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작품 만들기는 가능할까?

조회수 2019. 2. 25. 09: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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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작품.
남들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출처: 뱅크시 <풍선을 든 소녀> 퍼포먼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독창성'이란 가장 중시되는 미덕 중 하나죠.
그런데, 과연 '완전히 새로운 것'이 가능할까요?
완전히 새로운, 이전에 세상에 없던 것.
예로부터 예술가들은 이를 위해 도전해왔지만, 반대로 이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했습니다.
20세기 인문학의 거장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 서적들을 읽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합니다.
세상의 모든 책은 끊임없이 다른 책을 참조하고 있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미 말해진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어떤 텍스트도 다른 텍스트와 관계가 없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죠.
실제로 작품들은 다른 작품을 참조하거나 인용하면서 완성되기도 하고, 인용이나 참조가 없더라도 작가가 살아오면서 접한 다른 작품들을 자신도 모르게 참고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출처: 세잔 <사과>
흔히 '세잔의 사과가 없었다면, 지금의 피카소 작품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텍스트간의 연결성'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상호텍스트성'이라고 불렀죠.
상호텍스트성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들의 재조합으로만 이뤄진다면, 작가의 독창성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실제로 이와 관련해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했습니다.
작가의 독창성 유무는 곧, 작가의 존재 의미마저 뒤흔들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상호텍스트성 아래에서 진정한 독창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요.
문학이나 예술작품은 마치 모자이크와도 같아서, 이미 과거에 존재했던 작품들을 다시 결합하고 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이런 점에서 작가나 저자는 '창작자로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텍스트는, 이전 세대의 모방일 뿐일까요?
출처: 달리가 재해석한 <모나리자>
상호텍스트성과 저자의 죽음 논의는 당대 예술가들과 창작자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줬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죠.
출처: 보테로가 재해석한 <모나리자>
상호텍스트성이 선사한 '독창성의 종말'은 이후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출처: 뒤샹 <샘>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은 독창성의 허구를 드러냄으로써 더욱 새로운 도전들을 펼쳐나갔습니다.
어떤 장르나 흐름에 귀속되기보다, 뒤섞거나 뒤엎어버렸고
출처: 앤디워홀 <Impression, Sunrise>
'완전한 새로움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모방과 복제 그 자체를 예술로 활용하며 팝아트, 키치 등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이어나갔죠.
출처: 티노 세갈 <키스>
이를 통해 현재의 작품들은 단순히 이전 세대의 모방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것들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창조성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앤디워홀의 <모나리자>
결국 '완전한 새로움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독창성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가져왔고, 그러한 물음 아래에서 새로운 예술이 탄생했죠.
뿐만아니라, 현재까지도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다양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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