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에서 농부의 삶으로 담백한 괴산 주택

조회수 2019. 8. 23.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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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목조주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현대인에게 은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식품공학과 교수였던 건축주도 5년 전 정년퇴직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는 도심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보다, 거칠지만 적당한 노동으로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 시골 생활을 택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한적한 자연에 아담한 농가를 짓고 흙을 일구는 인생2막의 건강한 삶을 시작했다. 

글 사진 백홍기 기자 | 취재협조 팀버하우스

HOUSE NOTE

DATA 

위치 충북 괴산군 연풍면

지역/지구 계획관리지역, 가축사육제한구역

건축구조 경량 목구조

대지면적 889.00㎡(268.92평)

건축면적 103.49㎡(31.30평)

건폐율 11.64%

연면적 130.59㎡(39.50평)

  1층 90.39㎡(27.34평)

  창고 40.20㎡(12.16평)

용적률 10.17%

설계기간 2018년 5월~6월

공사기간 2018년 7월~9월

건축비용 1억 9760만 원(3.3㎡당 500만 원)

설계시공 팀버하우스 043-853-4997

 www.팀버하우스.kr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아연 도금 강판

  벽 - 스타코

  데크 - 천연목 캠퍼스

내부마감 

  천장 -합지벽지

  벽 - 합지벽지

  바닥 - 강마루

단열재 

  지붕 - 글라스울 R32(크나우프)

  외벽 - 글라스울 R15(크나우프)

  내벽 - 글라스울 R11(크나우프)

창호 독일식 시스템창호(융기드리움)

현관 중용 방화문

주요조명 로레이 펜던트 외 LED(공간조명, 프로라이팅)

주방가구 미다스주방가구(주문제작)

위생기구 대림바토스

난방기구 가스보일러(경동나비엔)

초여름 열기로 가득한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괴산 연풍면 시골길에 접어들었다. 산맥 사이로 뻗은 도로는 오가는 차량 없이 한산하다. 시원한 숲을 감상하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 보니 왼편에 살포시 앉혀놓은 듯한 아담한 주택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주택은 도로보다 레벨이 높은 대지에 앉혀 경사로로 연결된다. 경사로 옆에는 도로를 향해 정면만 드러낸 지하 창고가 있다. 창고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깔끔한 입면 때문에 주택 일부라고 해도 믿을법하다. 


건축주의 아내는 아직 현업에 있으면서 안동으로 출퇴근한다. 거리상 꽤 먼 곳임에도 건축주가 이곳에 터 잡은 이유가 있다.


“여기는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면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에요. 적당한 집터를 찾는 것도 어렵고 이곳에 집을 지을 땅이 있어서 자리 잡았어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왕래하던 곳이라 마을 사람들도 안면이 있어서 적응하기도 수월했고요. 옛 집터는 형님이 집을 지어 살고, 저는 아래쪽에 지은 거예요.”

전신거울과 선반을 설치해 실용성 높인 현관
현관 앞에서 본 거실. 천장 높이를 다르게 해 복도와 거실의 영역을 구분했다.
주방·식당은 거실과 분리해 독립형으로 계획했다. 식탁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데크와 연계해 전면에 배치했다.

임야 일부를 지목 변경한 대지는 동서로 긴 장방형이다. 대지와 인접한 곳에 밭 300평도 준비했다. 애초에 직사각 형태로 계획한 주택은 대지 모양에 맞춰 동서로 배치하고 남향을 향해 앉혔다. 동쪽 인접 도로에서 진입하면, 주택 측면이 먼저 반긴다. 박공을 얹은 단순한 모양의 측면은 데크 개구부와 주방으로 연결되는 문, 중앙에 배치한 작은 창이 묘한 균형을 이뤄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작은 텃밭을 가로질러 마당에 진입하면 비로소 주택의 정면이 온전히 드러난다. 직사각형 단층에 박공지붕을 얹은 단순한 디자인은 긴장감 없이 표정이 편안하다. 여기에 정면을 향해 열린 창호는 시원함을, 깊은 처마는 아늑함을 더한다. 처마보다 한 걸은 더 나온 넓은 데크와 데크 가장자리에 띄엄띄엄 세운 벤치는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부모의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거실은 천장을 높이고 박공지붕 형태를 드러내 넓은 공간감을 보여준다.
안방. 화이트 베이스에 블랙 테두리로 포인트 준 빌트인 장이 심플한 느낌을 전한다.
깔끔한 회색 타일의 불규칙한 무늬가 독특한 느낌을 준다.
부부를 위한 부부만의 공간

단정한 모습의 주택 디자인은 가족 여행에서 찾았다. 

“몇 해 전 가족들과 제주도로 은퇴 여행을 갔어요. 그때 묵었던 숙소가 외관도 아담하고 거실과 주방을 분리한 구조가 의외로 편리하고 마음에 들었어요. 당시 숙소의 모습을 떠올려 재현한 거죠.”


설계 시공은 건축주의 형님 주택을 지은 팀버하우스에 맡겼다. 평면과 입면은 어느 정도 결정한 상태라 무리 없이 설계를 마치고 시공에 착수했다.


“이천로 대표에게 진행을 거의 다 맡겼어요. 비전문가인 제가 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고 오히려 부담만 줄 거 같았어요. 중요한 부분은 같이 의논하고 서로 의견을 존중하면서 마무리 지었어요. 결과는 마음에 들어요.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데, 우리는 전혀 어려움 없이 완공했어요.”

거실에 있는 책장 뒤에는 게스트룸이 숨겨져 있다. 게스트룸 정면에는 아담한 서재가 있다.
화이트 & 블랙으로 깔끔하게 연출한 공용 화장실

내부 공간은 현관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가사 공간, 왼쪽에 거실과 침실로 나뉜다. 한 공간에 배치한 주방과 식당은 마당과 통하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식사 외에 풍경을 감상하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사 공간을 뒤에 두고 복도를 지나면 흰색 바탕에 햇볕을 끌어들여 환한 거실이 나온다. 안방은 소파 옆에서 살짝 열린 문틈으로 차분한 느낌을 전한다. 거실에 있는 책장 뒤에 문이 하나 보이는데, 이는 화장실이다. 책장 뒤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양쪽에 숨겨진 게스트룸과 아담한 서재가 나온다. 게스트룸은 자녀 내외가 놀러 왔을 때 머무는 공간이다. 그런데 건축주는 세 자매를 두었는데도 여유 공간을 하나만 마련했다.  


“처음엔 2층에 다락까지 만들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1년에 300일 이상 우리 부부만 지내는데, 너무 크면 관리하기 불편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규모를 줄이고 둘 만을 위한 공간으로 계획한 거예요. 아이들 내외가 몰려와 잠자리가 부족하면, 가까운데 좋은 숙소가 있으니까 거기를 이용하면 돼요. 여기선 놀기만 하면 되죠. 날 좋을 땐 마당이나 데크에 텐트 치고 잘 수도 있어요. 오히려 손주들은 그걸 더 좋아해요.”

데크 측면에 설치한 투명 창
깊은 처마는 한낮에 여유로운 그늘을 만들어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그는 덜어냄으로써 간편하고 가벼운 생활을 택했지만, 삶은 무겁고 진지하다. 대부분 평일 낮에 건축주 홀로 지내지만, 무료할 새가 없다. 300평이나 되는 밭에서 고추, 들깨, 옥수수, 감자 등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100세 시대잖아요. 은퇴하고 적어도 30년 정도는 산다는 얘긴데, 그 시간을 허비할 순 없죠. 교수였지만, 사실 은퇴하고 나면 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 농사를 생각한 거예요. 전문적으로 농사를 통해 돈을 번다기보다 적절한 노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가족하고 이웃과 나누는 거예요. 텃밭이라 하기엔 좀 넓죠. 세미 농사라고 보면 돼요.”


아직은 도심 생활에 익숙한 몸으로 오전 오후 2시간씩, 하루 4시간 밭을 일구는 게 고되기만 하다. 손길도 서툴고 자연의 이치를 모두 깨닫지 못해 평생 농부의 삶을 살아온 이웃의 도움도 받지만, 가능하면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익히려고 한다. 몸으로 배운 건 쉽게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리지만, 서서히 그는 새로운 농부의 근육을 만들어가고 있다.

박공지붕을 얹은 단순한 모양의 주택은 전면에 깊이감을 주면서 평범하지 않은 단정한 표정을 전한다.
간결한 측면 모습
도로에서 본 측면. 대지 레벨 차를 이용해 지하에 창고를 마련했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모습이 튀지 않고 산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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