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품에 안은 '오경재'

조회수 2020. 5. 26.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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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노출콘크리트 전원주택

산 중턱에 경사 25도. 누가 봐도 집터로써는 매력이 없다. 산을 깎던지 메우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판인데, 건축가는 산을 건드리지 않고 땅 속에 그대로 집을 묻었다. 이른바 역발상이다. 어머니 대지에 오롯이 들어앉은 ‘오경재’ 주택을 만나본다.

글·사진 박치민 기자 

HOUSE NOTE

위치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건축형태 철근 콘크리트 구조

대지면적 930.00㎡(281.81평)

건축면적 154.69㎡(46.87평)

연면적 317.92㎡(96.33평)

             지하 317.92㎡(96.33평)

지붕재 옥상 녹화

외장재 노출 콘크리트

내장재 전타일, 벽재

바닥재 황암토, 원목 마루

창호재 삼중유리 시스템 창호

난방형태 지열 시스템

설계 건축사사무소 아키포럼  

02-745-6511

시공 종합건축 품(주)  

070-4896-3582

거실. 넓은 마당 넘어 수려한 운길산이 보인다. 남향에 위치해 마당과 실내는 늘 밝고 화사하다.
거실과 연계된 주방/식당. 근경 뿐만 아니라 원경에도 시야에 막힘이 없다.
실내에서 본 중정. 창의 높이와 위치를 조절해 실내 조망권을 확보했다.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내부 계단. 오경재 주택은 흙을 구워 만든 자연 소재의 벽돌만을 사용해 실내의 온도와 습조도절 이 탁월하다.

젊은 시절 독일에서 임업을 공부한 건축주는 자연과 상생하는 독일의 주거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자연과의 조화’, ‘에너지 자립’은 그들 주거의 핵심 골자였다.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감은 사실 우리네 기본 정신이 아니었던가.


귀국 후, 그는 자연과 집, 그리고 사람이 일체하는 집을 짓기 위해 부지를 살피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남양주 조안면에 지금의 집터를 보게 됐다. 산 중턱에 경사가 있는 땅. 솔직히 주택지로써 매력이 없었다. 게다가 전 주인이 건축을 위해 이미 자연을 훼손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건축주는 흔쾌히 이 땅을 구매했다. 숲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여기에 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녹지면적을 원래 수준으로 회복하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지인을 통해 ‘행복집짓기+’교장이자 종합건축(주) 대표인 김용만 건축가를 만났다. 그는 지금까지 만난 건축가와는 주거에 대한 철학부터가 달랐다. 친환경에 대해서도 다수가 ‘재료’에 초점을 맞췄다면, 김 대표는 ‘관계’에 그 의미를 뒀다. 재료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강조하지도 않았다. 자연과 화합, 생태 소통, 에너지 절감, 감성예술이 김 대표가 생각하는 건축의 기본 뼈대들이었다 .


그는 “꼭 비싼 자재와 기술을 적용해야만 친환경 주택이 가능한 건 아닙니다. 햇빛과 바람, 눈, 비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 현실적인 비용 선에서 누구나 에너지 절감형 녹색주택을 지을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대문을 지나 좁은 계단을 올라오면 양 옆으로 넓은 앞마당이 펼쳐진다
외부에서 본 중정. 안과 밖을 연결하는 공간이다.
대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현관에 이른다.
집을 땅에 묻다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살고 싶은 집만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얘기들이 오고 갔다. 설계는 거듭된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서로 뜻이 통하니 길은 일사천리로 열렸다.


먼저 집을 땅에 묻기로 했다. 주택 설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역발상이었다. 흔히 집 놓을 터전을 닦기 위해 메우던지 채우던지 둘 중 하나는 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땅을 훼손하지 않고 경사의 이점을 살려 지하 주택을 구현했다. 외관만 보면 집은 그야말로 땅 속에 파묻힌 형태다. 그러나 실내에는 어느 공간이나 하늘과 맞닿아 있어 결코 지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집은 경사진 땅에 맞춰 계단식으로 구성했다. 대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현관에 이르고 다시 집 내부 계단을 통해 반대편 끝의 옥상에 다다른다. 내부 구조는 거실과 주방 등 공용 공간으로 시작해 계단을 따라 양 옆으로 개인 공간인 침실과 연구실이 자리한다.


‘오경재’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자연과의 조화와 그에 따른 에너지 절감이다. 우선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재료는 대폭 절감시켰다. 그리고 집 주위에 산재해 있는 바람과 채광 그리고 하늘을 포함한 모든 자연 요소를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남향인데다 내부 계단 옆에 중정(中庭)을 둬 실내는 지상 주택 못지않게 밝고 화사하다. 여기에 천장 높이가 최고 5m에 달해 개방감 또한 높다. 개인 공간은 외벽과 건물 사이에 덱을 두고 방위에 따라 창량을 조절해 조망을 확보했다. 집 안에 머물면 누구나 이곳이 땅 속이란 사실을 금세 잊게 되는데, 이는 모든 공간이 이처럼 외부와 소통하기 때문이다.


“각 공간마다 바람과 채광을 충분히 받아들이도록 설계했습니다. 가족의 주 생활공간인 거실과 주방은 남향 제 1코스에 배치하고, 개인 공간은 뒤편에 위치시켜 자연의 에너지 활용도를 높였습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오경재.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건물 외벽에 오목 블록한 입체감을 넣었다. 이는 각종 식물들이을 벽지지대로 삼아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경재는 2011년 남양 주시 ‘친환경주택’ 대 상과 2014 ‘대한민국 녹색건축대상’ 주거 부문 우수상, ‘경기 건 축문화제’ 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것이 바로 저에너지 주택

오경재는 에너지 성능 평가에서 1차 에너지소비(화석연료)가 무려 1.9kWh/㎡·년으로 측정됐다. 다른 주택지의 100kWh/㎡·년과 비교할 때 이는 놀라운 수치다. 이에 대한 비밀은 패시브 원리를 이용한 기술력에 있다.


오경재는 친환경 기술을 총동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모두 접목시켰다. 지열 시스템은 난방을, 태양광은 전기를, 태양열은 온수를 각각 담당한다. 실생활에 필요한 주요 에너지부터 확보한 것이다. 여기에 우레탄 고효율 자재로 내·외부를 마감하고 삼중유리 시스템 창호로 단열을 끌어올렸다. 또한 모든 지붕은 건축주의 전공을 살려 다양한 나무와 꽃을 심거나 흙으로 덮는, 이른바 100% 옥상 녹화로 조성했다. 덕분에 냉난방기기를 작동하지 않아도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오경재는 경사를 활용해 건물 외부 면적을 30%가량 줄이고, 외부로 드러난 지붕과 벽도 흙과 식물로 덮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했습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기술로 꼭 필요한 주요 에너지들을 확보했습니다.”


김 대표는 집짓기에 대해 무엇보다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집은 신뢰로 짓는다’는 말이 있듯이 공감과 소통이 이상적인 집을 짓는데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그는 말한다. 행복집짓기+ 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바로 소통의 일환. 그는 5년째 에너지 절감형 녹색주택에 대한 무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수강자만 1200명에 달하고 이를 통해 친환경 에너지 절감 주택만 전국에 9채가 완성됐다. 오경재도 그 중에 하나다.“집이 완성될 때마다 집들이 겸 특별한 음악회를 엽니다. 그리고 명패도 달아줍니다. 집이 완성됐다고 건축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계는 계속 이어지니까요. 그래서 제게 건축은 단순한 집짓기가 아닌 공감과 소통 그리고 감성을 키워나가는 하나의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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