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조회수 2021. 4. 25. 0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씨네플레이 김명재 객원 기자

모두가 어린 시절을 거쳐왔음에도 어른이 되면 마치 짠 것처럼 그때를 잊어버린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순간, 그들에게만 존재한다. 순수하고, 고민 없고 항상 행복할 것처럼만 보이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도 분명히 고통은 존재한다. 어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아픔을 겪어 내며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무릇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성장통으로 아이들의 고통을 단정 짓지만 고통은 그 자리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어른들은 모르는, 혹은 모르고 싶은 아이들의 이야기. 오늘은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즐겁다

감독 이지원 개봉 년도 2021 출연 이경훈, 박예찬, 홍정민, 박시완, 옥예린, 이상희, 윤경호, 공민정

2021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봉하는 <아이들은 즐겁다>는 허5파6 작가의 네이버 웹툰 '아이들은 즐겁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은 간결한 그림체를 통해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완성도 높게 표현한 작품으로 2014년 완결된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인생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는 원작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는 데 집중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엄마와의 이별 앞에, 다이(이경훈)는 친구들과 함께 엄마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어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훌쩍 자라버리는 아이들. 그 여정의 시작과 처음이 다른 것처럼 영화가 끝날 무렵, 관객들은 어느새 자라나 있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연기한 어린이 배우들은 자유롭게 상황 안에서 자신의 진짜 감정들을 표현했다. 실제로 촬영 전 3개월간 별도로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며 진실한 관계를 쌓아 나갔다. 그들이 경험한 적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신에서는 이지원 감독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했다. 덕분에 다이 역의 이경훈 배우는 롱테이크에 긴 대사를 소화해냄은 물론 그 속에서 일렁이는 섬세한 감정까지 표현했다. <아이들은 즐겁다>는 어른이 바라본 환상 속의 아이가 아닌, 아이 그 자체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박화영

감독 이환 개봉 년도 2018 출연 김가희, 강민아, 이재균, 이유미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결코 빠질 수 없는 감독이 바로 이환이다. <똥파리>(2008)의 영재부터 <암살>(2015), <밀정>(2016) 등에 출연했던 그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메가폰을 들었다. 비행 청소년의 모습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박화영>은 실제로 이환 감독이 영화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10대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걸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박화영>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인 셈이다. ‘이런 애들이 어딨어. 과장 아냐?’ 라고 생각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박화영>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모른다고, 본 적 없다고,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박화영>은 고개를 돌리고 싶게 만드는 장면들이 더러 나온다. 스스로 엄마를 자처하는 화영(김가희)이 겪는 고초는 ‘왜 그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가혹하다. 그럼에도 그는 “니네는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고 말한다. 미정(강민아)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필사적인 그의 모습은 사실 집착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엄마 역할을 하며 얻는 건 결국 소속감이다. 집과 학교가 싫어 떠난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고, 의지 받길 원해 집단을 이룬다. 카메라는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그들의 현실과 관계를 목도한다. 결코 피할 수 없게,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이환 감독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른들은 몰라요

감독 이환 개봉 년도 2021 출연 이유미, 하니, 신햇빛, 이환

어떠한 환상도 없는, 지독하게 날 것인 10대들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 <박화영>을 연출해 단숨에 주목 받은 이환 감독이 또 다시 10대들의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교사의 아이를 임신한 채 학교에서 내쳐진 주인공 세진(이유미)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거칠고 생생하다. 영화는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실상 ‘어른들은 모르고 싶잖아요’에 가깝다.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건 그들을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어른들이다. 마사지로 임신중절을 해준다는 아저씨에 속거나, 성인업소에 가는 등 아이들은 턱밑까지 올라오는 폭력과 그보다 더한 위선에 체념한 듯 헛웃음을 짓는다. 

계단에서도 굴러보고, 신약 실험에 지원해 빼돌린 약을 먹어보기도 하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임신중절을 시도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연약하고 작지만, 그럼에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아이들 그 자체다. 영화는 섬세한 감정묘사, 세세한 표현에는 그닥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는 아이들의 상황을 빠르게 보여준다. 그렇게 속도가 붙은 영화는 폭주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나간다. 전 작 <박화영>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하이퍼리얼리즘 영화였다면, 이번 <어른들은 몰라요>는 그보다 더 영화적이다. 표현방식은 달라졌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우리들도 살아야 하잖아요.” 어른들이 보기엔 어리석고, 치기어리다 할 수 있지만 그들에겐 그게 최선이었다. 


우리들

감독 윤가은 개봉 년도 2016 출연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 강민준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라는 말로 아이들의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실로 게으른 어른이다. 영화 <우리들>은 초등학교 시절, 우리에게 가장 큰 존재였던 친구관계에 대해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나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 내가 소속된 무리가 없다는 건 학창시절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영화는 아이들로부터 따돌림받던 선(최수인)과 여름방학 때 새로 전학 온 지아(설혜인)의 우정의 역사를 담았다. 굳이 ‘우정’이 아닌, ‘우정의 역사’라고 한 이유는 세계에 두 사람만 있었던 여름방학과 타인이 개입된 개학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 비밀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었던 시간을 지나, 2학기가 시작됐다. 이제는 더 이상 친구가 없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숨막히는 공기를 겪어도 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선은 갑자기 자신을 차갑게 외면하는 지아의 태도에 당황한다. 선은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보려 노력하지만, 문제가 선에게 있지 않기에 선의 노력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여름방학에 선과 지아를 단단하게 묶어 주던 비밀은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삶의 모든 순간, 우리는 문제를 안고 산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 역시 아니다. 다만 편의상 덮어놓고, 잊어버리고, 이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뿐. <우리들>은 어른들이 덮어놓았던 어린 시절의 문제들을 살짝 들추며 그때 존재했던 분명한 세계에 빛을 비춘다. 


파수꾼

감독 윤성현 개봉 년도 2011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졸업한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는데, <파수꾼>은 보는 순간 관객들을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개봉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파수꾼>은 여전히 많은 독립영화들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전까지 십대들을 다뤄온 대부분의 영화가 그들의 아픔과 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청소년의 성장은 고통이 수반됨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 성장영화의 골조는 오랜 시간 굳건히 자리해 왔다. 그러나 <파수꾼>에서 상처는 그저 상처일 뿐이고, 고통은 고통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하나의 단계로서의 장치도 하지 않고 성장의 밑거름도 되지 않는다. 그저 고통에 매몰된 아이들만 존재할 뿐이다. ‘트라우마’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파수꾼>은 십대 남학생 특유 소통의 부재와 서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여기서 서열은 노골적이지 않다. 어른들이 보기엔 모두가 즐겁게 놀고 있는 장면처럼 보일 만큼, 친구라는 이름 아래 미묘한 알력이 발생한다. 처음엔 굉장히 폭력적으로 보였던 기태(이제훈)는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을 드러낸다. 반면,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희준(박정민)은 폭력에 노출되지만 결코 스스로를 ‘완전한’ 약자의 위치로 내려놓지 않는다. 결국 관계의 마지막, 두 사람을 지탱하고 있었던 건 누구였는지가 드러난다. 기태와 희준 모두 어느 쪽을 비추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다면적인 캐릭터다. 이제훈과 박정민은 까다로운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단숨에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거인

감독 김태용 개봉 년도 2014 출연 최우식, 김수현, 강신철

영화 <거인>은 생존을 위한 소년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성장영화보다는 재난영화에 가깝다. 무책임한 부모를 떠나 보호시설에서 자란 열일곱 살 영재(최우식)는 ‘이제 열일곱이면 다 자랐다’며 시설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아직 스스로를 책임지기 버거운 상황에서,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는 그는 생존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틴다. 후원물품을 훔쳐 다시 되팔거나, 영악하게 거짓말을 하는 건 영재의 성격과는 무관하다. 그에게 ‘왜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냐’고 묻는 건 ‘전쟁터에서 왜 남을 밟고 지나가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내가 밟지 않으면 밟히고, 잊혀지고 결국엔 죽는다. 그렇기에 <거인>은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 아닌, 영재 개인의 구체적인 아픔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게 분명한 성장통과 달리, 영재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질 줄 모른다.

포스터의 카피, ‘사는 게 숨이 차요’라는 말은 영재의 상황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세상이 나한테 어쩜 이래!”라며 울분을 토하는 그에게 세상은 아무런 말이 없다. 그가 아무리 소리 지르며 화를 내고, 울고, 빌어도 그는 점점 나이를 먹고, 아버지는 철이 없으며, 그를 책임져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무 많은 것들이 뒤엉켜 형태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고통이 영재의 뒤를 끈덕지게 쫓아오고, 영재는 어떻게든 이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 무엇도 해결해 주지 않고, 오로지 그에게 요구만 한다. ‘착한 아이가 되거라.’ 엄숙하기까지 한 그 말은 영재를 짓누른다. 가난하지만 밝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아이, 라는 환상은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누구도 품어주지 않는 아이는 제 스스로를 안아야 한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일단 살아야 하니까.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