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복 주머니가 남자들보다 작은 이유

조회수 2020. 5. 18. 08: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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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가방부터 현대의 청바지와 스키니 진에 이르기까지, 패션의 역사 속 변해 온 주머니의 역사
여러분은 바지 주머니에 어떤 걸 넣고 다니시나요?

지갑? 핸드폰? 차 키?
다양한 물건들이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여러분, 여성복의 주머니가 남성복의 주머니보다 작다는 거 알고 계셨어요?

2018년 한 미국 매체가 미국 내 청바지의 주머니 사이즈를 측정한 적이 있는데요.

여성용 청바지의 주머니 크기는 남성용에 비해 평균 48% 정도가 작았다고 해요.
물론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크긴 하지만, 그게 48%나 되진 않잖아요.

단순히 체형 크기에 비례해 작은 게 아닌 거죠.

사실 여성복에 주머니가 들어간 것 자체가 생각보다 최근의 일입니다.
그림을 통해 보는 그 시대의 진짜 모습, 〈붓스타그램〉
오늘의 주제는 '주머니'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주머니를 사용했을까요?

‘주머니'를 뜻하는 영어 포켓(pocket)은 ‘가방'을 뜻하는 옛 프랑스어 포크(poque)에서 왔는데요.

이를 미루어 생각해볼 때, 최초의 주머니는 일종의 가방이었을 거예요.
때문에 학자들은 주머니의 기원이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열매를 채취하면서 살았는데요.

수렵이나 채집에 필요한 도구들을 담은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거나 허리춤에 매달고 다녔죠.
이것이 최초의 주머니였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발견되는 주머니의 형태이기도 합니다.
고대 아시리아의 핸드백에서부터,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활주머니, 중세 조선의 귀주머니, 유럽의 파우치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손으로 들었고, 때로는 허리에 차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주머니는 옷과는 분리된 별개의 물건이었습니다.
옷에 주머니를 꿰매는 아이디어가 등장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중세 아시아의 유목민들처럼 비슷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사람들도 있지만요,
현대 패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변화는 17세기 유럽에서 있었습니다.
16세기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선, 남녀할 것 없이 호화롭게 장식한 주머니가 유행하고 있었어요.

금이나 은으로 자수를 새기거나, 각종 보석을 박은 값비싼 주머니들.

주머니를 이렇게 호화롭게 꾸몄던 건, 주머니가 그저 소지품을 담는 용도로만 쓰이지는 않았음을 의미해요.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눈에 띄게 만든다는 건, ‘여기에 중요한 게 들었다’ 하고 광고하고 다닌 거나 마찬가지였을 텐데요.

때문에 귀족들의 주머니는 소매치기의 주된 표적이 되기도 했죠.
귀족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소매치기가 점점 늘어나면서 문제가 되자, 귀족들은 귀중품을 더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17세기에 한 가지 방법이 등장해요. 바로 주머니를 아예 꿰매는 것이었죠!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바지 주머니는 돈을 깊숙히 찔러넣어 도난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머니의 은총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진 않았어요.

먼저 주머니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가난한 농민들에겐 다른 세상의 일이었죠.

당시 주머니는 무엇보다 귀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계급 간 격차뿐 아니라, 성별에 따른 격차도 있었는데요.

어쩌면 이건 더 오래되고 끈질긴 갈등일지도 몰라요.
잘 알려졌다시피 당시 바지를 입는 사람들은 특정 성별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17세기 유럽 여성의 일반적인 의상은 바지가 아니라 치마였고, 때문에 여성의 주머니는 여전히 허리춤에 묶는 형태였죠.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원래 치마 바깥에 두었던 주머니를
치마 안으로 들이는 정도의 변화였어요.
이렇게 하는 것으로도 소매치기를 예방할 수 있었지만, 여기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공공장소에서는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이었죠.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면 치마를 들춰야 했고, 당시 인식으로 그건 옷을 벗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남성복의 주머니에 비해, 여성복의 주머니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어요.
어떤 주머니를 갖는지가 특권이었던 시대.

그런데 19세기에 중요한 분기점이 찾아와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계급 갈등을 촉발시켰는데요.

그 결과 지나치게 화려했던 귀족 문화는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보다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옷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때문에 새롭게 지배 계급으로 떠오른 자본가들은 과거 귀족의 활동복이었던 승마복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변형시켜 만든 게 오늘날의 정장이죠.
또 필요한 물건을 바로바로 꺼낼 수 있도록 바지뿐만 아니라 조끼와 외투에도 주머니를 만들었고, 시계나 티켓을 넣는 전용 주머니도 생깁니다.
한편 산업시대에 농민이 노동자로 대거 전환되면서, 튼튼하고 잘 찢어지지 않는 노동자용 바지도 탄생했는데요.

오늘날의 청바지입니다.

그리고 활동복이었던 청바지에도 자연스럽게 주머니가 들어갔죠.
때문에 오늘날 청바지 주머니에는 당시 노동자들의 활동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들이 남아 있어요.

예를 들어 주머니 상단에 박힌 이 핀.
이 핀은 주머니를 고정해, 거친 노동에도 좀처럼 찢어지지 않게 했고요.

청바지 오른쪽 주머니 위에 덧댄 이 작은 주머니는 과거 노동자들이 회중시계를 넣어 틈틈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죠.
19세기 남성복의 주머니가 더 커지고 많아지는 동안, 여성복의 주머니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어요.

점점 작아지고, 쓸모없어지고,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했죠.

이러한 변화는 여성이 경제권을 갖지 못했던 사회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19세기만 해도 회사나 공장은 여성이 활동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습니다.
때문에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 돈을 버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죠.

따라서 여성의 주머니는 좀 실용적인 쓸모가 없어도 된다는 인식이 생겨났던 겁니다.
겨우 주머니가 작아지거나 사라진 게 별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겨우가 겨우가 아닐 수도 있는 게요, 주머니가 없거나, 있다 해도 실용적이지 않으면 결국 가방이 필요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들고다녀야 하는 것들이 늘수록 활동성은 더욱 제약받을 수밖에 없죠.

때문에 20세기 들어 미국에는 주머니 가질 권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남성이 전쟁터로 나가자,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일할 인력이 부족해졌는데요.

때문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고, 동시에 활동성 있는 옷에 대한 요구, 주머니 가질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바지를 입은 여성이나 치마에 주머니를 꿰매는 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비로소 여성도 제대로 된 주머니를 쓸 수 있게 되었던 거예요.
필요한 물건을 가장 가까이에 둘 수 있게 하는 주머니.

주머니는 실용적인 목적 아래 설계되었고, 그 역할을 가장 잘하는 것이 미덕일 거예요.

하지만 여성복에 주머니가 불필요하다는 인식은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때문에 여성복의 주머니는 남성복의 주머니보다 전반적으로 작게 설계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죠.
한편으로는 20세기 중반 이후 스키니진이 유행하면서, 깔끔한 핏을 위해 주머니를 희생하는 경우도 있어요.

스키니진을 입은 채 주머니에 두툼한 물건을 넣으면 남녀할 것 없이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처럼 주머니의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기능적이었고, 정치적이었고 또 미학적이기도 했어요.

가방과 주머니 사이, 아름다움과 기능성 사이 어딘가에 주머니는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머니를 여러분은 원하시나요?

그림을 통해 보는 과거의 SNS, 붓스타그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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