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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술관의 동선은 정해져 있었다

조회수 2019. 4. 16.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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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길 잃은적 있는 사람??
미술관의 동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시장을 어떻게 걷는가'는 관객이 작품을 보는 시간과 순서를 좌지우지하고,
관객들이 얻어갈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프랑스의 지식인, 조르주 바타유는
"미술관에서 전시실과 전시품은 '용기'일 뿐이고, 내용은 결국 관람객의 움직임에 의해 형성된다"고도 말했는데요.
많은 전시 기획자들도 전시를 기획하는 데 있어, 관객의 동선을 어떻게 짤 것인 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합니다.

그렇다면, 미술관의 동선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미술관의 동선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바로, 강제순환동선과 자유동선이죠!
강제순환동선은 보행의 선택이 불가능한 형태로, 관람객의 움직임을 미술관에서 직접 정해놓고 관리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보통 전시실이 하나의 직선형태로 구성된 경우 이런 형태의 동선을 띄죠!
자유동선은 이와 달리 관객의 보행 선택이 다양한 형태를 말합니다.

홀이나 로비처럼 하나의 중심 방이 있고, 복도 등을 통해 평행적으로 전시실이 연결되어 관람객이 원하는 전시실을 선택해 들어갈 수 있죠.
그렇다면 이 미술관의 동선은 언제부터 전해 내려온걸까요?

연구에 따르면 과거의 미술관은 다소 폐쇄적인 형태를 띄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관객의 동선은 일방적이었고, 보행 또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죠.
일례로 계몽주의 시대의 전시장은 주로 닫힌 방에 긴 갤러리가 이어지는 구조가 많았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강제순환동선의 양상을 띈 셈입니다.
하지만 근대로 들어서며, 관객들에게 선택권이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전시실을 엮는 형태 속에서 관람객이 직접 보행 결정권을 지니도록 한 것인데요!
이는 관람객이 단순히 주어진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전시 공간을 취사 선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참여자로 역할이 변화한 것이죠!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에 대한 비판 또한 있습니다.
첫째로 초기 전시장에도 자율성이 부여된 동선이 많았다는 점,
일례로 18세기 프랑스의 건축가 뒤랑은, 중앙 홀을 중심으로 여러 전시실을 엮는 자유동선형태의 전시장 설계를 많이 진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의 미술관에서도 폐쇄적인 동선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어 비판했죠.

실제로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20세기 중반에 설계됐지만, 관객의 동선이 나선형 구조를 따라 일방향으로 이어지는 폐쇄적인 형태를 띕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다양한 동선이 오히려 관객들의 혼란과 혼선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작품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기도 하고,
동선 선택이 자유로운 전시 = 좋은 전시가 아니라는 주장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는 전시 형태에 따라 다양한 동선을 연구하고, 또 재조립하면서
최적의 방법으로 기획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동시에 관객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요.
많은 연구자들은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이 '전시되는 곳'이 아닌,
예술과 지식이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관객과 교류'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현대미술의 이단아, 마르셀 뒤샹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경험, 그 자체가 예술의 모든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미술관에서 우리는 어떻게 걸으며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까요?

문화예술 매니아들을 위한 놀이터,
널 위한 문화예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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