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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 수몰 지역 문화재를 이전 복원한 제천 청풍문화재 단지 내 한옥

조회수 2019. 12. 23.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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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

청풍문화재단지(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는 1978년 6월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수몰 지역에 있었던 문화유산을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1만 6천 평 부지 위에 원형대로 이전 복원한 곳이다. 보물 546호 청풍석조여래입상 등 다수의 문화재와 영화 촬영 세트장이 있어 평일에도 관람객이 상당하다. 여기에서는 청풍 도화리 고가등 살림집 4채를 소개한다.

글 최성호 사진 홍정기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다목적댐 공사로 수몰된 문화유산을 1만 6천 평 부지에 이전 복원한 곳이다. 사진제공 제천시청.

우리나라에는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를 모아둔 데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청풍문화재단지고 다른 한 곳은 문의문화재단지다. 청풍문화재단지는 1978년 6월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수몰 지역에 있던 문화유산을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1만 6천 평 부지 위에 원형대로 이전 복원한 곳으로 1985년 12월 개장했다. 한편 문의문화재단지는 1980년 대청댐 건설과 더불어 1992년 계획해 1997년 완공했는데 총 4만여 평의 대지에 민가 5동, 관아 건물 1동, 성곽 및 성문 1개소, 유물전시관 1개소등이 있다.


사실 이런 문화재단지의 효시는 용인 한국민속촌이라고 할 수 있다. 1974년 개장한 한국민속촌은 민족 문화자원을 보존하고,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을 위한 학습장 및 내외국인을 위한 전통문화 소개 등을 위해 세워진 시설이다. 한국민속촌 건물 대부분 다른 곳에서 이전해온 것이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집이나 옷, 가구 같은 민속품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 1980대 초부터이니 문화재 지정에서 소외된 것이 아닌가 한다.

후문에는 단지를 지키는 성곽이 우뚝 솟아 있다.
지방유형문화재 90호 청풍 응청각.
상방이 사랑방을 대신한 청풍 도화리 고가

청풍문화재단지에는 보물 546호 청풍석조여래입상淸風石造如來立像/보물 528호 청풍 한벽루淸風寒碧樓/지방유형문화재 20호 청풍 금남루淸風錦南樓/유형문화재 34호 청풍 금병헌淸風錦屛軒/유형문화재 35호 청풍 팔영루淸風八詠樓/유형문화재 64호 청풍향교淸風鄕校/유형문화재 83호 청풍 도화리 고가淸風桃花里古家/유형문화재 84호 청풍 황석리 고가淸風黃石里古家/유형문화재 85호 청풍 후산리 고가淸風後山里古家/지방유형문화재 89호 수산 지곡리 고가水山池谷里古家/지방유형문화재 90호 청풍 응청각 淸風凝淸閣등이 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의 정자 한벽루와 관아 건물인 금남루나 금병헌 등도 매우 가치 있는 건축 문화재지만 여기서는 살림집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소개하려 한다.


첫 번째 소개할 건물은 청풍 도화리 고가다. 도화리에 있었던 옛집으로 ㄷ자형이다. 문화재청 자료는 이전하기 전, 집 앞에 건물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원래 도화리 고가는 없어진 살림채 앞으로 —자형 바깥채와 함께 전체적으로 ㅁ자형 배치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면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일반적인 배치와 달리 우측에 안방을 뒀다. 안방 앞날개채에는 두 칸 규모의 부엌을, 건넌방 앞 날개채에는 부엌과 상방 각 한 칸을 놓았다.


안방과 웃방 사이는 장지문(연이어 있는 방 또는 방과 마루 사이의 미세기문으로 한옥에서는 주로 큰 방을 다양하게 쓰기 위해 둘로 나눌 때 많이 설치한다)으로 막는 게 보통이나 이곳은 벽을 설치했다. 이는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인데, 대청에 전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집이 고식古式인 것은 분명하다. 대청은 깊이가 한 칸으로 삼량집이다.


건넌방 앞쪽 상방이 특이하다. 별도의 사랑채를 두지 않고 상방을 사랑방으로 이용했다. 상방전면과 안마당 바깥에 퇴칸처럼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덧내 달은 툇마루를 놓아 툇마루를 여러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실생활에서 툇마루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기둥과 지붕을 놓은 것이다.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태백산맥 산중에 있는 집처럼 통나무로 굴뚝을 만들었고 부엌 창 옆에 관솔(송진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 예전에는 송진이 많은 관솔에 불을 붙여 촛불이나 등불 대신으로 썼다)을 지펴 방을 밝힌 코쿨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ㄷ자형 도화리 고가는 별도 사랑채를 두지 않고 상방으로 대신 한 것이 특이하다. 자료에는 코쿨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다.
황석리 고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부엌이다. 전면으로 별도 지붕을 단 광을 설치했다.
황석리 고가는 -자 전퇴집으로 앞면 4칸 측면 칸 반 규모다.
안채에서 본 행랑채.
전면 퇴칸까지 활용한 황석리 고가

두 번째로 소개할 건물은 황석리 고가다. 앞면 네 칸 측면 칸 반 규모로 —자 형태의 전퇴집이다. 부엌, 안방, 웃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끝에 사랑방을 뒀다. 모든 방에 천장이 쳐 있어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퇴칸 구조로 짐작건대 일고주 오량 집이다. 안방과 웃방 앞에만 마루가 있었고 사랑방 앞에는 마루 없이 옥외 취사 공간인 한뎃부엌(방고래와 상관없는 한데에 따로 솥을 걸고 쓰는 부엌)을 두고 머리퇴에 툇마루를 뒀다는데 지금은 방 앞 전체에 툇마루가 설치돼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부엌이다. 부엌은 전면 퇴칸까지 포함해 한 칸 반 규모다. 이렇게 해도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는지 처마 밑으로 살강을 들여 수납공간을 확보했고, 전면에는 별도로 지붕을 빼고 그 아래 광을 놓았다. 광 벽은 널빤지를 층층이 쌓아 만들어 위로부터 한 칸씩 빼낸 후 보관한 물건을 들어낼 수 있게 했다. 이런 형식의 광은 도난에 효율적이기 때문에 많은 고택에서 사용했다.

건넌방 앞으로 한 칸 돌출한 차양칸이 인상적인 후산리 고가. / 뒤편 정원을 잘 다듬어 놓아 걷는 맛이 있다.
후산리 고가는 ㄱ자 형 안채만 전해진다. 건넌방은 팔작지붕이고 날개채는 맞배지붕이다.

세 번째는 후산리 고가다. 현재 ㄱ자 안채만이 남아있다. 건넌방은 팔작지붕이고, 날개채인 부엌은 맞배지붕이다. 중부지방에서 흔히 보는 ㄱ자 집이지만 후산리 고가는 여러 면에서 특이하다.


우선 대청이 놓인 몸체가 여러 구조 시스템을 갖췄다. 삼평주 겹집 구조와 전후퇴집의 구조적 특징이 모두 나타나 있고, 부엌이 있는 날개채가 두 칸으로 한 칸 또는 칸 반으로 된 다른 곳보다 규모가 크다. 규모가 제법 되는 부엌을 지탱하려다 보니 중간에 큰 보를 가로로 질러 놓았으며 상부 맞배지붕 때문에 생기는 삼각형 면에는 환기를 위한 살창을 뒀다.


다른 특징은 대청 한구석에 위패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해 놓은 점이다. 대청에 위패를 모시는 경우 주로 감실로 꾸미는데 이곳은 한 칸 규모 방으로 계획했다. 또한 종도리를 받치는 구조가 첨차 위에 소로를 얹어 받치는 형식으로 제천 박도수 가옥과 같다. 이런 방식으로 종도리를 받치는 게 제천 지방의 특징인 것으로 보인다.

지곡리 고가는 사랑마당, 안마당은 폐쇄적 구조를 보이지만 뒷마당은 매우 넓다.
청풍문화재 단지 내 집들 중 원형을 잘 간직한 지곡리 고가는 다른 집과 달리 중문 벽체가 판장벽이다.
원형을 잘 간직한 수산 지곡리 고가

또 눈에 띄는 특징은 건넌방 쪽 전면으로 한 칸 돌출한 차양칸이다. 건넌방 측면으로 3/4칸 규모로 내 기둥을 세우고 본채와는 별도로 지붕을 달아냈는데 건넌방 바깥으로 확장한 공간 규모가 상당하다. 이렇게 차양칸을 건물에 설치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뿐더러 안방이 아닌 건넌방 앞 부속 시설로 쓰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 건넌방도 전면 두 칸에 측면 칸 반으로 안방보다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단순한 건넌방이 아니라 집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사람이 사용한 방이 아닌가 한다. 안채 앞에 있던 사랑채가 없어지면서 일제 강점기 이후 사랑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집은 수산 지곡리 고가다. 청풍문화재 단지 내집들 중 원형을 잘 간직한 곳으로 ㄱ자 안채와 —자 문간채 그리고 중문 앞 사랑채와 헛간채로 구성됐다. 사랑채와 문간채, 헛간채는 초가이고, 중문과 안채는 기와집이다. 중문 벽체는 다른 곳과는 달리 판장벽이다.


안채는 전면 세 칸 반, 측면 칸 반이고 안방 앞으로 두 칸 반 돌출한 날개채가 있다. 안방 쪽은 안방이 칸 반, 부엌이 두 칸 반이다. 한 칸 대청을 두고 건넌방이 위치하는데, 건넌방은 전면에서 볼 때 처마 쪽으로 조금 내어 달아 한 칸 규모보다 크게 간살을 잡았다. 또 건넌방 후면 처마 밑으로 1/4칸 정도 빼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수납공간의 환기를 위해 뒷벽 하부에는 살창을 두기도 했다.


부엌은 폭이 칸 반이고 길이가 두 칸 반인데, 안방 쪽 반 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장벽이다. 두 칸 반 중 칸 반이 부엌이고 앞쪽 한 칸은 바닥이 마루로 된 고방이다. 현재 이 집 사랑마당, 안마당은 폐쇄적인 구조로 매우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뒷마당이 넓어 시원하다. 원래 집 분위기도 이랬는지 궁금하다.

보물 528호 청풍 한벽루. 뛰어난 조형미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꽤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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