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신들의 거처인 천상과 가장 가까운 신성한 곳이다. 그 아래로 정치집회 장소인 광장 아고라(Agora)와 경제활동의 중심인 시장이 열렸다. 그리고 주변을 성벽을 쌓아 보호하고, 여기로 이르는 접근로를 제한하거나 은밀한 통로를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고대의 중요 건축은 현대 못지않은 스케일을 자랑한다.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집권자의 권위와 우월성을 과시하고 그 신성함의 상징임과 동시에 이민족의 침략을 예방하는 목적도 있었다. 이런 전통은 인류가 무리를 이루고 다른 무리를 침략하면서부터 생긴 버릇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두 명이 세울 수 없는 거대 고인돌의 경우 모든 부족원들이 동원돼 기둥을 굴려 옮겨 양쪽에 수직으로 세운 다음, 그 옆에 기둥보다 높은 토성을 쌓고 두 기둥을 덮을 수 있는 평평한 돌을 끌고 와 기둥 위에 올려 완성했다. 한마디로 고인돌의 규모가 곧 동원할 수 있는 부족원의 숫자를 의미했기 때문에 이 거대함이 곧 부족의 힘을 대변했다. 이민족들은 굳이 전쟁을 하지 않아도 고인돌의 크기만으로도 싸워 이길 상대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앞서 소개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수호신 아테나에게 봉헌하는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됐고, 그 옆에는 바다 멀리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신상 ‘아테나 프로마코스’가 세워졌다. 상징의 거대화는 호시탐탐 침략을 획책하는 적들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고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로도스의 거대한 헬리오스 신상 콜로서스(Colossus),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같은 부류다.

고대 도시는 설계 때 무엇보다도 전시를 대비해 방어 시 유·불리를 철저히 따졌다. 고대 도시들은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다. 특히 가장 높은 장소는 멀리서부터 적의 동향을 감시할 수 있고, 전투지휘에 용이하며, 방어에 가장 유리한 최후 거점으로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동시에 수호신이 사는 천상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성소(聖所)이기도 했다. 그러면 요새와 함께했던 신전 문양도 있었을까?

<윤동일 한국열린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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