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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밤> 차승원이 말하는 나답게 연기하는 법

조회수 2021. 4. 15.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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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 · 넷플릭스 제공
<낙원의 밤>

이 배우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아니, 이 배우라서 이런 캐릭터가 나올 수 있구나. <낙원의 밤> 마 이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개성이 있는 캐릭터가 능수능란한 배우를 만나면 얼마나 빛이 나는지 새삼 느꼈다. 자신의 보스를 죽이려고 한 박태구(엄태구)를 쫓는 마 이사는 위험한 악역이면서 동시에 나름의 위트와 질서를 가진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차승원은 이런 복잡 미묘한 캐릭터를 어떻게 접근하고 연기했을까.

그 질문의 답을 4월 2일 제주도 서귀포의 한 카페에서 차승원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차기작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덥수룩한 수염을 한 그는 형언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차분하다기엔 재치 있고, 능청스럽다기엔 진심을 담은 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가 인터뷰 중 자주 언급한 '자연스럽다'는 말이 그날 그에게 딱 맞는 수식어였다. <낙원의 밤>을 관람한, 혹은 관람할 예정인 시청자들에게 차승원과 함께한 시간을 공유한다.

※ 아래 인터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없으나 결말에 대한 약간의 암시가 포함돼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어제가 만우절이었다.

만우절인 줄 몰랐다가 TV를 봤는데 <패왕별희>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봤는데 진짜 너무 명작이었지, 슥 지나갔는데 만우절이었더라. 그래서 틀어줬구나 싶었다(4월 1일은 장국영의 기일이다). 요즘은 영화를 보면 영화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때 당시 내 상황이 보인다. 내가 어땠나, 저 때 저 시절의 나는 어땠지? 그 뒤에는 <천녀유혼>을 해주더라. 그것도 그 시절 영화 두 편 해주는 동시상영 그런 거로 봤었다. 사람들이 왕조현만 나오면 난리가 났었을 때다. 저 때는 그랬었지, 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만우절인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요즘 그 시절 영화도 많이 해준다. 왕가위 감독 영화도 하고 있고. 얘기 나온 김에 왕가위 감독 영화 중 좋아하는 작품은?

<중경삼림>. 그 영화를 좋아한다. 왕가위 감독의 색이 잘 드러나는 영화다. 한국에서도 많이 따라 했고(웃음).

<낙원의 밤> 마 이사(왼쪽), <독전> 브라이언

<낙원의 밤>으로 돌아와서 질문을 드리겠다. <낙원의 밤> 이전에 <독전> 브라이언 역으로 꽤 큰 임팩트를 남겼다. 영화를 보면 완전히 다른 캐릭터인 걸 알 수 있지만 누아르에 악역이란 점이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데, 전작과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마 이사 캐릭터가 훨씬 더 땅에 붙어있다. 요즘 연기하면서 드는 생각이 내 삶과 상황이 캐릭터에 그대로 묻어나는 게 좋다. 그렇다고 마 이사와 내 삶을 동일시할 순 없지만 (웃음) 그 연배의, 마 이사 연배의, 내 연배의 소위 말하는 삶의 태도나 이런 것이 은연중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라이언 같은 캐릭터는 만들어진 캐릭터, 마 이사는 좀 더 땅에 안착돼있는 캐릭터인 거 같다.

미 이사는 나름의 질서가 있는 캐릭터라서 재밌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그게(태구를 쫓는 것) 싫은 거다. 멈췄으면 좋겠는 거다. 오랜 시간 그런 생활을 했었고, 자신의 가정도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봤을 때 이 일에 마 이사가 휘말린 거다. (웃음) 태구와 재연(전여빈)이 휘말린 게 아니라 마 이사가 휘말린 거다. 왜냐하면 마 이사는 이걸 별로 안 좋아했음에도 끝을 맞이하고 마니까. 얘(태구)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사람이 악행을, 선을 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이 사람에게 삶이 좀 보였으면 좋겠다. 삶이 보여야 이 사람이 제주도를 꾸역꾸역 내려가서도 얘를 안 죽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일이 이렇게 된 것, 이런 게 보일 수 있도록.

캐스팅됐을 때 박훈정 감독과는 어떤 얘기를 했나.

'왜...? 왜, 나.... 왜? 왜 이런 역을 준 거지? 나한테 이런 얼굴이 있나?' 그러면서 얘기를 했었다. “기본적으로 마 이사가 위트 있지만 무서운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양 사장(박호산) 같은 사람하고 차별화가 되니까.” 지금은 예전같이 캐릭터에 대해 막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훨씬 자유롭다. 만들어낸 부분도 있고.

그런 만들어낸 부분은 '현질'이나 '레알' 같은 그가 쓰는 젊은 언어일 것 같다.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살아있으면 뭐해, 반병신 됐는데.” 이런 말들. 반병신 같은 이런 말들은 내 나이 또래나 쓰는 말이니까.

이문식 배우가 특별출연으로 나왔는데, 혹시 직접 제의를 한 것인지 궁금하다.

캐스팅됐는 줄도 몰랐다. 촬영장에 갔는데 “어, 형?!” 이랬다. 문식이 형을 오랜만에 봤다. 한때 나랑 영화도 많이 찍고 그랬는데. 그 장면이 경찰과 마 이사와 박 사장의 모종의 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소위 한 사람을 두고 어떻게 찢어 먹을 것인가 그런 장면인데, 쟤가 경찰인데 밀리지는 말아야 하고, 얘한테는 이렇게 해야 하고, 그런 긴장감이 재밌었다. 

(왼쪽부터) <낙원의 밤> 엄태구, 차승원, 전여빈 (사진=넷플릭스 제공)

엄태구, 전여빈 배우와는 호흡을 어떻게 맞췄는가. 특히 엄태구 배우는 낯 많이 가리기로 유명한 배우인데.

현장에선 그래서 내가 얘기를 많이 한다. 내가 촬영 있는 날은 다 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그렇다고 그 캐릭터나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건 아니다. 예전에 난 굉장한 욕심을 가지고 현장에 갔다. 그 욕심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걸 벗겨내는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래야만 하고. 그래야 내가 편하고 상대 배우하고도 깊숙하게 연기할 수 있고 솔직해질 수 있고. 이런 부분이 나한텐 더 중요하다.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지만 현장에 가서 그런 식으로 하려고 배우들하고 우스갯소리하고, 그런 식으로 완충지대를 만든다. 어떻게 됐든 현장이 즐겁고 기억에 남을 수 있게 이렇게 하려고 노력을 한다.

태구 같은 경우는 실제 배우와 이름이 똑같다. 다른 연기와 다른 느낌이 있었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다만 현장에서 태구를 보면 '내가 저 나이 때 저 정도 몰입감이 있었나? 나만 잘하면 되겠네' 그런 게 있었다. (웃음) 도움 줄 사람은 많으니까, 전 좀 방임하듯이 놓고, 역시나 나는 의식적으로 뭘 하는 것보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게 훨씬 좋더라. 그러려면 내가 뭔가 계산하고 그러면 안 된다. 우리가 뭔가 제조하는 게 아니다. 물론 시나리오라는 큰 틀이 있겠지만, 규격에 맞게 하는 게 아니다. 예전엔 시나리오대로 수행하고, 내비게이션처럼 가는 그런 걸 내 나름대로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그래야 훨씬 더 나답게 나오더라고.

<낙원의 밤>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건 박호산 배우일 텐데 두 분 촬영할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박)호산이도 처음엔 전혀 안면이 없으니까 이 친구가 어떤 성향의 친구지... 했는데 다행히 첫 촬영 끝나고 친해졌다. 이 친구도 잔뼈가 워낙 굵은 친구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작품을 어떻게 하자 이런 얘기는 안 했다. 쉰이 넘고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생활을, 나라는 사람을 얼마만큼 이 감정에 충실하게 (하는가). 충실하게란 건 위선과 거짓 없이. 연기는 어떻게 됐건 기술이지만 그런 걸 어떻게 하면 잘 녹여낼 수 있을까. '이런 감정으로 이렇게 안 할 거 같은데?' '나는 이렇게 안 할 거 같은데' 이렇게 해야 할 때, 그런 건 얘기하는 거다. 생각해 보니 이건 아닌 거 같다. 이번에는 이런 것들을 많이 생각했다. 그래서 훨씬 재밌어졌다. 예전엔 촬영하는 게 스트레스였는데, 요새는 안되면 또 하면 되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성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다가 의외의 것들이 나오니까, 그런 게 얼마나 좋나. 그런 게 나는 좋아졌다.

혹시 그런 마인드를 얻은 게 예능 활동 때문일까?

그런 건 아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하게 됐는데, 내가 예능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의아했다고 하셨다. 되게 밝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그야말로 그냥 툭툭. 좋아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고, 나빠도 그다지 나빠하지 않는. 난 그게 맞다고 본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게 되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런 모습이 맞는데 어떤 상황을 만들 때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나를 표출하고. 그게 별로 안 좋은 건데, 사실. 그래서 아까 그런 게 중요하더라.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녹여내는 것. 녹여냈는데 그게 안 좋으면 또다시 하면 되고. 이번 테이크에서 오케이를 받아야 좋은 배우인 건 아니지 않나.

예전에도 제주도에서 촬영한 적도 많았는데, 지금의 제주도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제주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 제주도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개인적으로 걷는 거, 자연 보는 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기가 주는 느낌이 되게 좋다. 근래에 제주도를 개인적으로도 많이 왔다. 되게 좋다. 내가 이걸 모 배우(웃음), 모 배우라면 나하고 친한 사람한테 얘기했는데 자기는 제주도가 너무 좋다는 거다. 여기를 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다고. 자전거 탈 수 있고, 바다 보면서 한잔할 수 있고, 아침에 조깅할 수 있고 근처에 예쁜 카페도 있고 그래서 너무 좋다더라. 나도 그렇다. 산책이 좋아진 건 여기서 하는 산책이 좋은 거지. 진짜 많이 왔었다, 모델할 때는. 90년대 초반엔 카탈로그를 거의 여기서 많이 찍었다. 외국 가기엔 돈이 많이 들고 이국적인 풍광은 필요하고. 촬영은 한 시즌 먼저 하니까 여기가 따뜻하고. 그때는 여기가 싫었지. 차 타고 한 시간 이동하고 아침마다 같은 밥만 먹고. 그때는 싫었는데, 고생해서 기억이 많은 섬이었다. 그런데 나이 들고 와서 보니 또 달라졌다. 아마도 내 상황이나 나이나 여러 가지가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사람이 변한 것 같다. 장소는 똑같은데 사람이 변한 것 같다. (웃음) 나도 나이를 드는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건강한 배우'라는 이미지가 있다.

운동을 하고 이런 것도 좋은데, 나는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이런 건 상관없다. 나는 눈만 괜찮았으면 좋겠다. 눈빛이 흐리멍텅해질까봐. 눈빛이 형형하다, 노쇠한 배우여도 눈빛이 형형한 분들이 있다. 눈빛만 살아있으면 되겠다, 배우는. 그렇게 오랜 시간했으면 좋겠다.

그럼 혹시 본인만의 멘탈 케어 방법이 있다면?

나한테는 내가 거짓말하지 말자. 내가 아닌 걸 나한테 기라고 하지 말자. 타협하지 말자. 그럴 때가 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안 괜찮은 건 안 괜찮은 거다. 젊었을 때는 그런 게 다분히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말자. 나한테 솔직해지자. 못한 건 못한 거다. 이건 안되는 거다. 이걸 빨리 인정해야지, 아니면 짜증만 는다.

영상 인터뷰 때 넷플릭스 추천작으로 <기묘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다른 추천작이 있다면?

나는 <다크>가 더 좋긴 했다. 넷플릭스 하면 <기묘한 이야기>가 생각나지만. <다크> 시즌 1, 2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썼다. 평행이론을 정말….

너무 어렵다고 하더라. 인물 가계도를 펴고 봐야 한다고.

인물들 사진으로 찍어서 봤다. (본인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진짜다, 장난 아니다. 독일 드라마라 이름도 생소해, 상황도 계속 왔다 갔다 해, 그런데 이런 드라마가 참 좋다. 어떻게 이렇게 찍었지? 타임 슬립하는 기구도 어떻게 보면 '저게 뭐야' 싶은데 그걸 기가 막히게 찍었다. 분위기가 진짜 좋았다.

지금 수염과 헤어는 차기작 때문?

<그날 밤>이라는 드라마(현재 <어느 날>로 제목이 변경됐다)를 준비하고 있는데, 괴짜 변호사다. 평생 아토피를 앓는. 다른 검사나 변호사들은 깔끔하니까 좀 지저분하게. 이 정도 길러도 묶을 예정이다. 그래도 될 거 같은 (캐릭터다). 감독님한테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때요?' 했다.

배우님 본인은 장발과 단발, 수염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중 어느 게 좋은지.

머리가 기른 것도 나름 편하다. 짧으면 뭘 좀 해야 하고 그런데 오늘 아무것도 안 했다. 수염도 흰 수염도 나고 그러는데 예전엔 이런 게 싫었는데, 이런 게 또 자연스럽지.

차승원이 생각하는 <낙원의 밤> 베스트 장면은?

역시 엔딩이다. 마 이사 나오는 장면 중 제일 좋아하는 건 귀 자르는 부분. 그게 그 사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이런 거 많이 했었는데 난 하기 싫어, 근데 할 수밖에 없어. 경고의 의미를 확실히 전한다. 마 이사란 캐릭터를 아주 딱 보여준다. 

<낙원의 밤>

마지막으로 <낙원의 밤>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린다.

어떤 분들에겐 불편한 장면이 나올 수 있다. 전 영화는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이 제주도란 공간에서 보이는 치열함. 요 근래 장르 중 이런 게 잘 안 나오는데, 남자만 우르르 나오는 게 아니니까 카타르시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재연이란 캐릭터가 정말 좋다. 저 또한 정말 좋아하는데, 다른 영화에서 잘 나오는 주체적인 캐릭터다. 그런 부분을 기대해 주시면 되겠다. 그리고 제가 새롭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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