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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화

기네스북에 오른 가상 밴드

고릴라즈가 6년 만의 정규 앨범 Humanz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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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팝을 대표하는 로커 데이먼 알반은 요즘 창작욕이 넘치는 중입니다. 2014년에 대망의 첫 솔로 앨범을 내더니, 2015년엔 12년 만의 블러 앨범을 발표했고, 곧 다가오는 4월 28일엔 6년 만의 고릴라즈 정규 앨범을 공개합니다. 수록곡 개수도 무려 20곡이나 됩니다. 2016년엔 뮤지컬 <wonder.land>의 음악도 담당했습니다. 블러가 카니예 웨스트만큼 핫했던 브릿팝 전성기를 겪은 1990년대 음악 팬들에겐 지금의 상황은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앨범 발표 기사 댓글에 ‘감격’, ‘그리웠다’ 같은 말들이 눈에 띕니다.

고릴라즈는 데이먼 알반을 중심으로 결성된 가상 밴드입니다. 음악은 실제 사람들이 만드는데 앨범 커버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상의 캐릭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제이미 휴렛이라는 만화가가 그린 머독, 누들, 러셀, 2D의 4인조 밴드입니다.

고릴라즈의 가상 캐릭터들. 왼쪽부터 러셀, 누들, 2D, 머독.

그룹의 1집은 7백만 장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올렸는데, ‘가장 성공한 가상 밴드’라는 진기록을 만들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막강한 비평적 권위를 가진 머큐리 프라이즈에서 후보에 올렸는데도 거절하는 쿨한 면모를 갖추기도 했죠. 

저는 고릴라즈가 데이먼 알반이 블러에서 들려주지 못한 장르를 풀어내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블러는 록 밴드였고, 따라서 비교적 전통적인 편곡과 사운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록을 전통적인 사운드로 분류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습니다!) 

하지만 음악 취향이란 게 어디 하나로 한정되나요. 그동안 좋아했던 힙합도 해보고, 일렉트로닉도 해보고, 거기에 밴드 연주도 더해보고 싶었겠죠. 실제로 고릴라즈의 음악은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비중이 큽니다. 비트와 신시사이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식 요리사가 중식 요리사로 변신했다 할까요. 이런 번외 프로젝트를 흔히 ‘얼터 에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곧 선보일 <Humanz>는 현재 네 곡이 공개된 상태입니다. 이전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변함없이 높은 퀄리티의 감각을 뽐내고 있습니다. 듣는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습니다만 저는 전보다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느꼈습니다. 6년 만의 앨범이라 걱정도 됐는데 공백기가 단순한 쉼의 시간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고릴라즈 하면 화려한 피처링 명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그 진용은 매우 화려합니다. 정말 많은 이름들이 있지만, 일단 공개된 네 곡 안에서 꼽는다면,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Saturnz barz’에서 보컬을 맡은 팝칸입니다. 재작년에 제이미 XX의 ‘I know there’s gonna be (good times)’에 참여해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자메이칸 아티스트입니다. 고릴라즈의 일렉트로닉 힙합에 특유의 레게 필을 섞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Saturnz barz’는 뮤직비디오도 공개됐습니다. 고릴라즈 멤버들이 유령의 집을 찾아가 겪는 해프닝을 그린 판타지 호러 애니메이션입니다. 360도 VR 버전도 공개됐으니 둘 모두 보시길 권합니다. 고릴라즈는 만화가 제이미 휴렛을 정식 멤버로 두고 있을 정도로 가상 캐릭터를 중시하는 만큼 음악 못지않게 뮤비도 꼭 챙겨봐야 합니다. 

래퍼 빈스 스테이플스가 참여한 ‘Ascension’도 주목할 만합니다. 재밌게도 드럼 앤 베이스를 시도했습니다. 경쾌하고 예쁜 소리를 사용하는 초반은 리퀴드 스타일처럼 들리다가도 공격적이고 어두운 노이즈를 사용하는 후반으로 가면 정글이나 IDM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릴라즈는 애초에 장르 파괴 프로젝트로 시작한 만큼 예상 가능한 전형을 탈피해 섞고 싶은대로 다 섞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컬 샘플로 툭툭 끊어져 등장하던 “Higher” 추임새가 마지막에 소울풀한 본체를 드러내는 반전도 재밌습니다. 

제니 베스가 참여한 ‘We got the power’도 흥미롭습니다. 제니는 포스트 펑크 밴드 새비지스의 보컬이죠. 그녀 뿐만 아니라 블러의 그래이엄 콕슨,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도 참여했습니다. 로커들이 모여서 그런지 공개된 네 곡 중에서 가장 록적입니다. 록이지만 신시사이저를 중심에 둔 컨셉도 독특합니다. 평범한 록은 고릴라즈에서는 안 하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그룹 새비지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제니 베스다.

그밖에도 곧 나올 새 앨범엔 드 라 소울, 앤서니 해밀턴, 푸샤 티, 그레이스 존스 등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올스타급 아티스트와의 콜라보가 수록될 예정입니다. <Humanz>가 올해 가장 기다려지는 앨범 중 하나인 이유입니다. 협업의 장점은 A와 B가 만나 C라는 새로움을 만들어낸다는 데에 있죠. 장르 파괴 프로젝트 고릴라즈가 또 어떤 새로움을 만들어냈을지 기대됩니다. 일단은 선공개된 네 곡으로 궁금증을 달래고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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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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