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뒤집기 전문'이라는 <빈센조> 작가의 반전 과거

조회수 2021. 4. 2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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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

이젠 확실해졌다. <빈센조>는 송중기의 완벽한 복귀작이 됐다. 극 초반, 과잉된 설정으로 호불호 논란에 휩싸였던 것도 잠시. 그 모든 오바스러움을 <빈센조>만의 매력으로 승화시키며 연초 최고의 흥행작 자리를 꿰찼다. 빈센조 까사노, 이탈리아 마피아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캐릭터를 온전히 흡수한 배우 송중기에게 박수를 보내기 전. <빈센조> 세계관을 다- 계획 있게 쌓아 올린 장본인, 박재범 작가를 조명하려 한다. '슬로우 스타터'라는 남다른 별명을 가진 스타 작가. 박재범이 작가로서 걸어온 길을 되짚어본다.


두 편의 영화
<씨어터> 그리고 <여곡성>

# 한국 영화 최초의 고어물

드라마 작가로서 박재범 작가를 돌아보기 전. 그가 가진 특별한 이력을 소개하려 한다. 드라마 판에 발을 들이기 전 그는 영화 연출자로 먼저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입봉작은 독립영화 <씨어터>(2000). 무려 한국 영화 최초이자 마지막 '고어물'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영화관에서 <스크림>(1999)을 보던 관객들이 정체불명의 살인자로부터 잔혹하게 살해를 당하는 이야기로, 당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된 문제작이다. 여전히 '고어물' 팬들 사이 회자되곤 하는 작품인데, 형광등으로 사람의 내장을 모두 꺼내는 등 잔인함의 수위가 매우 높다. 동국대학교에서 연극영화학과를 부전공한 박재범 작가는 본래 영화에 대한 꿈이 있었지만, 거듭된 실패에 영화계를 떠나고 드라마 작가로 항로를 변경했다. 영화를 빚어내던 솜씨는 드라마 판에 와서야 빛을 보기 시작한다. 영화만이 가진 장르적 특성과 캐릭터 특성을 잘 알고 있던 그는 평범한 플롯을 거부하고, 드라마계에서도 자신만의 날을 세웠기 때문. 이후, 2018년엔 영화 <여곡성>의 각본 집필에도 참여하며 공포물에 대한 야망을 한 번 더 꺼내 보이기도 했다.



<신의 퀴즈> 시리즈 1~4 (2010~2014)
Quiz from God

# 대한민국 최초의 메디컬 수사 드라마

박재범 작가가 가진 또 하나의 '최초' 타이틀. 김은희 작가의 <싸인>(2011) 이전. 대한민국 최초 메디컬 수사 드라마라는 영역을 개척한 <신의 퀴즈> 시리즈가 바로 박재범 작가의 (정극) 드라마 입봉작이다. KBS 드라마시티 단막극 <팬티 모델>(2002), <S대 법학과 미달 사건>(2003)을 통해 드라마계에 발을 들인 박재범 작가는 7년의 공백기 끝에 <신의 퀴즈>를 완성했다. '웰 메이드 케드(케이블 드라마)'의 시초이기도 한 <신의 퀴즈>는 희귀병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사망 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법의관 사무소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2010년 당시로선 흔치 않은 장르물이었기에, 마니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박재범 작가는 <신의 퀴즈> 시리즈를 통해 단숨에 스타 작가로 급부상한다. 희귀병, 의문의 죽음, 수사, 법의관, 사회 비판 등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설정과 메시지들을 쉽지만 뾰족하게 엮어낸 그는 데뷔작부터 남다른 세계관을 꾸렸다고 볼 수 있겠다.


<굿 닥터> (2013)
Good Doctor

# 박재범 작가의 성공적인 지상파 안착

<신의 퀴즈> 시리즈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 박재범 작가는 연이어 <굿 닥터>를 써 내려갔다. <신의 퀴즈>에 이어 다시 한번 메디컬 드라마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 "메디컬적인 공간만큼 삶과 죽음,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기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신의 퀴즈>에선 희귀병을, <굿 닥터>에선 자폐증을 조명하며 뻔하지 않은 의학 드라마를 완성했다. 물론 의학이라는 영역만 공유할 뿐, <신의 퀴즈>와 <굿 닥터>는 온도부터 180도 다른 작품이다. <신의 퀴즈>가 차가운 수술방의 공기가 완연한 작품이라면, <굿 닥터>는 의학 드라마가 담아낼 수 있는 따뜻함의 미학을 최대치로 녹여낸 작품. 대학병원의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자폐증의 일종인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외과 의사 박시온(주원)의 성장기를 그린다.

당시 20%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한 <굿 닥터>의 인기 요인은 '힐링'에 있었다. 당시 장르물 드라마들이 악의 세계, 자극적인 설정들을 녹여내기 급급했다면, <굿 닥터>는 절대적 악을 지워냄과 동시에 캐릭터 설정이 만들어가는 재미에 집중했다. '자폐증을 앓는 의사'가 전할 수 있는 직설적인 메시지들을 담백하게 녹여내며 '주인공이 곧 세계관'인 박재범 월드의 출발을 알렸다. <굿 닥터>의 특별한 캐릭터성은 해외 리메이크로도 이어졌는데, <굿 닥터>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ABC 방송 시즌제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박재범 작가에겐 뜻깊은 작품으로 남게 됐다.


<블러드> (2015)
Blood

# 박재범 작가의 흑역사?

<굿 닥터> 이후에도 박재범 작가는 메디컬이라는 장르를 놓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의 암흑기 혹은 흑역사로 부르는 <블러드>가 바로 그의 차기작. <신의 퀴즈> <굿 닥터> 그리고 <블러드>에 이르러 박재범표 메디컬 3부작을 완성한 그는 이전 두 작품에 비해 좋지 않은 평가를 얻은 건 사실이나, <블러드>를 통해 내보인 박재범 작가의 도전은 여전히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시청률 그래프는 하락세를 그렸을지라도 작가로서 그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은 것. ‘최초’ 전문가답게 박재범 작가는 <블러드>를 통해 국내 최초 판타지 메디컬을 선보였다. <굿 닥터>가 자폐증을 앓는 의사라는 특별한 캐릭터를 내세운 것처럼, <블러드>는 불치병 환자들을 치료하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뱀파이어 의사의 성장기를 그린다. 표면엔 드러내진 않지만 캐릭터들의 입을 통해 뾰족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박재범 작가 작품 특징답게 <블러드>는 ‘판타지 의드’ 이상의 인간적인 메시지가 곳곳에 담겨있는 작품. 다만 두 주연 배우의 연기력 논란으로 <블러드>는 박재범 작가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김과장> (2017)
Manager Kim

# 박재범 작가표 블랙 코미디의 시작

<굿 닥터>가 종영한 뒤. 한 인터뷰에서 박재범 작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차기작을 묻는 말에, “<굿닥터>보다 8배는 빠르고 8배는 더 엎치락뒤치락하는, 맛깔스럽고 쫀득한 작품일 거다. <굿닥터>에서 가졌던 사회적 소명 의식은 잠시 내려놓고, 내가 즐기면서 확실히 잘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한다”는 의외의 답을 내놓은 것. 당시엔 박재범 작가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김과장>을 보고선 정말 그가 만들고 싶은 드라마는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기업 비리를 파헤친다는 단순한 서사 구조를 가진 <김과장>은 장르물의 대가라 불린 박재범 작가의 위상에 비하면 어딘지 모르게 연약해 보였지만, <김과장>이 공개된 후 우려는 곧 감탄으로 뒤집히기 충분했다.

'박재범표 쌈마이 3부작', '박재범표 블랙코미디'의 시초가 된 <김과장>은 양아치 깡패였던 김과장(남궁민)이 비상한 머리로 TQ 그룹의 비리를 부수는 과정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 코믹하고 과장되게 그린다. 거대 기업의 비리를 까발리는 기존 드라마들이 부장 검사 혹은 언론인, 어둠의 조직과 관련된 인물들을 내세웠다면, <김과장>은 비범한 두뇌를 가진 경리과장을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쾌감을 배가했다. 무거운 폼으로 사회의 허를 찌르는 방식을 벗어나 웃는 얼굴로 사회를 풍자하는 법을 아는 사람. 박재범 작가에게 고단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열혈사제> (2019)
The Fiery Priest

# 종교인이 이루는 정의의 쾌감 <열혈사제>

박재범 작가는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김과장> <열혈사제> <빈센조>가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라 소개한 적이 있다. <김과장>이 소시민이 이루는 정의였다면, <빈센조>는 악당이 이루는 아이러니한 정의. 그리고 <열혈사제>는 종교인이 이루는 정의의 쾌감을 그린 작품이라며 박재범 유니버스 3부작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김과장>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박 작가는 <열혈사제>에서도 범상치 않은 캐릭터 설정을 선보였다. <빈센조>에선 악을 처단하는 악당을 통해, <김과장>에선 비리를 꺼내 들추는 '삥땅 전문 경리과장'을 통해, 그리고 <열혈사제>에선 '분노조절 장애' 신부님 김해일(김남길)을 통해 죄 많은 이들을 처단한다. 가톨릭 사제와 형사가 힘을 합쳐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기막힌 설정에서 시작한 <열혈사제>는 <김과장>과 <빈센조>가 그랬던 것처럼, 과장된 몸짓과 코믹함을 통해 쾌감 넘치는 드라마를 완성했다. <김과장>과 <열혈사제>의 성공에 이어 <빈센조>를 통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둔 박재범 작가는 자신만의 쾌감버스터(쾌감 블록버스터) 장르를 창조해내며 독보적인 영역을 공고히 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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