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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영혼을 담을 수 있을까..?

조회수 2021. 3. 16. 12: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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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담은 자화상, 램브란트

여러분은 초상화가

영혼까지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작품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을지도 모릅니다


두 개의 원이 그려진 벽 앞에서

삶의 이치를 깨달은 듯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이 작품


17세기 네덜란드 거장

렘브란트의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입니다



렘브란트는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노년 시절까지

그가 남긴 자화상은 무려 75점에 달하죠


그는 왜 이렇게까지 

자화상에 집착했던 걸까요?


곳곳에 칠이 벗겨진 

벽과 금이 간 바닥


방을 장식하는 가구들조차 

별로 보이지 않는 허름한 공간에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꼿꼿한 자세로 이젤을 

노려보고 있는 그는

스물두 살의 렘브란트입니다


팔레트와 붓 다발을 쥔 손은

그의 결연함을 드러내고 있죠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나

파블로 피카소의 ‘피카소’처럼

보통은 성으로 불리기 마련이지만


렘브란트는 특이하게도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서명을 했습니다


게다가 렘브란트의 원래 철자는 

Rembrant인데요


서명을 보면 ‘d’가 추가되어 있죠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시각적으로 차별화하려고

묵음인 ‘d’를 넣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부심 강했던 성격 때문인지

그는 종종 마이웨이 경향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당시에는 위대한 화가가 되려면
‘르네상스의 산실’ 이탈리아로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죠

이탈리아에 가지 않고도
자기는 얼마든지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이
다소 관조적인 자세로 
우리를 응시하는 것과 달리
청년 시절의 자화상을 보면
 패기와 에너지가 넘칩니다


헝클어진 머리

듬성듬성 난 수염

반쯤 벌어진 입술은

렘브란트의 성격을 짐작케 하죠


렘브란트는 한 인간의 내면이

찰나의 표정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했는데요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반복해 그리며

인간의 표정이 감정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그에게 ‘빛의 화가’라는 명성을 안겨준

독특한 명암기법도 이때 확립되었는데요


45도 위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

콧날을 기준으로 좌우가 

암대비를 이루고 그림자가 진 쪽 

눈 밑에는 역삼각형이 생깁니다




이는 얼굴에 입체감을 주어 
인물을 돋보이게 하죠

때문에 이 역삼각형은 
이후의 렘브란트 작품에서
심지어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에서도 
반복해서 발견되죠

렘브란트는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인간의 표정, 나아가 내면을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빛과 표정을 다루는 데 있어
탁월한 기량을 뽐냈던 렘브란트

덕분에 20대 초반부터 그는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식민지
 개척 사업에 뛰어들며
경제적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는데요

암스테르담에는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이 넘쳐났고

렘브란트는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업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죠

그의 앞날은 오직 장밋빛만 
펼쳐져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마이웨이 경향은

그를 훌륭한 화가로 만든 동시에

 몰락시키는 힘이 되었는데요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데 있어

 너무나 완고했기 때문에


렘브란트가 주문자를 

무시한다는 소문이 났던 겁니다


렘브란트 최고의 역작으로 

알려진 이 그림, 〈야경〉은


역설적이게도 초상화가로서의 

렘브란트 명성에 결정타를 입힌 작품이 됩니다



사람들의 표정은 근엄하기보다 

생동감이 넘치고 제각각 의지를 가진 듯

 다소 부산스럽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팔에 가려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죠


이것은 자신들을 품격있는 

모습으로 그려주길 바랐던

주문자의 의도와 정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이후 렘브란트에게

 들어오는 초상화 주문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완전히 끊어지고 맙니다


아름다웠던 시절은 

저 멀리 떠나가버린 뒤.


렘브란트에겐 궁핍하고 

고독한 세월만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죠


살아 숨쉬는 것 같은 표정을

 포착함으로써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려는 작업을 계속해나갔습니다


그릴 모델이 자기 

자신밖에 남지 않았을 때


이제 그는 자신의 처진 살과 주름을

 여과없이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그림,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은

빛과 어둠의 뚜렷한 

경계를 오갔던 렘브란트가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본 기록입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옷과 꼿꼿한 자세

팔레트와 붓 다발을 움켜쥔 손은

스물 둘의 렘브란트가 그랬던 것처럼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죠


완벽한 원형을 이루고 있는 배경 속 원은

렘브란트가 화가로서 얼마나 

뛰어난 역량을 지녔는지를 보여줍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자기 길을 

고집했던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점은 이 표정인데요


자신감이 가득했던 

젊은 시절의 렘브란트와 달리


노년의 그는 좀 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표정이 있는 것처럼요


좀 지친 것도 같고, 

어떤 무상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섬세하게 그려진 얼굴과 달리

그의 몸은 어둠에 먹혀 흐릿해 보이는데요


거친 붓터치로 쓱쓱 그려졌을 뿐 

정교함이나 세밀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죠


오직 얼굴만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무언가를 자꾸 더하려 했던 시절을 지나

하나하나 덜어내며 

삶의 본질에 접근해나갔고

마침내 얼굴 하나만이 남았죠


인생이란 결국

얼굴로 왔다가 얼굴로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듯

렘브란트의 얼굴은 긴장을 풀고 평안해 보입니다


자신을 할퀴고 지나간 인생을 탓하지도

화려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지도 않으며


담담히 남은 삶을 견뎌냈던 렘브란트

그의 내밀한 영혼이 우리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이 그림은 이토록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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