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화에 관한 불편한 진실

조회수 2021. 3. 8. 11: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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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벌거벗어야만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

198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바로 앞


한 광고판에 붙은 강렬한 포스터

시선을 끄는 노란 배경과 이미지


커다란 볼드체로 쓰인

시니컬한 질문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는가?’


이 포스터는 미술관 앞,

광고판에서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뉴욕 시내 곳곳을 뒤덮습니다



버스 광고판부터 지하철

소호 거리 거리마다 

포스터가 붙어있었죠


이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파격적인 비주얼과 더불어

포스터가 던지는 질문의 

날카로움 때문이었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포스터 왼쪽의 동물,

아니 ‘사람’이었습니다


매끈한 나체의 여성이 

고릴라 가면을 쓴 모습

이는 19세기 프랑스 화단을 이끈 거장,

앵그르의 작품 <그랑 오달리스크>를 

차용한 이미지인데요


그림 속 여인은 매혹적인 

뒷모습을 보이며

아무 것도 모른다는듯 

요염한 시선을 던지고 있죠


하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입니다


해부학적으로 바라봤을 때

비 정상적으로 몸이 휘어있기 때문인데요



매끈하게 표현한 등은 

너무 부드러워 뼈가 없거나 

길게 늘어난 것 처럼 보입니다


여인이 이렇게 그려진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작품 속 여인의 이름은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오달리스크’입니다


오달리스크는 당시 오스만 황제의 

시중을 드는 ‘여성 노예’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요


오직 왕의 시중을 드는 

오달리스크라는 존재는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더구나 당시 유럽은 이성과 

합리성을 중요시했기에

여성의 적나라한 누드화는 

터부시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달리스크는 

동방의 이슬람 문화였기에

상상화로 치부되며 암묵적으로 

비판을 피해갈 수 있었죠



덕분에 오달리스크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일종의 환상이 되며 매력적인 

소재로 여겨졌습니다


때문에 오달리스크는 가장 

관능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죠


비례가 맞지 않거나 해부학적인 오류가 

생기는 것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프랑스의 색채 화가로 

유명한 앙리 마티스 역시

이 오달리스크를 그리기도 했을만큼

오달리스크 판타지는 강력했고

오래도록 소비되었는데요


하지만 이 포스터에는 

우리가 알던 오달리스크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험상궂은 고릴라 얼굴을 한 여성이 있습니다


남성의 판타지를 채워주려는

어떠한 뉘앙스도 느껴지지 않죠


왼편에는 쓰여진 문구는

이런 분위기를 더욱 확실하게 만듭니다

시선을 아래로 돌려 작은 

글씨로 쓰여진 문구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미술관의 현대미술 부문에

포함된 여성 미술가는 5% 미만이지만,

누드화의 85%는 여성을 그린 것이다'


실제로 미술관에서 소장하는 

대다수 작품의 예술가는 남성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드화 속 대다수는 여성이었죠



이는 많은 이들이 불편해 한 진실인 동시에
통계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었습니다

누드로 그려져 있는 여성은
작품이 되어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지만
작품 활동을 하는 여성 예술가들은
 미술관에 거의 들어갈 수 없었죠

강렬한 이미지와 명확한 메시지
객관적 통계로 질문을 던지는
게릴라 걸스의 작품이었습니다

미니 스커트에 망사스타킹

굽 높은 하이힐과 고릴라 마스크를

쓴 예술가들 게릴라 걸스는

뉴욕에서 결성되어 지금까지 30년 넘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는

‘예술 운동가 그룹'입니다


이름에 사용된 게릴라 Guerrilla는

‘소규모 기습 공격 전투'를 뜻하는데요


게릴라 걸스는 그들의 이름처럼

활동 초창기에 미술계를 

기습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이들의 첫 등장은 1985년이었죠


<이 갤러리들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10% 이하 전시하거나, 전혀 하지 않는다>


이 포스터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 모마의

한 큐레이터의 발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모마에서는

<최근 회화와 조각에 대한 국제적 연구> 

전시를 기획 중이었는데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큐레이터 맥샤인이 

이런 발언을 내뱉습니다



이는 여성 미술가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했던 것이었죠


‘국제적 연구’라고 명명된 전시에

여성 미술가는 오직 13명뿐

유색 인종 미술가는 이보다 더 적었고

유색 인종 미술가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게릴라 걸스는 이 구조적 부조리함에 분노해

이 포스터를 제작한 것이죠


이 작업을 진행할 당시

게릴라 걸스의 멤버는 

일곱명 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적은 숫자의 팀원들은 밤새

뉴욕의 소호 거리 곳곳에 

이 포스터들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거리를 수놓은 포스터는

뉴욕 시민들에게 미술계의 

부조리함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죠


게릴라 걸스의 시작은 이렇게 

비밀스럽고 기습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 ‘게릴라'와 

꼭 맞는 모습이었죠


이후 이들은 ‘익명성’을 내세워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36년간 게릴라 걸스를 

거쳐갔다고 추정되는 예술가는

약 55명인데요


그들이 정확히 몇 명인지

그리고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정확히 아는 건

오직 게릴라 걸스의 멤버들 뿐이죠


게릴라 걸스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고릴라 가면은

결성 초기 멤버 중 한명이

게릴라를 고릴라로 잘못 적은 

일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탄생하게 된 가면은

사람들이 게릴라 걸스를 

개인으로 바라보거나 그들의 정체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막고

오직 그들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죠


미술계 안에 존재하는 차별과 

부조리함을 다루던 그들은

점차 세력을 키우며 여러 주제의 

운동으로 범위를 넓혀갑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산업 등 다양했죠


더 넓은 주제를 다루게 된 만큼

대중들의 관심은 더 방대해졌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의 광고판

건물의 벽면 등 공공장소에서 

전시하던 포스터들은 곧 미술관을 비롯한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죠


예술계, 혹은 그 너머의 

부조리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불경해지겠다'고 

외친 게릴라 걸스


그들의 외침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선사할까요

이 책,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은

게릴라 걸스를 비롯한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지난 5세기 동안 활동한 여성 예술가

400인의 사례가 담겨 있는데요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기존의 

여성 예술가를 다룬 책들과 달리


페미니즘 예술이나 여성적 

주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오랜 차별의 역사 속 

소외되었던 여성 예술가들의

기법과 주제, 형태에 집중한 것이 포인트죠



이전까지 자세히 연구된 적이 

없었던 분야이기에 책을 넘어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도 받고 있는데요


이 책의 저자 리베카 모릴은 

서문에 이런 내용을 남겼어요



저자의 이런 집필 의도는

책 커버 디자인에서도 볼 수 있어요

Great Women Artists에서

Women을 지우는 듯한 

디자인으로 만든 것이죠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예술가 400인의 작품을 연구한 책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누군가의 여인, 작품 속 모델이 아

작가로 활동했던 더 많은 

예술가를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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