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무서워하는 죽음의 백조 "B-1B 랜서"

조회수 2017. 3. 22. 21: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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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가 우리 공군과 한반도 상공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하였다. 죽음의 백조라 불리우는 B-1B 전략폭격기에 대해 알아보자.

출처: 美DMA

애초에 미 공군은 B-52의 후계기로 XB-70 발키리 폭격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적국(소련)의 영토까지 고도 2만5,000미터의 초고공을 마하3이라는 초고속으로 날아가 22톤의 폭탄을 퍼붓는다는, 외계인을 납치해 고문하지 않는 이상 얻기 힘든 기술상의 스펙을 요구한 이 폭격기는 결국 그 기술적, 비용적 한계로 인해 취소되었다. 미 공군은 발상을 전환해서 초저공을 마하로 날아가 신속히 폭격을 하고 돌아오는 새로운 개념의 폭격기를 고안했고, 이것이 바로 B-1 폭격기였다. 

B-52의 후계기로 만들어진 XB-70 발키리. 하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시제품 두 대가 만들어진 후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

B-1은 지상 60m 초저공을 마하로 날아가기 위해 가변익 날개를 채택하였고, 세계 최초의 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 하였다. 또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스텔스 설계가 적용되어 저공에서 여간해서는 적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다. 무장은 실내외에 약 30톤을 장착할 수 있어서 기존 B-52의 두 배에 가까웠다. 실로 가공할만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가격이었다. 한 대에 무려 1억 달러(1970년대 후반 기준)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B-1 계획을 취소하려 했으나, 미 공군이 결사적으로 반대해 겨우 시제품 3대만 만들어지고 끝나나 싶었다.

출처: 美DMA

하지만 80년대가 되자 공화당정권이 들어섰고, 레이건 대통령은 그 어떤 역대 정권보다도 강한 미국의 힘을 표방하며 군사력으로 소련을 압도하려 했다. 특히 당시 가열 차게 추진하던 스텔스 폭격기는 충분히 소련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나있는 상태였으나, 그 개발이 완료되는 시점이 1990년대 후반이라는 점은 레이건행정부의 깊은 고민 중 하나였다. 다시 말해 B-52와 새로운 스텔스 폭격기 사이의 간극을 메울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B-1 폭격기가 부활하게 되었다. 기존의 시제품을 개량한 B-1B 100대의 생산이 통과되었고, ‘죽음의 백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적에게 공포를 안겨주기 충분한 성능으로 돌아왔다.

폭격기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우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답게 전장에서의 공포감은 절대적이다.
출처: 美DMA

1991년 부시 대통령의 전술핵 포기 선언으로 B-1B는 현재 주로 재래식 폭격임무에 임무의 중점을 두고 있다. B-1B는 통상형 폭탄 이외에 클러스터폭탄, JDAM, 벙커버스터 등 정밀유도폭격 능력도 갖추고 있다. B-1B 최초의 임무는 이라크를 공습하는 사막의 여우 작전이었다. 후에는 코소보 항공전과 아프간 전쟁에도 투입되어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이 전략폭격기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순환 배치되어 언제든 유사시 3시간 내에 한반도에 출격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위기상황마다 한·미 동맹군은 강력하고도 결연한 의지를 바탕으로 북한의 오판을 사전에 차단 할 것이다.


글 : 이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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