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며 돈 번다? <데드풀> 한국인으로 만든 이 사람

조회수 2021. 1. 20. 20: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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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된 영화를 자연스럽게 즐길 때, 두 언어 사이의 다리를 놓으며 영화와 관객의 소통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화 번역가이다. 연출자의 의도를 최대한 파악해 관객에게 온전히 그리고 최대한 충실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 국내에선 단 5명 정도만 이름이 알려져 있을 정도로 희귀한 직업이기도 하다. 


그만큼 영화 번역가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동시에 정말 매력적인 일이기도 하다. 영화 <데드풀>, <스파이더맨>, <보헤미안 랩소디>, <나우 유 씨미>, <캐롤> 등을 번역한 황석희 영화번역가가 스크린 뒤에 가려져 있던 영화 번역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에 답했다.


출처: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스틸컷
You sent Nick Fury to voicemail..?

Q.

데드풀, 스파이더 맨 등의 자막을 위트 있게 번역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나의 예시를 들어본다면.

A.

영화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에 나오는 대사이다. 피터 파커가 닉 퓨리의 전화를 계속 안 받으니까, ‘닉 퓨리를 보이스 메일(음성사서함)로 넘겼어? 네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따지는 상황이다. 여러분이라면 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까? 나는 이 대사를 “닉 퓨리 전화를 씹어?”라는 자막으로 옮겼다. 

우리는 평소에 ‘전화를 씹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한국에서는 음성사서함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전화를 끊어버리지 않고 보이스 메일로 넘겨 녹음하는 일이 흔하다.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굳이 한국어로 직역하지 않고 ‘닉 퓨리 전화를 씹어?’라고 자연스럽게 옮길 수 있다. 번역이 단순한 해석과는 다른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Q.

영화 번역가는 국내에 단 5명 정도만 이름이 알려져 있는 희귀한 직업이다. 어떻게 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A.

2005년에 문서를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케이블 채널의 다큐멘터리 영상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 6년 정도 영화 번역을 꿈꾸며 극장 문을 계속 두드렸다. 한국에 있는 영화 수입사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계속 전화를 하고 이력서를 넣을 정도였다. 


그때는 35살 전에 극장에 제 이름을 한번 올려보는 게 소원이었다. 몇 번도 아니고 딱 한 번. 그게 경력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처음 영화 번역 시장에 진입하는 게 정말 하늘에 별따기였고, 어쩌다 기회를 얻어도 영화가 흥행하지 않으면 계속 경력을 쌓기 어려웠다. 


그렇게 6년 동안 이력서를 넣다가, 담당 번역가의 부재로 우연히 기회를 얻어 번역하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당시 번역한 영화가 ‘웜 바디스'였는데, 마침 정말 재미있는 영화라서 117만 명의 관객이 봐주셨고, 점점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단지 번역 실력이 좋았다기보다는 운이 따라주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한 영화들

Q.

진입장벽이 높은 업계의 특성 때문에 ‘영화 번역 시장은 남초이다.’, ‘인맥이 아니면 번역가가 될 수 없다’라는 오해도 있어왔다.

A.

업계 특성상 번역가 크레딧를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고, 알려진 분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보니 ‘남초' 업계라는 오해를 종종 사기도 한다.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 번역가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고, 오히려 여성 번역가들이 훨씬 많은 분야이다. 혹시 이런 이유로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기존에는 워낙 시장이 좁았다 보니 ‘인맥이 없으면 영화 번역가가 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 것 같다. 관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어떤 시장에서나 중요하지만, 업계가 좁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능력이나 실력이 없어도 번역가가 될 수 있다거나, 인맥이 없으면 영화 번역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꿈처럼 생각했던, 극장에 이름을 올리는 영화 번역을 요즘 넷플릭스 번역가들은 할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개봉할 정도의 영화라면 굉장히 수준이 높은 영화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영화사 관계자들도 분명 관람할 것이고, 그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그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영화 번역의 문을 두드려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번역을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이 시장으로 들어오실 적기라고 생각한다.

Q.

OTT 서비스와 함께 영화 번역 시장이 커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A.

넷플릭스를 필두로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HBO맥스 같은 OTT 서비스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영상 번역으로 시작해 영화 번역을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이 시장으로 들어오실 적기라고 생각한다. 

원래 극장에서는 넷플릭스 작품이 걸리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하나 둘 걸리고 있다. 극장이 OTT 서비스의 가능성에 항복한 것이다. 일단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나 영화를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경력을 쌓으면, 영화 번역 시장까지 진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중간에 업체를 끼고 하청을 받아서 영상 번역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넷플릭스와 번역가가 직접 연결되는 시장이다. 본인의 적성에 잘 맞고, 누가 봐도 재능을 인정할 정도라면 굉장히 괜찮은 수준의 수익을 올리면서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경력이 많은 번역가들에게 일이 몰렸다면,
경력이 없는 번역가들도 비교적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장이 열렸다.

Q.

영화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실무 노하우를 전해주기로 했다고. 

A.

두 언어를 오가며 멋진 다리를 놓는 영화 번역가는 참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쉽지 않은 직업이기도 하다. 나 또한 영화 번역가라는 꿈을 꾸면서 맨 땅에 헤딩하듯 길을 만들어 나갔고, 정보를 찾기 위해 사활을 걸기도 했다. 


현직의 시각에서 좀 더 정확한 정보와 가이드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5년 간의 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들이 맞서 싸울 상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무엇을 준비할지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이 길에 도전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가치 있는 첫걸음을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저 또한 어딘가에서 좋은 자막으로 여러분을 만나 뵙기를 기대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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