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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 작품 속 사람들은 다 무표정일까?

중세시대 작품 부터 모나리자, 렘브란트의 네덜란드 작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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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작품 볼 때, 혹시 사람들 표정 관찰한 적 있으신가요?

종종 미소를 띈 작품들이 있긴 한데요. 대부분의 표정은 심각하고 어둡습니다.

근엄하고, 진지하고, 정색하고 있죠.
이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수록 더 두드러집니다.

심지어 춤을 추는 분위기에서도 사람들은 아주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죠.

왜 작품 속 사람들의 웃는 모습은 희귀할까요?


작품 속 사람들이 웃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설명은 ‘충치’입니다.

수백 년 동안 유럽의 치아위생은 끔찍한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모공이 열리면 전염병이 침투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주장했는데요.

때문에 유럽인들은 몸에 물이 닿는 걸 두려워했고, 목욕은 물론 양치질과도 담을 쌓았죠.

따라서 중세 유럽인들 중에는 이가 검게 썩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검게 썩은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초상화를 그릴 때 웃는 것을 자제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흥미로운 설명이긴 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릅니다.
모두에게 충치가 있었다면 충치가 한 사람의 매력을 그렇게까지 떨어뜨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또 초상화란 어느정도 보정이 되게 마련이라, 요청만 했다면 화가가 알아서 하얀 이를 그려줬을 겁니다.

작품 속 사람들이 웃지 않는 건, 그보다 좀 더 명백한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웃음을 제대로 그리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겁니다.

웃음은 순간적인 반응입니다.
폭죽처럼 한순간에 펑 하고 터지고 이내 사그라들죠.
때문에 웃음을 오랫동안 유지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카메라 앞에서 단 몇 초 동안만 웃으면 되지만, 초상화를 그릴 때는 그게 몇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죠.

모델에게 오랜 시간 웃도록 요구할 경우, 처음에는 진심이었던 웃음이라도 어느 순간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건 15세기 후반 시칠리아의 화가였던 '안토넬로'가 그린 초상화인데요.
그림 속 남자는 보조개가 움푹 파일 정도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왤까요?
눈은 웃지 않은 채, 입만 웃고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행복감을 느껴서 웃으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 주변엔 주름이 잡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뒤센 미소’라고 부르죠

그런데 남자는 입꼬리만 올라가 있고, 눈 주변은 그대로입니다.
진짜로 웃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죠.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포즈를 취했다면, 계속 진짜 미소를 지을 수는 없었을 테지만요.

어쨌든 그 결과 탄생한 이 어색한 미소는 우리에게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줍니다.

웃음을 화폭에 담는 건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죠.

웃는 얼굴의 초상화를 탐구했던 안토넬로의 시도는 16세기 초 다빈치의 〈모나리자〉로 이어졌습니다.

웃는 듯 웃지 않는, 웃지 않는 듯 웃는 모호한 미소들.

이 미소들은 이후의 초상화들에게서도 오래도록 발견되는데요.

이건 진지함과 웃음 사이의 오랜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작품 속 사람들이 웃지 않는 데는 문화적인 이유도 작용했죠.

오늘날 웃음은 즐거움이나 따뜻함처럼 대체로 긍정적인 신호로 인식되는데요.

하지만 그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오랫동안 웃음은 미숙함, 무절제함, 방탕함 같은 부정적인 신호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모든 사회가 기독교 중심으로 움직이던 중세 시대, 교회에서는 수난을 받는 예수의 이미지를 강조했고,
죽음과 속죄, 영원한 구원처럼 진지한 가치들이 중시되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은 금지되었는데요.

욕망은 영원한 것과는 거리가 멀며, 때문에 경박하고 천한 것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 사회에 웃음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죠.

왕족이나 귀족의 초상화가 대부분 웃지 않거나, 희미한 미소만을 짓고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활짝 벌린 입이 아니라 적당한 힘으로 다문 입이
한 인간의 깊은 내면을 보여준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은 진지함만큼이나 무의미한 우연들도 마구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들은 우리를 울거나 웃게 만들죠.

진지한 예술만으로는 우리의 미감이 충족되지 않는 이윱니다.
우리에게는 웃음도 필요합니다.

입술을 다문 채 살짝 미소만 짓는 게 아닌, 이를 내보이며 껄껄껄 웃는 웃음.
이 웃음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던 이들은 17세기 네덜란드에 등장했던 일단의 화가들인데요.

프란스 할스, 얀 스테인, 주디스 레이스테르,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 등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교황령과 스페인 제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네덜란드 화가들도 종교적 영웅이나 역사적 영웅이 아닌, 일반적인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데 매력을 느꼈죠.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과 거나하게 취한 술꾼,
류트를 연주하는 여인과익살스런 표정의 바이올리니스트.

그들은 모두 이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근엄한 표정의 초상화 일색이던 기존의 관습을 깨고 감정을 내보이는 경쾌한 초상화가 등장한 겁니다.

작품 속 사람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웃지 않을 때에도, 현실 세계의 인간들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하죠.
웃음은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진지함 가득했던 사회에 등장한 웃음 짓는 초상화는 그 자체로 도발이었습니다.

때문에 초상화 속 사람들에겐 온갖 부정적인 프레임들이 씌이곤 했죠.

시선이 음탕하다거나, 제정신이 아니라거나, 알코올 중독자라는 둥의 이야기들.

엄숙함을 유지할 만한 자제력을 갖지 못한 미숙한 인격을 상징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보여주었던 웃음의 도발성은 이후의 화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르누아르의 〈시골 무도회〉에서 클림트의 〈유디트〉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 사람들은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고 있죠.

20세기 미국의 화가 케리 제임스 마샬은 웃음에 정치적 의도를 담기도합니다.

검은 배경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자신을 검은 피부로 표현한 이 그림.

하얀 눈과 웃음만이 그가 거기에 있다는 걸 말해주죠.

이는 흑인을 투명인간 취급하던 당시 사회의 불평등과 편견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초상화의 역사에서 진지함과 웃음은 오랫동안 긴장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웃음은 때로 천박함을, 때로 즐거움과 따뜻함을 상징했고
정치적 목적을 품은 웃음은 도발과 조롱, 풍자가 되기도 했죠.

작품 속 인물들은 진지함과 웃음 사이, 어떤 표정을 지은 채 우리를 바라봅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작품들 속 인물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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