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는 왜 이 세기의 명작들을 '쓰레기'로 만들었을까?

조회수 2020. 2. 17.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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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독일 나치가 에드바르 뭉크,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크 샤갈 등 모더니즘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을 쓰레기로 만든 이유?
1. 빅히트를 친 전시회
1937년 뮌헨에선
수상한 전시 하나가 열립니다.
칸딘스키, 뭉크, 피카소, 샤갈
이름만 대도 알만한 화가들의 전시였는데요.

그런데 이 전시엔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현대미술의 영웅들 치고는
작고 낡은 건물에 전시장이 마련되었고,

작품들은 세심한 조명 대신
자연광 아래 아무렇게나
다닥다닥 걸려 있었죠.
벽에는 이 작품들이 왜 나쁜지
꼼꼼히 분석한 글들이 적혀 있기도 했어요.

도대체 왤까요?
이 전시의 이름은
퇴폐미술전이었습니다.

'타락한 미술'을 다룬 전시였죠.
2. 광란의 시대
1930년대는 우울한 시대였어요.
경제위기로 삶은 자꾸 팍팍해지는데,
정치는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때.

독일 사람들은 이 혼란을 끝내고 싶어했고,
이 욕망을 자극해 정권을 잡은 세력이 바로 나치였죠.
나치가 사람들에게 약속한 건 두 가지였습니다.

혼란을 수습하고 질서를 잡는 것
그리고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

그러려면 독일이 먼저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독일적이지 않은 것들이 사회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독일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적인 걸까요?
누구도 그걸 정확히 알진 못했지만,
독일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리하는 작업은 일단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지목된 건 유대인들이었어요.

유대인들은 소수민족인 데다, 기독교도도 아니었고
전통을 고수하고 사회에 잘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인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었죠.
나치는 유대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했습니다.
시민권을 박탈했고,
노란색 별을 달아 사회적으로 격리시켰고,
끝내 강제 수용소로 몰아넣었죠.
우리는 이후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아요.

대학살이었습니다.
다름을 용납하지 않던 시대가 낳은 비극이었죠.
3. 퇴폐미술전
독일적이지 않은 것을 격리하는 작업은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진행되었어요.

그 결과가 바로 ‘퇴폐미술전’이었습니다.
1937년 여름 뮌헨.

이곳에선 두 개의 전시가 개막합니다.
하나는 ‘위대한 독일 미술전’
진짜 독일적인 예술이라 지목된 작품을 모은 전시였어요.
그로부터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곳엔
‘퇴폐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는데요.

독일을 타락시켰다 지목된 작품을 모은 전시였죠.
이것들은 위대한 독일 미술전이나 퇴폐미술전에
실제로 전시되었던 작품들이에요.

여러분은 이중에서
어떤 작품이 퇴폐미술이었는지 고를 수 있나요?
골랐다면, 왜 그게 퇴폐적이라 생각하셨나요?
정답은 이것들입니다.

실험적이고 작가의 개성이 많이 드러나죠.
흔히 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작품들인데요.
반대로 ‘위대한 독일 미술전’에 전시된 작품들은요
한눈에 봐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전형적인 영웅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흔히 고전주의 계열로 분류되는 작품들이죠.
나치는 왜 모더니즘 예술을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걸까요?

그들이 생각하기에 예술의 목적은 간단했어요.
사람들에게 애국심이나 민족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예술이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려면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심어주어야 했어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고전주의는
이런 나치의 의중에 완벽히 들어맞았던 사조였죠.
예를 들어 그림의 주제가 ‘전쟁’이라면요,
그림에는 금발에 푸른 눈과 흰 피부를 가진
잘생긴 독일 군인이 들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전쟁의 참혹한 모습이나
공포에 질린 사람을 묘사하는 건 옳지 않게 여겨졌죠.
나치에게 그건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상이었고,
전체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에 반역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예술의 목적은
예술가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아름다운지가 아니라,
얼마나 독창적인지,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가
좋은 예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죠.
때문에 나치와 모더니즘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나치는 모더니즘 예술가들을 적으로 규정합니다.

작품 활동을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작품들을 몰수하고 불태우기도 했죠.
몰수한 작품들 중
가장 충격적이고 추한 작품들을 골라
퇴폐미술전을 열었습니다.

칸딘스키를 비롯해 뭉크, 피카소, 샤갈, 반 고흐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포함된 전시였어요.
당시 퇴폐미술전을 찾은 사람들은
작품을 손가락질하며 낄낄거렸고
경멸 어린 눈빛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왤까요?
그들이 나치를 열렬히 지지했기 때문일까요?
아뇨. 전시장 곳곳에 모더니즘 예술을 비하하는 장치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어요.

전시가 열린 곳은 작고 낡은 건물
심지어 전시장 용도로 쓰이지도 않던 건물이었고,
작품들은 액자도 조명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죠.

어떤 건 그냥 바닥에 널부러진 것도 있었구요
.
벽에 적힌 구호들은 하나같이 비난 일색.

이와 같은 설계는
모더니즘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던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작품들이 정말, ‘쓰레기’처럼 보였던 거예요.
4. 아름답다는 느낌
여러분, 아름답다는 느낌은 어디서 올까요?

아름다움의 기준은 계속 변해왔지만요,
분명히 개인적인 취향 차이를 넘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움도 있어요.
고대 그리스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은 완벽한 비율에 입각해 그림을 그렸고,
시대를 불문하고 그건 아름답다고 여겨졌죠.

지금 우리들의 시선으로 봐도 여전히 아름답구요.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해요.

세상의 동식물은 모두 대칭성을 띠고 있죠.
대칭적이라는 건 건강하다는 신호였어요.

먹어도 괜찮다는 신호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대칭성을 잃은 건 병들었다는 신호였고,
먹으면 위험하다는 신호이기도 했죠.
때문에 우리는 대칭성을 볼 때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도록 진화해왔는데요.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도
이런 기분 좋은 감정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치는 이걸 정치에 이용했어요.

위대한 독일 미술전과 퇴폐미술전을 함께 연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즉각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들과
해석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드는 작품들.

이 둘을 비교함으로써
간단한 기준을 제시했던 거예요.
진정한 독일인은 둘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거라고.
뭐가 더 좋아 보이냐고.
이 작품들이 아니냐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릴 때
나치는 그걸 전체주의와 연결짓습니다.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게 옳은 것처럼
개인보단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말이죠.
5. 결론
오늘 우리는 전체를 맹목적으로
따른 결과가 어땠는지를 알죠.

전쟁과 대학살이었습니다.
국가, 민족, 아름다움…
거대한 것들을 그저 좇은 결과
씻을 수 없는 집단 범죄가 일어났어요.

우리는 이 비극으로부터
하나의 중요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반드시 좋은 예술은 아니라는 것.
많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좋다는 건
권력자의 선전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덕분에, 질문을 던지는 예술의 가치도
보다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죠.
퇴폐미술가로 분류됐던 피카소
1937년 나치가 스페인 게르니카를 폭격했을 때
피카소는 이 그림으로써 세상에 질문을 던집니다.
이게 옳아?
우리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아?
흑백의 캔버스는 우리를 노려보며 묻고 있죠.

전체가 한 방향으로 휩쓸려갈 때
시의적절한 예술은 제동을 걸어요.
예술이 던지는 질문을 받은 우리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게 되죠.

나치는 몰랐던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는.

예술의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