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집 이야기 1편 '건축사'

조회수 2019. 9. 14.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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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elling & Architecture
건축사의 집 이야기 1편 '건축사'

Dwelling & Architecture

글 양성필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들어가며

언제부터인가 집을 지으려는 이들에게 건축에 관한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엮어서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제 능력을 벗어난 턱도 없는 욕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무언가를 써야 하겠다는 욕망을 들추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건축설계는 누군가가 지으려는 집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일입니다. 실제로 집을 짓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때문에 건축설계자의 경험은 실제의 경험이라기보다는 간접경험, 즉 탁상공론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집을 짓고자 하는 대개의 건축주가 ‘어떻게 집을 지을까?’ 하고 고민을 오랫동안 하지만, 건축사와 마찬가지로 탁상공론을 바탕으로 하는 위험한 상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건축사의 작은 경험이 집을 처음 지으려는 사람에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고민과 경험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글의 독자는 자신의 집, 특히 단독주택을 처음으로 지어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집을 통해서 바라보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건축사가 건축보다는 집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집보다는 그것을 통해서 펼쳐지는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다시 우리 건축문화의 현주소를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01_ 건축사

“이러다가 우리 직업이 머지않아 없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라고 한 선배의 말이 생각납니다. 직업이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생겨났으니까, 필요가 없으면 당연히 사라지게 되겠지요. 그 선배의 이야기는 조만간에 이름 있는 대기업에서 양질의 주택을 공장에서 만들어서 공급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사람들은 굳이 설계하지 않고 맘에 드는 주택을 고르는 방법으로 집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주택도 자동차처럼 메이커가 붙게 되고 제품 카탈로그에서 골라서 주문하면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진 제품을 싣고 와서 현장에 설치해주게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그러한 착상着想은 이제야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근대건축의 거장이었던 르코르뷔지에도 아파트를 지을 때 뼈대와 공용 복도와 계단만 만들어놓고, 각 주호는 공장에서 만들어서 크레인으로 집어넣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일률적이고 똑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집집마다 인테리어가 다른 아파트가 주문되겠지요. 주택을 공장 생산하겠다는 생각은 국내의 모 기업에서도 스틸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수개의 샘플 도면이 있고, 주택을 선택하면 현장에서는 재료를 조립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러한 방식은 사실 목조주택에서도 가능합니다. 공장에서 미리 가공해서 현장 설치가 어려운 공법은 조적조와 콘크리트조와 같은 습식공법이지요. 최근에는 흄관과 같은 모듈화된 콘크리트 박스를 조합해서 주택을 짓는 사례도 나타났다고 하니 선배의 그런 위기의식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저 역시 조금 다른 이유였지만, 건축사라는 직업군이 조만간 상당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건축사라는 소위 전문 직업을 위협하고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의사와 변호사와 같은 다른 전문 직업들도 이 상황에 대해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 전문 직업인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지식이 인터넷을 통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 16세기 초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책이 양산되었을 때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형태도 세련되고 쓰임새도 적절한 인쇄물은, 마치 악마의 유혹에 따른 공격에 대한 반격처럼, 신의 계시로써 이 시대에 발명되었다. 이제 어느 곳이든 박식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현학적인 지도자도 많아졌으며, 책으로 가득한 서점도 늘어났다".


위의 글은 라블레가 쓴 글을 재인용한 것입니다. 지금 인터넷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과 비슷하지 않나요? 인쇄술의 발달은 실제로 루터의 사상을 유럽 전역에 전파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촉매가 되었지요.


하지만 박식한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서 그게 인류발전에 저해가 되지는 않았지요.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박식해지는 거야 좋은 일 아닌가요? 하지만 아마도 지식을 독점하고 있었던 중세의 학자들에게는 이게 상당한 위협적인 사건이었나 봅니다. 저는 현대 지식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위협이 똑같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같은 건축사들이 대학 4년을 전공으로 공부하면서 달달 외웠던 지식들이 인터넷에서 몇 번의 질문을 함으로써 확인될 수 있다면 위기는 위기지요.


건축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간단한 사례를 들어 볼까요? 이를테면 의뢰인이 인터넷을 뒤져서 예쁜 집의 사진과 평면을 들고 오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집을 갖고 싶어요. 그냥 이렇게 그려주시고 허가를 받아주시면 돼요.”라고 주문을 합니다. 그야말로 건축사는 의뢰인이 주는 자료대로 도면을 그리고 허가를 받아주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예전에도 자기 집을 이렇게 저렇게 설계해 달라고 지시하는 경우는 흔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건축사가 조언을 해주어야 할 일이 많았지요. 의뢰인의 요구가 그렇게 세부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최근에는 의뢰인들이 인터넷 자료를 가지고 요구하는 정도는 매우 구체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점점 그 자료의 수준이 건축사의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양질의 정보를 가지고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건축주가 가져온 샘플 이미지가 제 마음에도 좋아 보여서 비슷하게 설계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의뢰인은 처음에는 목조주택으로 설계했으면 해서 나름대로 목조주택을 열심히 그려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면 수준이 건축과 학생과 거의 같은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집안에서 목조주택을 싫어하는 이유로 다시 설계하기는 어렵고 해서 인터넷으로 맘에 드는 집의 사진과 평면을 구해 왔더군요. 문제는 의뢰인이 가져온 샘플 주택의 도면이 제 마음에도 쏙 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의 기본방향을 그 주택의 형태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컨테이너처럼 이동 설치가 가능한 주택은 공장에서 집을 마트의 상품처럼 공장제작과 판매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 의뢰인은 혹시 건축사를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도면을 대신 그려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건축사의 안목을 가지고 좋은 것을 좋다고 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런 경우에도 똑같이 설계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건축사가 다른 샘플을 참고한다고 해서 그대로 베끼지는 않습니다. 집이라는 것이 그렇게 복사하듯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건축사라는 직업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케이스가 정작 건축주는 오지 않고 시공예정자가 도면을 그려 와서는 이대로 허가를 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는 건축주와 다 얘기가 됐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미리 도면을 그려 와서 그대로 허가를 받아달라고 하면 일이 매우 편할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는 이런 일은 수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 좋은 집을 짓기 위한 방법이 아니거든요.


때로는 건축주 스스로 계획도면을 다 그렸으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설계비를 좀 낮추어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황당한 일이지요. 그들이 제게서 빌리고 싶은 것은 단지 건축사라는 자격뿐인 듯합니다. 도대체 전공으로 설계공부를 6년을 하였고, 대도시에서 실무를 5년 이상 하였고, 건축사사무소를 자영한 지 15년이 넘은 건축사에게 바라는 것이 고작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니 건축허가만을 받아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런 경우도 저는 설계비를 낮추기는커녕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제가 건축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건축설계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분은 제 꿈을 포기시켰으니까 당연히 저는 그 대가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쩌다가 건축사라는 직업이 집을 짓기 위해 허가를 받아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는지 참으로 갑갑한 일입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법 제도가 건축사의 승인 없는 도면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도록 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런 법 때문에 한때는 자격증만 있어도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가능한 도면을 작성하는 것이 건축사가 필요한 이유일까요?


저는 최근 들어서는 이런 법적인 보장 자체가 건축사의 위상과 역할을 많이 떨어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건축사의 주된 업무는 좋은 집을 설계하는 일이지 관에서 허가를 받아오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관에서 건축허가를 받아오는 것이 설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참으로 건축사가 별로 사회적으로 필요 없는 직업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건축사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때문에 건축사의 지식은 복잡한 기술자의 수학과 공학을 이해해야 하는 종류가 아니라 매우 상식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그중에 법규체크를 하는 게 기술자의 지식에 가까운 것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정말 가까운 장래에는 건축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직업이 될까요?

건축주가 직접 그려서 가져온 집의 이미지. 건축주는 자기의 집을 자기가 그려보고 싶어서 프로그램을 익히는 것부터 하나씩 스스로 익혔다고 한다.

저는 집을 짓기 위한 도면작성을 누군가가 대신 해 주거나 법규체크를 누군가 대신 해 준다고 하여도 건축사라는 직업은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물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무리 집을 짓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그것은 건축사의 업무 중에서 매우 일부분의 업무일 뿐입니다. 더구나 도면을 그리는 일은 자체는 정말 건축사가 아니어도 해결할 방법이 나올 것입니다.


만약에 집을 짓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하나는 공학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경우가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인 규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건축사는 이러한 것을 체크하여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한 도면을 작성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건축사가 필요한 이유가 아닙니다. 건축사는 ‘좋은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조력해주는 사람입니다. 법적으로 가능하고 공학적으로 가능한 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집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건축사의 책무인 것입니다.


그러면 건축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통상 계약서에는 계약 당사자를 갑과 을로 명기하고 있지요. 저는 최근에 우리 사무실의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항목을 지우고 ‘건축사’와 ‘의뢰인’이라는 말로 두 계약자의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저희 분야에서는 건축주를 영어로는 ‘클라이언트Client’라고 부릅니다. 그야말로 고객 혹은 의뢰인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외국어로는 클라이언트라고 하는 것과 우리말로 건축주라고 부르는 것은 의미가 달라 보이지요. 계약서에서도 갑과 을이라는 관계는 주主와 종從의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 분위기는 마치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건축사가 의뢰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용어를 바꾼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건축사가 의뢰인에게 종속된 관계로 보이기 싫다는 자존심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러한 종속 관계로는 좋은 집을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 이유를 서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건축사의 집 이야기'기사는 연재 시리즈로 매주 토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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