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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는 어떻게 뮤지컬의 성지가 되었을까?

해외 뮤지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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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지지 않는 극장,
끊임없이 펼쳐지는 뮤지컬!
극장 공연의 메카인 뉴욕의 '브로드웨이'

그런데, 브로드웨이는 어떻게 공연의 메카가 됐을까요?

초기의 극장들은 창고나 맥주공장을 개조한 것으로 오늘날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1870년대 이르러서야 뉴욕 유니언스퀘어를 부근으로 극장가가 밀집했고,
그 주변에 식당가, 공연제작사, 배우 에이전트 등이 밀집하게 되었죠.

1890년대 남북전쟁이 끝나고, 미국 내 시민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며 뉴욕 또한 점점 발달했는데요.

이 시기 상류층의 말 경매장이었던 타임스퀘어가 새로운 상업지구로 급속히 떠올랐고, 고층 빌딩과 대형극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현대의 브로드웨이 극장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요

자연스럽게 근처 유니언 스퀘어의 극장가는 쇠퇴했습니다.
바야흐로 타임스퀘어의 시대.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극장주들의 권력이 압도적으로 커졌다는 건데요.
극장이 커지며 극장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극장주가 공연제작사인 동시에 캐스팅 디렉터를 독점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화면을 클릭해주세요.

업계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마크 클로와 에이브러햄 어랭거는 새로운 쇼비즈니스를 선보였는데요.

이전까지 구두계약으로 진행되던 극장사업을 문서화하고 프로덕션에 최초로 홍보담당자를 고용했죠.
하지만 배우들에게 턱없이 적은 출연료를 지불하고,
타 공연의 아이템을 그대로 베끼는 등
악행을 일삼으며 업계 종사자들에게 비판을 받는데요.

배우들은 이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진행합니다.
파업이 시작되었을 땐 달걀로 바위치기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파업은 한달간 지속되며 시카고를 비롯한 8개 도시로 퍼져나갔죠.

조합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극장가의 공연들은 취소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배우 노조는 극장주와 협상테이블에 앉게되었죠.
그러면서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노조의 활동은 다양한 사회 이슈에도 개입하는데요.
흑인배우를 차별하는 극장에 대해 공연 거부 캠페인을 펼쳐 폐업을 이뤄내기도 하고,
모든 배우는 인종과 성 정체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등의 조항을 만드는 등의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브로드웨이는 배우노조를 비롯, 미국 공연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집단으로 자리매김했죠.

그런데, 1920년대 두개의 사건이 미국 공연계를 강타합니다.

첫번째로 뮤지컬 영화인 <재즈 싱어>가 대흥행하는데요.
값싼 표를 내세운 영화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1920년대 중반부터 라디오가 보급되면서 대중의 문화생활도 크게 바뀌게 되죠.

더불어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는데요.
극장이 약 1/3이 문을 닫았고, 남은 극장들도 영화관으로 바뀌게 됩니다.
덕분에 브로드웨이 배우들과 일류 작곡가들은 할리우드로 몰려갔고,
미국 공연산업이 영화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죠.

4년의 경제 암흑기를 보내고 나서야 무대예술인들이 다시 브로드웨이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중반, 미국 뮤지컬은 황금기를 맞게 되죠.
초기 뮤지컬은 가벼운 웃음과 재미가 주 목적이었는데요. 하지만 이 시기 뮤지컬은 점차 진지해지기 시작했죠.

잘 짜인 플롯에 노래와 춤을 결합하여 인간의 진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려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의 뮤지컬을 북 뮤지컬이라 불렀죠.
1950년대 중반 팝 작곡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재즈를 흡수하기 시작하는데요.

이와 반대로 젊은이들 사이에선 로큰롤이 유행하기 시작했죠.
물론 록 뮤지컬도 나타났는데요.
<그리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록키호러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죠!

이는 젊은 세대의 환호를 얻으며, 1970년대 크게 유행했는데요.
1963년 베트남 전쟁, 흑인 폭동 등 여론이 갈라지며 미국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더불어 1970년대 텔레비전이 보급되며 뮤지컬은 또 한번 위기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기 사회성을 띈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색깔이 입혀지게 되죠.

미국의 사법제도와 천박한 자본주의를 풍자한 <시카고>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대형 뮤지컬들이 흥행에 성공하며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예술산업으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며 관객들이 늙기 시작하죠.

당시 미국 전체 관객 중 정기적으로 극장을 찾는 비율은 5%를 밑돌았습니다.
$60의 티켓값을 부담없이 지불할 수 있는 관객은 주로 백인 중장년층이었는데요.
브로드웨이는 젊은 관객층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죠.

이 시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환점이라고 불리는 <렌트>가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동성애, 마약, 그리고 Rock.
젊은 층의 취향을 저격한 뮤지컬은 이후 문전성시를 이뤘죠.

더불어 1990년대 디즈니가 뮤지컬에 뛰어들면서 가족 뮤지컬의 판도를 바꿔놓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가족 뮤지컬이 아닌, 아이와 성인 모두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초기 유치하다는 평론가들의 평가를 뒤엎고 계속해서 흥행을 이끌어내며, 현대 공연계를 중심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거침없는 시대 변화 속,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과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새로운 독자개발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브로드웨이를 공연계의 성지로 만들었습니다.

변화하는 공연계의 메카, 브로드웨이는 앞으로 또 어떤 작품들을 선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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